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4:31 (금)
[포커스] 대출금리 인하의 득실
[포커스] 대출금리 인하의 득실
  • 유상규(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02.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기업 이자 부담 대폭 경감…은행 경영부실로 공적자금 추가 투입 우려
은행 대출금리 인하를 놓고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재계와 상당수 언론은 은행들이 예금금리만 낮추고 대출금리는 내리지 않는다며 거칠게 비난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은행들의 예대마진은 선진 은행들에 비해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며 섣부른 대출금리 인하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도 은행의 수익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돈 장사를 하는 기업이다.
가계 부문에서 예금을 받아 기업 부문에 빌려주고 그 금리차이(예대마진)를 먹고 산다.
은행의 수입원이 단순히 예대마진만은 아니고 여러가지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도 받는다.
상당수 수수료가 업무 원가에 크게 못미쳐 예대마진이 은행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는다.
일반 국민들의 처지에서 보면 은행들이 예금금리만 내리고 대출금리는 함께 내리지 않는 것이 얌체짓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일반 국민들에게 더 유리한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면서 1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공적자금은 자칫 우리 세대를 지나 다음, 그 다음 세대에까지도 물려주어야 할지 모를 엄청난 빚이다.
은행이 부실해지면 공적자금을 다시 쏟아부어야 할 판에 은행들에게 무작정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서민 가계 인하 혜택 상대적으로 미미 대출금리가 내려가면 물론 은행에서 돈을 빌린 서민 가계의 부담이 줄기는 한다.
하지만 그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만일 1천만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금리가 1%포인트 인하된다면 연간 10만원의 이자가 줄어든다.
반면 기업들은, 특히 대기업으로 갈수록 은행에서 대출받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엄청난 특혜가 된다.
웬만한 대기업이면 수백억, 수천억원의 은행 대출을 안고 있으니 금리가 1%포인트만 내려도 수억, 수십억원의 이익을 앉아서 남기는 셈이 된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의 처지에서 얼마 안되는 이자 경감이 욕심나 대출금리를 내리라 하면 열매는 대기업이 따먹는 결과가 된다.
더구나 은행경영이 부실해질 경우 은행은 이용하거나 안하거나, 적게 이용하거나 많이 이용하거나 관계없이 전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지난해 10월 은행들의 평균 예금금리는 연 6.05%, 대출금리는 연 8.51%여서 예대마진은 2.46%포인트였다.
이후 시중금리가 계속 하향 추세를 보이면서 올 2월10일까지 평균 예금금리는 연 5.49%로 떨어졌다.
대출금리 평균은 상대적으로 하락폭이 작아 연 8.31%를 기록했다.
예대마진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2.82%포인트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은행권의 대출 신규 취급액은 85조원 규모였다.
올해 신규 취급액을 100조원 정도로 가정하면 예대마진이 0.5%포인트 커지면 5천억원 이상의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대출금리를 내리라는 고객들의 요구도 꼭 근거가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선진은행들의 예대마진은 우리 은행들보다 훨씬 높아 4%포인트를 넘는다.
또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올해 말까지 직원 1명당 2억원의 이익을 남기도록 양해각서를 체결했기 때문에 섣불리 대출금리를 내릴 수 없는 실정이다.
예대마진을 늘리지 못한다면 결국 은행들의 경영수지 개선은 수수료쪽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은행들이 받고 있는 수수료가 제대로 현실화돼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원가에 크게 못미치는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는 국민들 사이에 은행을 공공기관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있어서, 은행에서 수수료를 받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내 돈을 예금해주는데 무슨 수수료를 따로 받는냐는 심리도 한몫을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은행들은 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를 정액권은 50원, 일반권은 200원 안팎을 받는다.
지난 93년 2월 은행들이 자기앞수표 발행에 대한 수수료를 받기 시작하자, 은행고객들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은행들은 자기앞수표가 은행으로 돌아오면 돈을 내주고 난 뒤에도 10년을 보관해야 하는 등 처리비용이 상당하다.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표 취급원가는 현행 수수료의 10배가 넘는 2300원에 이른다.
수수료가 원가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은행 경영이 기본적으로 예대마진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은행들은 하소연한다.
은행들은 여론에 떠밀려 대출금리를 조금씩 내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은행들이 내리고 있는 것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가 확실한 대출상품들이어서 대출금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은행들, 새로운 수익원 개발해야 은행들은 또 가계대출이 기업대출보다 연체되는 비율이 낮은데도 오히려 가계대출에 더 비싼 금리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가계대출의 연체율은 1.51%로 기업대출의 2.60%보다 훨씬 낮았지만, 금리는 가계대출이 9.48%로 기업대출의 8.11%보다 더 높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 은행들의 예대마진 폭이 절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대출금리 산정방식을 좀더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서는 최근의 시중 자금사정이나 경제현실에 비추어 은행들의 대출금리는 전반적으로 하향 움직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시중의 현금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한은도 당분간 콜금리를 현상유지하거나 인하할 전망이어서 시중 돈을 적어도 지금보다 조이지는 않을 게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외환위기와 기업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금융부채를 함부로 늘려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이 생겨났고, 투자결정도 신중해져서 자금수요는 크게 늘지 않을 전망이다.
돈은 많고 돈을 쓰려는 수요는 많지 않게 되면 돈 값인 금리가 떨어지는 추세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내려 고객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새로운 수익원 개발을 비롯한 수익기반의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금리의 달콤함을 즐기다 다시 은행 경영이 부실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