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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약속의 땅, 휴대폰을 울려라
[비즈니스] 약속의 땅, 휴대폰을 울려라
  • 텔아비브=장근영 기자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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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큐리텔, 이스라엘 단말기 시장 진출… 삼성전자·SK텔레텍과 한판 경쟁 지중해의 밤.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지중해의 물결이 도심의 불빛을 받아 번득이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 텔아비브 북단의 한 뒷골목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저녁 8시가 넘어 맥주 바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욱 바빠진다.
추억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나오는 갱들의 은신처 같은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뭘까? 바 앞에서 피에로 복장을 한 젊은 남자가 쉴새없이 손님들에게 아양을 떤다.
죽마를 타고 휘청휘청 걷다가 손님들이 몰려들면 즉석사진을 찍어 선물한다.
아리따운 이스라엘 아가씨가 아랍 소주 한번 마셔보라고 권한다.
바 안에는 맥주를 서빙하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손님들은 행사의 목적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짜 술과 파티에만 관심이 있다는 눈치다.
세계 어느 민족이든 노는 걸 싫어하는 민족이 있을까마는, 이스라엘 사람들만큼 축제를 즐기는 민족도 없다고 한다.
이런 파티는 새벽녘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한국인 가운데 대사관 직원과 현대 계열사 관계자들도 맥주를 마시며 쇼를 보고 있다.
행사가 본격적인 막을 올리자, 바 안에서는 희뿌연 드라이아이스가 폭음과 함께 쏟아져나오고, 그 속에서 무희들이 춤을 춘다.
지역 가수도 초청돼 흥을 돋운다.
지난 9월3일 한국의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인 현대큐리텔이 이스라엘 시장 출시를 기념해 벌인 이 행사에는 현지 지역주민들,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국내 직원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하지만 정작 행사를 주최한 쪽에서는 제품 홍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현대 직원들은 제휴한 현지 업체 관계자 몇몇과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다가 간혹 회의실 같은 공간에서 짧은 얘기를 주고받는 게 고작이다.
이제부터는 마케팅 싸움이다 그렇다고 간단한 공식 행사가 없을 리는 없다.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관 이태식 대사는 행사장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 '현대의 휴대전화 단말기가 판촉 카피인 ‘미니막스’(MINIMAX)의 말 뜻대로 작지만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하자'며 분위기를 돋웠다.
휴대전화 판매를 대행하는 이스라엘 다이텔레콤의 모기업인 포알린인베스트먼트의 빅터 켈러너 회장이 짧은 인사말을 덧붙였고, 현대큐리텔 서울 본사에서 출장나온 조경섭 상무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주민들을 귀찮게 하는 공식행사는 이것으로 끝이다.
계속 술 파티가 무르익어 간다.
이런 마케팅은 이미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 흔히 하곤 한다.
행사에 참석했던 이스라엘 한국무역관(코트라) 김명구 차장은 “해외에서 마케팅을 할 때는 요란한 제품 선전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마케팅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분위기 띄우기에 불과하다.
현지인들의 문화에 맞는 자연스러운 론칭(출시)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현지인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하다.
이미 그 지역에 진출해 있는 계열사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 역시 계열사 활용 전략을 쓴다.
현대는 지난해 현대차를 이스라엘에 팔아 제법 재미를 봤다고 한다.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다소 떨어졌지만, 지난해는 쏠쏠한 이문을 남겼다고 한다.
지난해 현대차는 이스라엘에서 판매율 2위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스라엘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한국인 유학생 고양주씨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동안 유럽식의 기능성 차에 익숙해 있었는데, 현대가 부드러운 디자인의 세단을 선보이자 앞다퉈 구입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길거리에서 현대차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대는 이제 이를 발판으로 휴대전화 시장도 뚫어보겠다는 포부를 밝힌 셈이다.
현대차는 최근 유로화 약세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고전하고 있다.
현재 판매율 4위를 보이고 있는 현대차는 8월부터 가격을 내려 다시 시장점유율 높이기에 나섰다.
아울러 이번에 선보인 휴대전화 단말기(국내에서 판매되는 ‘네오미’와 같은 사양)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현대차와 연계한 공동 마케팅을 펼친다.
이를 위해 수출시대의 주역이었던 종합상사쪽도 발벗고 나섰다.
현대종합상사 텔아비브 사무소의 김기섭 차장은 “현대차를 사는 사람들에게 옵션을 주는 식으로 단말기 판매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이스라엘의 현대차 딜러는 쇼룸과 애프터서비스센터를 34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현대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놓은 탓에 이를 이용하면 매출 신장에 큰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현대가 운영하는 면세점을 통한 포인트 적립제 등을 통해 판매를 늘린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
현대큐리텔은 지난 5월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에서 떨어져나온 휴대전화 단말기 전문 생산업체다.
규모면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작다.
현대큐리텔은 지금 국내에서 세원텔레콤, 어필텔레콤, 텔슨전자, 팬택 등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물론 현대큐리텔이나 이들 업체 모두 휴대전화 단말기 전문 생산업체들이다.
이들은 모두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에서 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해외쪽은 아무래도 브랜드 파워가 강한 현대쪽이 돋보인다.
현대큐리텔은 현재 매출의 75%를 해외쪽에서 얻고 있다.
따라서 인구 600만명의 작은 이스라엘 시장이지만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 그냥 넘길 수 없다.
이스라엘의 이동전화 단말기 시장은 유럽표준방식(GSM)이 40%, 시분할다중접속(TDMA)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 각각 30%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CDMA 시장은 삼성전자가 98년에 진출해 큰 성과를 올렸다.
특히 99년 코카콜라와 공동 마케팅을 펼쳐 제법 재미를 봤다.
하지만 올해 SK텔레텍에 이어 현대큐리텔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삼성이 이스라엘 CDMA 단말기 시장의 50% 이상을 정복한 상태”라며 “현대까지 뛰어들어 삼성이 심어놓은 한국 제품의 고가 이미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 초기 진입단계에서는 아무래도 저가로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관계자는 “기업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며 “98년에 우리가 이스라엘 통신 서비스 업체인 펠레폰의 1차 납품업체로 선정됐는데 삼성쪽에 빼앗겼다”고 맞받아친다.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인만큼 해외판로를 뚫는 것은 중요하다.
삼성전자쪽은 앞으로 GSM과 TDMA 비중도 늘릴 생각이다.
아울러 이스라엘 시장 자체의 매력 외에, 이 시장이 중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중요하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벌이는 경쟁에서 국적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누구든 경쟁에서 이겨야 낯선 시장에서 발 붙이고 버틸 수 있다.
현대큐리텔이 이스라엘에서 국내 업체들과 벌이는 시장쟁탈전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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