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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기업 자금사정 '나 떨고 있니?'
[초점] 기업 자금사정 '나 떨고 있니?'
  • 조준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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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회사채 순상환으로 전환… 은행 기업여신 심사 강화로 차환발행에도 빨간불 전반적인 회사채시장 경색의 조짐인가? 10월 이후의 회사채 시장을 바라보는 눈길마다 이런 걱정이 가득하다.
지난 9월 한달간 회사채 발행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순상환으로 돌아선 것도 이런 걱정을 부추긴다.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적용 기업을 뺀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는 9월 9712억원 순상환을 나타냈다.
회사채 발행이 순상환을 보인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기존의 산업은행 회사채 신속인수 대상 기업 말고도 9월11일 미국 테러사건 이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업계의 자금난이 더욱 깊어진 것도 시장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항공업계가 전반적인 국내 기업들의 신용도를 재평가하게 하는 시발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단기자금의 부동화 현상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요구불예금을 포함한 은행권의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 증가액은 지난 8월 3조4649억원에서 9월 10조6308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 8월 1조원을 조금 웃돌았던 투신사 머니마켓펀드(MMF) 증가액도 한달새 4조3680억원으로 치솟았다.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금융권을 맴도는 단기 부동자금이 지난달 16조원이 넘게 증가한 셈이다.
한은 관계자조차도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눈에 띄게 큰 규모'라고 말할 정도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 금융시장은 미국 테러사태와 보복전쟁을 배경으로 회사채 순상환 전환,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는 단기 부동자금 급증, 새로운 부실기업 출현 가능성 등 자금시장 경색이 나타날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금시장 경색이 시작됐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관건은 회사채 순상환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다.
이것이 기업들의 자금난 조짐을 뜻하는 것이라면, 10월 이후 자금시장의 신용경색 현상은 점점 심화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은행은 회사채 순상환은 전반적인 자금시장 경색의 조짐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리가 계속 떨어지자 금리 역마진을 우려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이전에 발행했던 높은 금리의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회사채를 조기 발행해 오던 것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은 김성민 채권시장팀장은 '지난 8월 중순까지 대기업들은 금리가 바닥권이라고 보고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렸는데, 금리가 계속 떨어지자 조기 발행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최근 나타난 회사채 순상환 현상은 전반적인 기업신용도 악화에 따른 신용경색의 결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테러사태 이후 자금시장 경색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테러 다음날인 지난 9월12일부터 추석연휴 직전인 28일까지 회사채는 오히려 2552억원어치가 순발행되기도 했다.
또한 회사채 발행규모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한은이 지난 7, 8, 9월 잇달아 세차례에 걸쳐 콜금리를 1%포인트 내리면서부터다.
이와 함께 지난 7월 2조8853억원의 순발행을 기록한 일반 회사채는 8월 6509억원으로 급감했다.
금리 하락이 대기업들의 회사채 조기 발행 자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순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거의 15조원에 이른다.
이런 판단은 일반 회사채에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 편입 회사채, 산업은행 신속인수 회사채, 채무조정 관련 전환사채(CB) 등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BB에 해당하는 회사채를 제외한 회사채의 발행 동향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회사채들을 뺄 경우 회사채 발행은 지난 8월부터 순상환으로 돌아섰다.
지난 7월 2조4950억원 순발행에서 8월 1646억원 순상환으로 이미 전환된 것이다.
투기등급인 BB- 등급 회사채는 올 들어 지속적으로 순상환 추세를 보여왔다.
기업의 긴급자금 수요를 나타내는 당좌대출한도 사용비율도 지난 9월 12.5%로 전월보다 1.8%포인트 낮아진 것도 자금시장 경색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6월 이후 순발행을 지속하던 투자적격 등급의 마지막 등급인 BBB- 등급과 그 위단계인 BBB+ 등급 회사채가 지난 9월 각각 1320억원, 5015억원 순상환으로 전환된 점이다.
이 두 등급의 회사채가 순상환으로 바뀐 데는 미국 테러사태와 보복전쟁 등으로 경기회복이 적어도 6개월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은행들이 기업에 대한 여신심사를 강화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은은 미국이 전개하고 있는 테러 보복전쟁의 양상에 따라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회사채 발행여건이 점점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은행들의 기업여신 심사 강화가 자칫 올해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차환발행을 매우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일반 회사채(법정관리, 화의 및 워크아웃 기업 제외)는 10월 6조1300여억원, 11월 5조4천여억원, 12월 5조3천여억원 등 17조원에 이른다.
지난 8월 한은에서 발표한 회사채 발행 동향 자료에 바탕해 차환발행 물량을 추산하면, 차환발행 물량은 1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8월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24조5천억원, 이중 A등급 12조5천억원, BBB 등급 7조원, BB 등급 이하 5조원이었다.
지난 8, 9월 만기 도래한 7조2천억원 가운데 A등급은 4조1천억원, BBB-와 BBB+등급은 1조3천억원, BB등급 이하는 1조3천억원 등이었다.
'회사채 순상환 신용경색 결과 아니다' 은행들의 여신 심사가 더욱 강화할 경우 BBB-와 BBB+ 등급 회사채 차환발행이 점점 어려워질 공산이 커진다.
자칫하면 이 두 등급 회사채까지 신용보증기금 보증에 바탕한 프라이머리 CBO에 편입시켜 차환발행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BB등급 이하 투기등급 회사채는 더욱 문제다.
