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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행의 긴급 요청 ‘노역장 유치를 멈춰 달라’
장발장은행의 긴급 요청 ‘노역장 유치를 멈춰 달라’
  •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 승인 2021.01.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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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행, 지난해 12월 구금시설의 확산 위험성 제기해
코로나19 사태 안정화될 때까지 벌금 미납자 환형유치 중단 호소
현행 총액벌금제를 재산, 소득과 연동하는 일수벌금제로 변경해야

노역장 유치를 멈춰야 할 이유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1천명 이상 발생했다.

“이주노동자와 재소자의 인권은 그 사회 인권 수준의 가늠자”라는 말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우월의식을 가진 내국인들에 의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인권침해 행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면, 재소자들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작용하는 데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권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이번 동부구치소 사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민주공화국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수감자들에게 보건마스크조차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수감자들이 자비로 마스크를 구입하는 것도 구치소 규정을 내세워 금지시켰다고 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사진=이코노미21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사진=이코노미21

지난 1년 동안 수없이 들어 모든 사람의 귀에 박힌 말이 있다.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말이다. 구치소 수감자들은 거리두기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스크 착용이라도 철저히 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마스크 지급도 하지 않고 구입도 못하게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주무 부처의 최고책임자인 추미애 법무장관은 단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법무부가 아니라 무법부라고 불러야 마땅할 지경이다.

장발장은행은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작년 12월21일 발표한 긴급성명에서 “한국의 구금시설은 정원을 넘는 과밀수용으로 악명이 높았다. 지금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대량 감염사태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고 진단하고, “미결수들의 집단 감염사태는 명백한 정부 책임이다. 당장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장발장은행은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벌금 미납자의 환형유치를 멈추어 달라고 호소했다. 단지 돈이 없어 감옥에 갇히는 상황은 정부의 결단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형법 제62조 “집행유예의 요건에 대한 규정”이 개정되어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도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 행형의 실상은 벌금형에 대한 집행유예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적장치도 마련되어 있는데, 코로나19라는 비상시기라면 이를 전면적으로 적용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외친다. “노역장 유치를 멈춰 달라.”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꿔야

차제에, 또 신년을 맞아 장발장은행의 대표(은행장)로서 강력히 요청할 게 있다. 현행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2015년 2월25일 문을 연 장발장은행은 애당초 일찍 문 닫기를 바라고 연 은행이었다. 한국의 장발장들을 줄이고 없애는 게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발장은행은 한국사회를 향해 벌금제 개혁을 요청하고 시위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장발장은행이 계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벌금제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바라는 벌금제 개혁의 요체는 현행 총액벌금제를 수형자의 재산, 소득과 연동하는 일수벌금제로 바꿔달라는 데 있다. 일수벌금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장발장은행은 문을 닫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벌금제 개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인권연대가 2014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43,199' 캠페인을 벌인 뒤 2015년 12월 벌금제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벌금형에 집행유예제도가 도입되었고, 현금만이 아닌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지불할 수 있게 되었으며, 분할 납부와 연기도 법률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매년 벌금을 못내 감옥에 갇히는 장발장들의 숫자가 4만 여명에서 절반 정도 줄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개혁 법안이 2년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 2018년에도 3만5천명 수준으로 크게 줄지 않았다. 제도개혁이 미흡했다는 것, 그래서 소득과 재산에 따라 차등을 두는 일수벌금제의 도입과 함께 교도소에 가두는 대신 사회에서 봉사하도록 벌금제도를 바꾸는 것만이 장발장은행 문을 닫을 수 있는 관건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일수벌금제는 범법 행위의 경중에 따라 일수를 정하고 그 일수에 수형자의 재산, 소득을 곱하여 벌금액을 정하는 제도다. 부자에게 벌금을 많이 매기고 가난한 사람에겐 적게 매기라는 당연한 요구다. 지금까지처럼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매길 때, 부자에겐 수형의 의미가 전혀 없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에겐 무겁게 지운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현행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꿔 달라는 우리의 요구는 당국자들로부터 수형자의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답변에 부딪혀 왔다. 월급생활자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에게 건강보험료를 책정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우리로선 승복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리가 보는 바는 이런 것이다. 즉, 사법당국의 행정편의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보듬으려는 의지에 비해 강력하게 관철된다는 것이며, 또 그래도 될 만큼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어쭙잖게 장발장은행장이라는 소임을 맡아 벌금 대출심사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이 돈의 주인이 아닌 돈의 노예가 된 물신주의 사회라지만 그럼에도 곳곳에 따뜻한 마음들이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장발장은행에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드린다. 지금까지 9만570여명의 개인, 단체, 성당, 교회에서 12억2천여만원의 성금이 답지하여, 913명의 장발장들에게 총 16억1천여만원을 빌려줘 자유를 빼앗기지 않게 할 수 있었다(성금액보다 대출액이 많은 것은 대출 받았던 장발장들이 상환한 금액을 다시 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500명이 상환중이며 174명은 완납했다). 다른 하나는 가난의 대물림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무척 많아지고 있는데 그들의 서사는 보이지 않고 어쩌다 숫자로만 기록된다는 점이다.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들은 잘 알려지지만, 매년 4만명에 가까운 장발장들이 교도소에 갇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동시대인은 드물다. 부의 대물림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 가난의 대물림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시기든 부러움이든 부의 대물림 쪽만 향한다. 일찍이 크롯포킨은 “법은 힘센 자의 권리”라고 했는데, 가난한 사람이 법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힘센 자에 얹혀 낙수효과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갖게 된 불온한 질문이다.

핀란드의 노키아 회사 부회장이 오토바이로 60킬로미터 속도제한구역을 80 킬로미터 넘게 주행하다 적발돼 11만6천유로(1억5천6백만원)의 범칙금을 물었다는 유명한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만큼 가진 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강조되는 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살펴야 한다는 정신이 그들로 하여금 일수벌금제를 일찍부터 시행토록 했을 것이다. 핀란드는 1931년부터 일수벌금제를 시행했다. 그들은 그때 이미 수형자의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했을까? 결국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1975년부터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은 하루 당 2유로에서 1만유로까지 수형자의 재산 소득에 따라 5천 배의 차등을 두고 있다. 이렇게 유럽 나라들은 물론 남미 나라들도 시행하는 일수벌금제를 K-방역을 자랑하는 한국이 시행하지 않는 것은 힘센 자들의 편의주의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할 뿐이다.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로 기억한다. “선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악을 키운다.” 그래서 큰 소리로 다시 외친다. “총액벌금제를 일수벌금제로 바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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