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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누세, 나누세, 디지털을 나누세" 흥겨운 컴활
[문화] "나누세, 나누세, 디지털을 나누세" 흥겨운 컴활
  • 이경숙
  • 승인 2000.08.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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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였지만 햇볕은 한낮처럼 뜨거웠다.
8월1일 전남 곡성읍 신리 마을회관 뜰에 마련된 농촌지식정보화 시범마을 컴퓨터 전달식에는 마을주민 50여명과 이 지역 국회의원인 김효석(52) 민주당 의원, 고현석(58) 곡성군수 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따갑게 내리쏘는 햇살을 뚫고 이선재(41) 이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현재 지급된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속도가 느립니다.
다음에는 농가에서 필요한 사양이 되는 컴퓨터를 주셨으면 합니다.
또 농민들이 초고속망을 쓰려고 해도 3만8천원은 너무 비쌉니다.
영세한 농민들이 쓸 수 있도록 김효석 의원님과 고현석 군수님께서 한국통신과 논의하셔서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컴퓨터 전달식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사의 말’이었다.
순간 김 의원과 고 군수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이장의 ‘감사인사’가 끝나자 마을주민들과 컴퓨터봉사활동(컴활)을 나온 호남대 컴퓨터동아리 학생들은 밀납인형같이 굳은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뭔가 편치 않은 분위기였다.
몇몇 마을주민과 손인사를 마친 김 의원과 고 군수는 담양과 장성에 준비돼 있는 다음 행사를 치르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전시행정 아닙니까” 한때 어색한 분위기 이 불편한 분위기의 발단은 중고컴퓨터 30대였다.
컴퓨터 전달식 전날인 7월31일, 이선재 이장은 설레는 마음으로 마을에 배달된 컴퓨터상자들을 뜯었다.
그러나 ‘삼보 팬티엄Ⅲ 15인치 모니터’라고 쓴 상자에서 나온 것은 먼지때가 잔뜩 낀 메모리 16메가짜리 팬티엄(586) 중고컴퓨터였다.
게다가 다섯대는 고장이 나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받을 것이 중고컴퓨터인 줄은 알았지만 이선재 이장은 ‘농민의 수준을 어떻게 보고 이런 걸 주는 건가’ 싶어 기분이 상했다.
이장은 이미 1년 전부터 모뎀으로 인터넷을 접속해 농림부와 농협 사이트에서 농산물가격 등 관련 정보를 얻어 활용할 정도로 컴퓨터에 익숙해 있는 터였다.
이장이 보기에 기증받은 컴퓨터는 연습용 외엔 별로 실용성이 없어 보였다.
컴활 나온 학생들까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전시행정’에 동원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장은 농촌활동의 고됨을 겪어보라는 심정으로 이부자리 한채도 내어주지 않았다.
이장은 이내 마을회의를 소집했다.
기증받은 컴퓨터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회의는 두시간 남짓 계속됐다.
주민들의 의견은 일단 연습용으로라도 컴퓨터를 확보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컴퓨터 전달식이 끝나고 교육이 시작된 뒤에도 처음의 불만은 가시지 않았다.
“컴퓨터 상점 하는 친구를 불러다가 물어보니, 그 컴퓨터로는 초고속인터넷을 쓰기가 어렵다고 하데요. 거기다 고장까지 나 있고…. 우리가 뭐, 달라고 해서 받은 것도 아닌데…. 그런 것은 보좌진이 확인해보고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장의 지적에 김효석 의원실의 설재록(52) 비서관은 뜻밖에도 선선히 실책을 수긍했다.
하룻동안 곡성, 담양, 장성 등 3개군을 돌아 다시 곡성으로 돌아온 탓인지 그의 얼굴은 상당히 피곤해보였다.
“준비를 잘못한 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기업체에서 컴퓨터를 기증한다고 해서 쓸 만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담양하고 장성에서도 지금처럼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의원님이 초선 아닙니까. 공약도 했지만 농촌정보화에 대해 겁나게 의지가 강해요. 고장난 5대는 다른 컴퓨터로 교체해드릴 겁니다.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다음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 설 비서관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이장의 얼굴에는 아직도 마뜩잖은 기색이 역력했다.
