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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철도 민영화 곳곳에 암초
[포커스] 철도 민영화 곳곳에 암초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1.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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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인력감축으로 산재사고 급증… 노조 “감원위주 구조조정” 강력 반발철도청과 철도노조가 대치하고 있다.
지난 8월8일부터 분당선 구간(수서~오리)에서 진행된 ‘열차 1인 승무화 시험운행’이 불씨였다.
‘열차 1인 승무화’는 운전을 전담하는 기관사와 승객의 안전을 담당하는 차장이 열차의 앞뒤에 동승하는 기존 근무시스템과 달리 기관사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운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민영화를 앞두고 대대적인 인원감축에 나선 철도청이 지난해 12월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합의한 내용에 따른 것이다.
시험운행이 시작된 뒤 3일 동안 기관사가 출입문의 반대편을 여는 사고가 두차례나 일어났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박상현 국장은 “5~7호선 전철의 경우 전동차 내부와 선로를 연결하는 완벽한 컴퓨터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전동차 문도 안팎의 전기신호에 의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지만, 분당선을 오가는 전동차는 기관사가 수동으로 운전해야만 운행이 가능하다”며 “무리한 인원감축을 밀어붙이면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원감축을 둘러싼 노조와 철도청의 대립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철도원 사망 사고와 관련해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0년까지 철도청의 직무 관련 사망자 수는 점점 줄어들어 연간 8명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상반기에만 11명이 선로작업 중 열차에 치어 사망하거나 근무중 과로사했다.
박상현 국장은 “5~7명이 함께 작업하던 선로보수를 3~5명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양쪽에서 열차가 오는지 감시하는 안전요원을 배치할 수 없어 이처럼 사고가 빈번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원부족에 따른 과중한 업무 외에도 민영화를 앞두고 ‘역사 예쁘게 꾸미기’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어, 역무원 두명이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는 작은 역사의 경우 한사람이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근무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그러나 철도청측은 대부분의 사망·사고를 ‘안전교육 부재’로 돌리고 있다.
철도에 불어닥친 대규모 감원바람은 1996년 ‘철도청 경영개선 계획’ 발표와 더불어 시작됐다.
인력관리와 경영의 합리화를 목표로 하는 이 계획은 96년 3만6816명이던 철도원 중 7307명을 감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99년에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공기업이 솔선수범할 것”을 당부하면서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라 2000년에 수정계획이 발표됐다.
당초 계획보다 400여명 더 많은 7739명을 2001년까지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철도청은 그동안 매년 정해진 수의 인원을 감원해왔으나, 99년부터 노조의 심한 반발에 부딪쳐 현재까지 5055명을 감원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철도청은 올해 안에 1500여명의 인원을 더 줄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문가들, 무리한 감원은 무리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계획에는 “인원감축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와 생산성 하락을 막기 위해 낙후된 시설과 장비를 현대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철도 민영화 관련 입법을 앞두고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설·장비의 현대화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계법인의 보고서는 또 그간 감원된 사람의 대부분이 기능직이고 일반직은 오히려 인원이 늘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남북을 잇는 철도가 개통되고 경부고속철도가 완성되면 오히려 인원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도 정해진 목표에 따라 무작정 감원을 고집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삼일회계법인은 보고서에서 “기존 방침을 고수해 올해 안에 2900명 선까지 인원을 줄인다 하더라도 민영화 이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3만3175명 수준으로 직원 수를 끌어올려야 하고, 2003년 고속철도가 개통될 때까지는 1050명의 인원을 더 채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삼일회계법인은 앞으로의 사업확대에 따른 추가소요 인력 확보방안으로 일시휴직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권고해, 현재 진행중인 구조조정 방안의 전면수정을 요구하는 노조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오건호 상임연구위원은 철도 민영화 관련 공청회에서 “정부가 기업, 금융, 노동 등 다른 부문의 구조조정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박차를 가했고, 이 과정에서 실적 위주의 무리한 감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우정부문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철도와 마찬가지로 우정부문 역시 99년 정부가 발표한 조직개편안에 따라 2002년까지 8500명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이러한 분석 결과에 크게 반발하며 오히려 증원을 요구했고, 우정사업본부도 비공식적으로 사업확대에 따른 증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결국 노사정위는 2000년까지 4744명을 감축하기로 한 계획은 실행하고, 2001년 감원 예정인 3756명에 대해서는 다시 정밀 직무분석을 실시한다는 데 합의했다.
분석을 의뢰받은 한국행정연구원과 성균관대 두뇌한국21사업단은 예상밖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현재의 과다한 초과근무 시간을 50% 줄일 경우에는 현 단계에서 223명을 오히려 증원해야 하고, 초과근무를 현재대로 시행한다고 해도 감원 대상은 310명에 그쳐야 한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짜맞추기식 구조조정”이라는 비난이 각계에서 빗발치자, 기획예산처는 지난 7월11일 감원인원을 998명으로 크게 줄여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철도의 경우 지난해 12월에 열린 노사정위에서 노조측이 철도 민영화와 인력감축에 사실상 합의함으로써 우정부문과 같은 과정을 밟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철도청측의 구조조정 방안에 찬성했던 당시 노조 집행부는 대다수 노조원들의 불만을 사 지난 5월 54년 만에 이루어진 철도노조위원장 직선에서 참패했다.
지난 5월 출범한 현 철도노조(위원장 김재길)는 ‘인력감축 위주의 구조조정과 철도 민영화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국철도노조 이정순 대변인은 “감원과 민영화 반대를 위해 우정사업본부, 한국전력, 한국통신 등 다른 공기업들과 연대해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건교부에서 입법예고한 철도민영화법안(철도산업구조개혁기본법안)이 올 하반기 국회에 상정되면 공기업 구조조정을 둘러싼 논란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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