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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정보통신부는 뒤집기 국가대표?
[포커스] 정보통신부는 뒤집기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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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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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사업자 동기식 의무화…정책 바꾼 배경 석연치 않아
정보통신부는 용감했다.
정통부는 10월10일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표준방식과 관련해 ‘한개 서비스 사업자 동기식 의무화’를 발표했다.
1년6개월 동안 20여차례의 공청회와 공개토론회, 당정협의회를 거쳐 지난 7월 확정한 ‘업계 자율’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비동기식을 고집해왔던 SK텔레콤과 한국통신, LG 등 세개의 서비스 사업자 가운데 한곳은 동기식 선택이 불가피해졌다.


정통부가 주파수 대역을 동기-비동기-임의대역으로 나눠 공고하는 초강수를 두게 된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안병엽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자율적 합의를 통해 복수 기술방식이 선택되기를 기대했지만 조정이 안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통신 사업은 국가 기간사업인 만큼 개별 사업자의 이해관계에 초연해야 한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정책 변경 자체를 탓하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정책을 끝까지 밀고나가다가 자칫 국민에게 더 큰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율섞인’ 자율 합의 논란의 소지 남겨 문제는 사업계획서 제출을 불과 보름 앞두고 갑자기 정책을 바꿔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을 바꾼 과정이나 배경도 석연치 않다.
정보통신부는 10월6일 확정된 기술표준협의회 합의안을 근거로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애초 약속한 대로 전문가들과 서비스 및 장비 사업자 대표로 구성된 협의회 합의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식이다.
하지만 합의안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통부의 정책 변경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오히려 합의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가 얼렁뚱땅 ‘술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생겨나는 상황이다.
합의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은 “주파수 대역에 관계없이 동기·비동기식 병행 발전이 필요하다”(2항)는 부분이다.
정보통신부는 주파수 ‘대역에 관계없이’라는 부분이 차세대이동통신 주파수대인 2GHz대에서 동기와 비동기를 병행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표준협의회 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 경영학과 곽수일 교수도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사업자들이 모두 그런 해석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비동기식을 고집해오던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조항에 쉽게 합의를 해줬을 리가 없다.
SK텔레콤 조민래 상무는 합의문 작성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먼저 곽 위원장이 “3세대에서도 동기방식과 비동기 방식이 공존해야 하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이 여기에 반발하자 강응선 위원(매일경제 논설위원)이 나서 “기존 주파수대역과 신규 주파수대역을 포괄하는 표현으로 ‘대역과 관계없이’라고 하자”는 중재안을 냈다.
사실상 아무 내용도 없는 합의안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업자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 있던 한 관계자도 엇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비 업체와 서비스 업체 사이에 논쟁이 붙자 “전체 이동통신 주파수 대역을 놓고 보면 동기와 비동기 병행발전은 합의된 것 아니냐”며 합의문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보통신부는 겉으로 “업계 자율”을 외쳤지만 한 사업자를 반드시 동기식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게 기본입장이었다.
민주당 정책실 관계자는 “정부가 처음부터 개입을 명확하게 밝혔어도 크게 반발할 업체는 없었을 것”이라며 정부의 판단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한개 사업자는 동기식으로 가지 않겠냐는 안일한 자세가 무리수를 불렀다는 얘기다.
무리수의 핵심이었던 협의회의 합의사항은 두고두고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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