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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극한 미생물
[테크놀로지] 극한 미생물
  •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 승인 2001.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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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조건 생존법을 배운다 헬리코박터균, 고온 미생물 등 연구 열기 높아… 적응 메커니즘 밝혀 상업화 추진 모든 생물은 살기 편한 곳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곳에도 생명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한 환경에서 사는 미생물도 많다.
젊어서 고생한 사람이 나중에 큰 일을 하는 것처럼 이런 ‘극한 미생물’은 바이오 산업의 보물이다.
위장병의 주범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은 우리나라 사람의 위에서 많이 발견된다.
사실 위는 미생물이 살기에는 너무 열악한 장소다.
위 속은 매우 강한 산성 용액으로 가득 차 있다.
음식에 섞여 들어오는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다.
그 무서운 산성 용액 속에서 너끈히 살아가는 게 바로 헬리코박터균이다.
헬리코박터균의 생존 비결은 이 균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효소에 있다.
이 효소는 위 속에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분해해 암모니아로 만든다.
염기성인 암모니아는 산성 용액을 중화시키기 때문에 헬리코박터균이 위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보호막’인 셈이다.
더구나 헬리코박터균은 이 효소를 12개씩 짝을 지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사실은 얼마 전 포항공대 오병하 교수(생명과학과)가 밝혀내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리기도 했다.
헬리코박터균은 인간에게 위장병이라는 골칫거리를 안겨줬지만, 거꾸로 인간에게 큰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독한 산성 물질을 다루거나 산성 용액 속에서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 헬리코박터의 지혜를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대표적인 극한 미생물이 뜨거운 곳에서 사는 고온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일반적으로 열에 매우 약하다.
한때 과학자들은 100℃가 넘는 물 속에서는 어떤 미생물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극한 미생물에게 100℃는 아무것도 아니다.
깊은 바다 속의 해저화산 근처에는 뜨거운 물이 철철 흘러나오는 열수구가 있다.
열수구 주변은 빛이 없는데다 수압이 높고, 중심은 400℃에 달할 정도로 고온이어서 생명체가 살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도 여러 미생물이 살고 있다.
또 이 미생물은 햇빛 없이도 열수구에서 나오는 철, 황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
오히려 이런 미생물을 80~90℃ 고온에서 기르면 잘 자라지 않는다.
고기를 불에 구우면 딱딱해지는 것처럼 생명체는 뜨거운 곳에서는 단백질이 변하기 때문에 살 수 없다.
그러나 고온 미생물은 높은 온도에서도 단백질이 변하지 않는다.
이런 고온 미생물은 범인을 찾거나 친자를 확인할 때 쓰는 DNA 검사법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DNA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조사하려는 DNA 숫자를 고온에서 크게 늘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에 사용되는 효소가 바로 고온 미생물에서 발견된 것이다.
거꾸로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잘 사는 미생물이 있다.
북극이나 남극의 빙산 속에서 발견된 ‘폴라로모나스 바큐올라타’라는 미생물은 4℃에서 가장 잘 자란다.
이 미생물을 냉장고에 넣었다가는 그 냉장고는 얼마 안 가 미생물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캐나다의 한 연구팀은 북극에 사는 저온 미생물에서 동결 방지 단백질을 추출해 상업화하기도 했다.
고기를 저장하면서 효소 처리를 하면 고기 맛이 좋아진다.
문제는 생명체에서 나온 효소는 대부분 상온 이상에서 잘 활동하는 데 비해 고기는 냉동고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저온 미생물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염분이 많은 염전 같은 곳에서도 미생물은 살고 있다.
염도가 높은 곳은 삼투압이 높기 때문에 생명체에서 많은 물이 빠져나간다.
그러나 염전에 사는 미생물은 세포막에 있는 이온 펌프를 조절해가며 염전에 적응한다.
염전 미생물의 생존 비결을 정확히 알아낸다면 염도가 높아 쓸 수 없는 땅에도 식물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은 바이오 산업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생명의 뿌리를 찾는 데도 이용된다.
처음 지구가 만들어질 때 지구는 지금과 달리 오히려 극한 환경과 거의 비슷했다.
그 환경 속에서 만들어져 지금의 안락한 지구를 만든 것이 바로 극한 미생물이다.
극한 미생물 덕분에 우리가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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