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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무세제 세탁기, 대우 오명 씻나
[비즈니스] 무세제 세탁기, 대우 오명 씻나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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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 건 프로젝트 결과 출시 임박… 효율성·경제성 여부 업계 촉각 “기름 대신 물로 가는 자동차가 나온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세제 없이 때를 제거할 수 있는 세탁기 출시는 ‘물로 가는 자동차’가 나온 것과 같은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 대우전자 사람들은 무세제 세탁기 제품의 출시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한다.
세제가 필요없는 세탁기는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9월7일 대우전자는 무세제 세탁 시스템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경원엔터프라이즈와 손잡고 ‘무세제 세탁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제품은 특수금속으로 만든 전극 사이에 촉매제를 넣은 뒤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물의 성질을 변화시킴으로써 때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라고 대우전자는 설명했다.
애초 대우전자는 이 신제품을 지난 9월19일에 정식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발표 예정일 당일에 발표일이 10월9일로 돌연 연기됐다.
9월19일 오전까지만 해도 발표를 앞두고 들떠 있던 대우전자 홍보팀은 오후 들어 발표 연기 사실을 통보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미국 테러 사태에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사운을 걸고 추진해온 이번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것은 시기상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대우전자는 설명했다.
사뭇 비장한 사유다.
소비자 고정관념 깨는 게 관건 국내의 무세제 세탁기 개발 역사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8월 경원엔터프라이즈는 대우전자와 신동방그룹 관계자를 초청한 가운데 무세제 세탁 시스템 시연회를 열었다.
세계 최초로 국내에 선보인 무세제 세탁 기술은 업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의 상용화가 늦어지고, 참여업체였던 대우전자와 신동방이 99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되면서 제품 개발은 진전되지 못했다.
게다가 신동방의 주가조작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개발작업이 난항에 빠졌고, 무세제 세탁기의 상용화는 ‘한때의 일화’로 잊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우전자와 경원쪽은 다시 손을 잡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대우전자가 회생의 승부수로 무세제 세탁기를 선택하고, 지난해 8월부터 제품 개발에 재시동을 걸었다.
경원쪽도 기술개발을 가속화했고 무세제 세탁기의 기반 기술인 ‘세탁수 제조장치’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개발작업이 다시 진전을 보이면서, 제품 상용화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9월 양측의 공동 발표로 제품 상용화가 가시화한 것이다.
사실 무세제 세탁기는 한국보다 한발 앞서 일본에서 이미 출시된 바 있다.
3년 전인 98년 일본 산요전기가 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세탁기를 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산요전기의 무세제 세탁기는 세척력이 기대에 못미쳐 시장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산요전기는 올해 6월26일 세척력을 크게 강화한 무세제 세탁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하고, 8월부터 두가지 모델을 대당 11만~12만엔(약 120만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도시바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무세제 세탁기 개발을 시작해, 현재 제품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본 업체에 선수를 빼앗겼지만, 대우전자는 오히려 이를 호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을 뒤집는 파격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데 대한 위험 부담을 산요쪽이 먼저 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접적인 홍보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무세제 세탁기 기술 수준이 일본 업체들보다 앞서 있다는 자신감이 대우전자에게 여유를 주고 있다.
산요전기가 출시한 무세제 세탁기는 세제를 배제할 수 있는 기술을 완벽히 구현하지 못한 제품이라고 대우전자는 주장한다.
산요전기의 제품은 무세제 세탁이 가능한 일부 세탁물에 한해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무세제 세탁 코스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대우전자의 무세제 세탁기는 ‘기술적 완벽함’을 구현한 제품이라는 게 대우전자의 설명이다.
오히려 기술이 너무 앞선 탓에 소비자들을 믿게 하는 게 관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우전자의 한 관계자는 “세제 없는 세탁은 불가능하다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이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자신감이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고려해 고민 끝에 세제세탁 코스를 별도로 추가했다”고 말했다.
세제업계·경쟁업체, 회의적 반응 대우전자가 말하는 무세제 세탁기는 과연 세제를 없앨 수 있을까? 대우전자의 무세제 세탁기 출시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일단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쟁업체의 세탁기 연구원은 “무세제 세탁기는 연구원들의 오랜 꿈”이라며 “세제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기술들을 연구해왔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효과를 입증한 것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산성수나 알칼리수 등 물의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키는 시도에서부터 오존이나 소금 등 대체물질을 이용한 세척효과 실험 등 갖가지 연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대우전자가 내놓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물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촉매 선택이나 변환 순서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아직 제품이 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상품성을 지닐 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현재로선 어렵다고 본다”고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당연히 세제 업계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마디로 무세제 세탁기가 세제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대우전자 제품 출시로 세제 매출이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다른 세제 업체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이들은 세탁과정에서 세제를 아예 필요없게 만들 만큼 혁신적인 제품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대해 대우전자는 일단 제품 발표일까지는 공식적인 답변을 피하겠다는 자세다.
하지만 내심 ‘두고보라’는 눈치다.
사운을 걸고 추진해온 프로젝트인만큼, 예상을 넘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대우전자는 자체 실험에서 세제를 넣어도 제거하지 못한 기름때나 핏자국까지 무세제 세탁 시스템을 통해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전자가 발표일을 연기하면서 기술과 경제성 검증의 시점은 미뤄졌다.
다만, 경쟁업체 사람이든 세제업체 사람이든 “‘대우전자 주장이 맞다면’ 그것은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세탁과정도 단순화시킴으로써 관련 산업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하는 데 인색하지는 않다.
세탁기의 국내시장은 연간 1조2천억원, 해외시장은 18조원 규모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대우전자의 무세제 세탁기 발표가 그야말로 ‘세탁 혁명’을 일으키면서 세탁기 시장 판도를 뒤흔들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제품의 성능과 경제성만 입증된다면, 최소한 경영난에 허덕이는 대우전자를 회생으로 이끄는 하나의 돌파구 역할을 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아직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대우전자의 무세제 세탁기 제품 발표일인 10월9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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