마을회관 교육장엔 동네어르신·아줌마 기웃기웃 이장의 마음이 풀린 것은 교육에 몰입한 주민들과 컴활학생들을 보고 나서였다.
교육이 시작된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그 전에 이미 교육장인 마을회관은 주민들로 꽉 찼다.
가장 먼저 컴퓨터를 차지한 이는 미닫이문 밖을 기웃거리던 동네아이들이었다.
잠시 뒤 회관 앞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담소하던 동네 어르신 몇분도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왔기 때문인지 느지막히 나타난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리가 없어 미닫이문 바깥에 서 있었다.
마을회관은 금세 가르치는 컴활학생들과 질문하는 마을주민들의 목소리로 왁자지껄해졌다.
혜경이(9)는 자기 컴퓨터를 놔두고 연신 옆자리를 힐끗거린다.
대학생 선생님이 옆자리 미지(9)만 오래오래 가르쳐주는 것이 샘났던 모양이다.
그림판에서 공룡을 그리던 미지가 삭제키와 마우스로 그림을 지우자 혜경이는 야무지게 “종이판을 갈면 되잖아”하고 끼여든다.
쉰을 넘긴 어르신들의 표정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모니터에 몰두한 얼굴이 영락없이 재미난 오락기에 푹 빠진 소년 같다.
그렇지만 재밌냐, 어떻냐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병윤(56)씨는 시큰둥하게 답한다.
“학생들, 가뿌리면 그만이제. 그담에 우리가 뭐 하나. 대학 간 딸이 오면 또 해야제.” 그러면서도 김씨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문 밖에서 서성이던 아주머니 몇이 밤 9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여기 올라구 밥도 안 묵고 왔어. 아까처럼 자리가 없을까봐. 저그 앉은 작은 이모는 나보다 먼저 왔드라구.” 김서남(51)씨 말에 중국교포 출신의 이춘옥(35)씨는 대답없이 수줍게 웃는다.
스페이스바는 “긴 거”, 엔터키는 “큰 거” 오전 10시, 오후 2시에 교육을 받았던 김병옥(62)씨는 밤 9시 교육에도 참가해 하루종일 ‘개근’한 주민이 되었다.
아예 작정하고 돋보기까지 준비해왔다.
김씨를 가르친 최치훈(22)씨는 “아침에 한글을 시작했는데 저녁에 벌써 표 그리기까지 배우셨다”며 싱글벙글한다.
이들 어린 ‘선생’들의 열정도 주민들 못지않았다.
수없이 반복해 설명해도 계속 모르겠다고 하는 주민 곁에 꼬박 지켜앉아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영어를 모르는 주민들이 ‘스페이스바’와 ‘엔터키’ 따위의 표현을 알아듣지 못하자, 한 학생은 고심끝에 ‘긴 거’, ‘큰 거’라는 말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첫날 교육은 예정시간을 30분 이상 넘긴 밤 11시에야 끝났다.
학생들은 그제서야 아픈 허리를 벽에 기댔다.
컴퓨터 책상이 없어 하루종일 구부린 채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컴활기간 4박5일 동안 변함없이 열심이었다.
컴활 이튿날, 이선재 이장은 학생들이 묵는 마을회관에 이부자리 몇채를 슬쩍 갖다놓았다.
마지막날, 컴활팀장 최용귀(22)씨는 올 때보다 더 많은 컴활계획을 머리에 쟁여넣고 있었다.
“신리가 정보화시범마을이니 다른 마을도 정보화하려면 신리마을이 잘해야 해요. 정보통신망이 지원되면 사이버상에서 마을사람들이 모든 정보와 의견을 나눌 수 있어요. 전용선 하나만 들어오면 라우터로 모두가 정보망을 쓸 수 있을 텐데….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개발하면 되고요.” 영농일지 적기, 전자상거래 홈페이지 구축 등 다음 컴활의 활동내용이 그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정보화의 미래인 학생들과, 디지털 경제의 변방인 농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도농간 정보격차를 뛰어넘을, 변화의 동력이었다.
역시 진실한 마음은 초고속망보다 빠르게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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