우량등급인 A등급에 속하는 대기업들이 조기 발행을 자제하고, BBB-와 BBB+ 등급 회사채가 차환발행이 어렵게 되면, BB등급 회사채를 편입시키기 위한 회사채 풀(pool)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흥창을 비롯해 프라이머리 CBO에 회사채 편입된 기업들이 올들어 5~6곳이 부도가 난 것도 차환발행에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우량기업들의 회사채까지 차환발행에 곤란을 겪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새한이 부도가 나면서 대우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의 전반적인 기업 신용평가가 강화하면서 빚어진 극심한 신용경색 현상이 다시 빚어질 가능성이다.
이 신용경색은 결국 지난해 연말 산업은행이 ‘총대를 메고’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한 뒤에서야 진정됐다.
현재 새한과 같은 ‘악재’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꼽히고 있는 부분은 항공업계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연말까지 2500억원의 회사채가 돌아오고, 아시아나의 경우 만기 도래하는 기업어음만 해도 2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 주변에서는 한 항공업체가 추석연휴 기간 동안 자금조달을 위해 사채시장을 기웃거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을 정도다.
항공업계의 어려움은 또 한번 금융구조조정의 물결을 불러올 수도 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속한 금호그룹의 주거래 은행은 조흥은행이다.
조흥은행은,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신규자금 지원에도 쌍용정보통신 매각이 늦어져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한 쌍용양회의 주거래 은행인데다, 예금보험공사와 맺은 경영개선 이행약정에 따른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이미 다른 은행과 합병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금융시장 일각에선 쌍용양회와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 이른바 회사채 신속인수 대상기업들을 뇌관으로 꼽기도 한다.
올해 연말 신속인수제가 종료됨에 따라 이 기업들은 현재 차례대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구촉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신속인수제가 1년간 채무행사를 유예한 반면, 구촉법에서 최대 채무행사 동결기간은 최대 3개월(1개월 연장 가능)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신속인수제를 대신하는 구촉법이 신속한 기업 정상화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엄청난 시장불안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금난 우량기업들로 확산 우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은이 지난 10월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차환발행에 유리한 금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책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처럼 금리가 급속히 떨어지면 회사채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예가 지난 10월9일 통화안정채권 입찰이다.
한은은 당시 8일부터 일주일 동안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보다 5천억원이나 많은 통안채(만기 364일물) 1조7천억원어치를 입찰했는데, 여기에 무려 3조600여억원이 몰렸다.
낙찰금리는 시장금리인 4.18~4.19%보다 훨씬 낮은 4.15%에서 형성됐다.
한은에선 '지난 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단기금리를 0.5%포인트 낮춘 이후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는데 갑자기 많은 돈이 몰렸다'며 '과열 조짐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국고채 금리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한은의 콜금리 동결 직후 국고채 금리(3년물)는 매도 주문이 몰리며 상승세로 반전해 4.82%로 전날보다 0.32%나 올랐다.
문제는 금리가 단기간 안에 안정을 찾지 못하면 회사채를 기관들이 회사채를 사들일 유인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채권시장 일각에선 올해 2월과 5, 6, 7월처럼 금리가 점진적인 하향 안정세를 빠른 시일 안에 보인다면, 회사채 발행에 최적의 환경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새로운 빅카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지난 9월14일 발효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제2금융권 등 일부 금융기관의 반대로 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되고 ‘무임승차’하는 금융기관을 막자는 취지에 도입됐다.
총 채권액을 기준으로 채권금융기관의 75% 이상이 채무재조정 등 정상화 방안에 동의하면 나머지 금융기관도 이에 따르거나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협의회에서 아예 빠지도록 한다는 게 뼈대이다.
구촉법은 전체 채권금융기관의 50% 동의로 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 소집일까지 채권 행사를 일단 동결시킨 뒤, 75%의 동의로 최장 3개월(1개월에 한해 추가 연장 가능)까지 채권 행사를 동결시킬 수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채권 행사 동결기간이 1년인 것과 비교해, 구촉법에서 가능한 기간은 최장 4개월인 셈이다.
75%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채권 행사 유예기간이 끝나면 해당기업은 법정관리나 화의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
이전에는 계속 안건을 수정해가며 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적용대상 기업은 금융기관 신용공여액(여신액) 500억원 이상인 기업이다.
구촉법 적용형태는 전체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채권은행 공동관리, 주채권은행 관리 등 세가지로 나뉜다.
법적 강제성은 없다.
채권행사 유예, 정상화 방안 등을 결의했다고 해도 이를 지키지 않은 금융기관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구촉법은 올해 말로 종료될 예정인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사실상 대체하게 된다.
이 법의 실효성 여부는 10월 안에 결판이 난다.
현재까지 하이닉스반도체, 쌍용양회, 현대석유화학 등 회사채 신속인수 대상기업 세곳과 신동방이 적용되고 있다.
제2금융권의 전환사채 인수 여부가 마무리되지 않은 현대건설도 이달 안에 구촉법의 적용을 받을 예정이다.
쌍용양회에 대해 채권단은 이미 구촉법에 따라 출자전환 1조7천억원과 신규 운영자금 2천억원 지원 등의 채무재조정방안을 확정한 상태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지난 10월10일 18개 채권은행 간담회를 열고 회사채를 갚는 데만 쓰도록 한 현금 3700억원의 사용제한을 풀어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결의한 데 이어 10월 안으로 전체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열어 최소 1조원 이상의 신규자금 지원 등 종합정상화 방안을 표결 처리할 계획이다.
구촉법이 처음 적용된 현대석유화학의 운명도 10월18일 열리는 전체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의에서 채권단은 출자전환 3천억원, 채무 만기연장 1조9천억원 등 정상화 방안을 확정한다.
신동방 채권단도 10월18일 열리는 전체회의에 37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방안을 상정해 표결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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