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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지니스] 코즈모닷컴의 흥망성쇠
[e비지니스] 코즈모닷컴의 흥망성쇠
  • 이경숙
  • 승인 2001.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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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석 감독
68년 출생.
89년 연세대 불문과 중퇴, 뉴욕시각예술학교 입학.
98년 미라 소르비노, 금성무, 김혜수가 출연한 한미 합작영화 <죽기도 피곤해>(too tired to die) 연출.
2001년 다큐멘터리 <이드림스(e-dreams)> 제작.

진원석 감독, 다큐멘터리 <이드림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봬
2000년 3월26일, 코즈모닷컴 cosmo.com이 IPO(기업공개) 발표기념 자축연을 열고 있다.
마이크를 쥔 최고경영자(CEO) 조지프 박(Joseph Park·29)의 눈동자는 열기로 들떠 번쩍인다.
조가 외친다.
“실리콘앨리 역사상 돈을 가장 많이 번 회사 이름이 뭐죠?” 직원들은 합창한다.
“코즈모!”

다시 조가 외친다.
“99년 1월 직원 10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4천명으로 늘어난 회사는 어딜까요?” 교회 신도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듯 직원들은 연창한다.
“코즈모! 코즈모!”
“다우존스 소식지에 코즈모닷컴의 IPO 발표로 오늘 아마존닷컴의 주가가 13%나 올랐다고 했어요. 우리가 아마존한테 25억달러를 보태준 셈이죠. 이대로만 가면 5월쯤엔 대박이 터질 겁니다!” 1년 남짓 지난 2001년 4월11일, 코즈모닷컴은 문을 닫았고 남아 있던 1100여명의 직원은 일자리를 잃었다.
국내보다 뉴욕에서 더 큰 반향 5월2일 전주국제영화제는 벤처인에겐 각별할 만한 영화 한편을 선보였다.
<이드림스(e-dreams)>라는 다큐멘터리다.
뉴욕에서 입봉한 진원석 감독은 한때 실리콘앨리의 신화였던 코즈모닷컴의 흥망성쇠를 98년부터 2년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한 테이프 분량은 모두 140시간. 그는 이것을 5개월간 편집해 94분짜리 영화로 엮어냈다.
이 영화는 전주에서보다 뉴욕에서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4월26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첫 시사회는 다큐멘터리로선 드물게 상영 2주 전에 모든 좌석이 매진됐다.
예약객은 대부분 기업 경영진, 증권사 애널리스트, 경제 담당 기자들이었다.
상영이 끝난 뒤 진 감독은 한 경제지 기자한테 매우 인상적인 영화평을 들었다.
“후우, 이건 공포영화(horror movie)로군요!” 영화는 2000년 초 조지프 박이 제휴를 위해 스타벅스 관계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코즈모가 여러분한테 조금은 생소할 겁니다.
닷컴은 일반 회사와는 다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혼돈을 직접 보고 겪을 겁니다.
” 조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들린다.
“마치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 같을 거예요. 모든 것이 잘될 때는 생애 최고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그 보람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잘 안 될 때에는 생애 최악의 기분을 느낄 겁니다.
” 코즈모닷컴 공동창업자 용 강(Yong Kang, 한국 이름 강용태·29)은 IPO를 결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한주당 20달러라면 내 주식은 1억5천만달러나 그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되겠죠. 다들 우리 IPO가 대박일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그의 육감은 불안한 미래를 내다보는 듯했다.
“그게 진짜 돈이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지만 다음달에 모든 게 바뀔 수도 있죠. 투자자들 심리는 아무도 몰라요. 어느날 갑자기 ‘이제 인터넷 사업은 한물 갔어’ 하면서 언제라도 이쪽을 저버릴 수 있죠. ‘미친 소리’ 같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미친 소리’는 현실이 된다.
2000년 초 5000선이던 나스닥지수는 1년 뒤인 2001년 초 2000선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투자기준은 하루아침에 ‘매출’에서 ‘수익’으로 바뀌었다.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닷컴 업계는 메뚜기떼가 지나간 자리처럼 황량해졌다.
“일할 때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다”는 직원들로 활기차던 일터는 인력조정에 반대하는 노조의 팻말들로 가득찼다.
진 감독은 두 창업자들과 한 인터뷰를 회상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건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시장은 이미 미친 상태였던 거예요. 거대 투자사나 증권사, 거대 언론사들도 다 미쳐 있었어요. 모두 집단망각에 빠져 있었죠.” 그는 89년 미국 주식 폭락을 상기시켰다.
그때도 금융, 건설, 무역주가 급등세를 보이다가 한꺼번에 거꾸러졌다.
10여년 뒤 그와 비슷한 거품 현상이 반복됐다.
그런데도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하고 당한 게 그는 더욱 끔찍했다.
그가 보기에 코즈모닷컴은 이런 ‘미친 시장’의 희생자였다.
코즈모닷컴은 시장의 요구대로 시장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그것은 기업 이윤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어느날 갑자기 이전의 게임 법칙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이건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수익률 게임이야”라고 말이다.
코즈모는 미친 시장의 희생양? 그는 시장이 정상적이었다면 코즈모닷컴이 페더럴익스프레스나 UPS처럼 유통망 시장판도를 뒤엎을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고 주장했다.
“코즈모닷컴은 단지 아이디어로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었어요. 1시간 안에 배달 가능한 창고 위치, 구역 내 주민 수, 배달원 활용 정도 따위의 많은 노하우가 있었죠.” IPO 계획을 너무 빨리 잡은 것도 코즈모닷컴한테는 결정타였다.
나스닥에 IPO를 하려는 기업은 상장할 때까지 ‘비공개 기간’을 거쳐야 한다.
어떤 공식 발표나 기업홍보 행사도 해선 안 된다.
11개 도시로 사업을 확장한 코즈모닷컴한텐 아직 대중 홍보가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비공개 기간 동안 코즈모의 ‘인기스타’ 조는 언론에 나설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해버리자 IPO로 사업확장 비용을 충당하려던 계획도 틀어져버렸다.
“IPO 등록을 철회하고 조지프 박이 물러난 뒤 이미 코즈모는 식물인간 상태였어요. 그 이후엔 호흡기를 달고 연명한 셈이죠.”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역시 코즈모닷컴이 이렇게 빨리 몰락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4월11일, 코즈모닷컴의 성공기를 중심으로 편집을 막 끝냈을 때 그는 e메일 한통을 받았다.
코즈모닷컴의 한 직원이 보낸 것으로, “코즈모닷컴이 내일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급하게 조한테 전화했지만 조는 응답이 없었다.
코즈모닷컴 투자자한테 전화하니 오히려 “유언비어”라면서 펄펄 뛰었다.
시사회 상영을 위한 영화 프린트 마감시간은 코앞에 닥쳐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두가지 결론의 다큐멘터리를 편집했다.
하나는 <성공시대> 같은 성공 드라마였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인생이다> 같은 인생역전극이었다.
어떤 것이 상영될 것인가. 긴장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조가 전화했다.
조는 코즈모닷컴의 폐업을 인정했다.
<이드림스>는 이렇게 해서 <이것이 인생이다>가 되었다.
시사회에는 조와 코즈모닷컴 직원들도 참석했다.
조는 “내 모습이 아니라 영화 속 남의 캐릭터를 보는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직원들은 “코즈모닷컴을 기록으로 남겨줘 고맙다”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조지프 박과 용 강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2년 동안 창고에서 지내면서 하루 16시간씩 일했어요. 조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죠. 헬멧이 완전히 구겨지도록 다치고도 조는 회사에 무전연락해 “누가 이것 좀 배달해줘”라고 말했다니까요.” 조의 열정과 카리스마는 코즈모닷컴 직원들을 럭비 팀원들처럼 단합시켰다.
용 강은 경기장의 코치처럼 그들한테 이성적 판단을 내려줬다.
둘은 서로의 장단점을 잘 보완했다.
“실패하긴 했지만 그 둘은 대단했어요. 프로야구로 치면 박찬호처럼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가 최우수선수상(MVP) 수상 직전에 패한 셈이지요. 그냥 물러날 친구들이 아닙니다.
크게 실패해본 사람이 성공도 크게 하는 법이니까요.” 그는 더는 시장이 미치는 일이 없길, 사람들이 ‘광란’의 폐해를 다시는 망각하지 않길 바란단다.
코즈모닷컴 같은 ‘희생자’가 더는 없도록 말이다.
코즈모닷컴의 짧은 생애 96년 말 - 조지프 박, 아마존닷컴에서 존 그리샴의 신작소설을 사려다가 ‘한시간 내 배달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다. 97년 7월 - 조지프 박, 연봉 10만달러짜리 직장, 골드만삭스 기업금융 담당 애널리스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뉴욕대 동창 용 강과 함께 뉴욕 그린위치의 한 창고에 ‘코즈모닷컴’ 간판을 내걸다. 99년 10월 - 벤처자금 2800만달러를 확보하다. 2000년 1월 - 아마존닷컴 6천만달러, 소프트뱅크 3천만달러 등 2억5천만달러 자금을 유치하다. LA,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11대 도시로 서비스를 확장하다. 2000년 2월 - 북미에 2400개 커피 체인점을 둔 스타벅스와 제휴해 배달거점으로 삼다. 2000년 3월 - 1억5천만달러 규모의 IPO를 발표하다. 2000년 4월 - 나스닥 폭락하다. 2000년 5월 - 뉴욕아시안아메리칸연맹(AAFNY), 조지프 박에게 ‘뛰어난 아시안 아메리칸 2000상’을 수여하다. 2000년 6월 - IPO를 연기하다. 직원 24명을 해고하다. 2000년 7월 - 조지프 박과 용 강, CEO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다. CFO인 게리 부르도가 신임 CEO로 취임하다. 2000년 8월 - 시장 악화와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IPO 계획을 철회하다. 2000년 12월 - 플래티론파트너로부터 3천만달러 추가지원을 받다. 2001년 1월 - 샌디에이고와 휴스턴의 영업망을 폐쇄하다. 뉴욕타임스와 신문배달 서비스를 제휴하다. 1천여명을 감원하다. 2001년 3월 - ‘닷컴’을 떼고 ‘코즈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 전화주문센터를 구축하다. 스타벅스와 제휴를 파기하다. 2001년 4월 - 기업청산 절차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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