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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3. 코리아 디스카운트 일단 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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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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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신용등급·채권시장 투자비중 상향조정… 펀더멘털 개선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 “월드컵 개최로 국가 이미지가 좋아지면 피치(Fitch)가 매기는 국가신인도 등급에도 영향을 주나요?” “하하하, 글쎄요. 국가신인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모릅니다만, 저한테는 분명 영향을 끼쳤습니다.
” 불쑥 던져진 질문에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명예회장인 로빈 몬로-데이비스의 얼굴에 아이 같은 웃음이 번진다.
그는 6월25일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서울 상암구장에 가서 한국-독일전을 봤다고 자랑한다.
“영국이 한국처럼만 뛰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한국 관중의 응원전도 인상적이었어요. 감명받았습니다.
” 공식적 위엄을 갖춰 피치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에 감사를 표시하던 전윤철 경제부총리와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장의 눈꼬리에 슬며시 미소가 걸린다.
세계적 신용평가사의 실세와 한 나라 경제를 책임지는 수장이 만난 심각한 자리에 짧은 순간 공감의 온기가 흐른다.
월드컵 이후 온 나라가 월드컵의 경제효과를 계산하느라 떠들썩하다.
한국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이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고, 국가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를 끌어올려 적어도 26조원의 경제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에서부터 심지어 5년간 100조원의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까지 갖가지 장밋빛 낙관론이 지면과 TV 모니터를 물들이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월드컵 마지막주 내내 해외에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피치는 6월27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두단계 상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의 장기 외화표시 채권은 외환위기 직전 수준에 거의 근접한 ‘A’ 등급을 인정받게 됐다.
외환위기 전 피치가 매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대만과 같은 ‘A+’였다.
6월25일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한국 채권시장에 대한 투자비중을 ‘시장수익률 수준’(Market Weight)으로 한단계 높였다.
메릴린치는 “수익률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한국 시장 비중을 높인 이유는 한국 경제가 외부적 압력이 약하고 내수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유럽 투자자들 관심 폭증 6월21일엔 ‘FTSE 지수’가 한국 종목의 비중을 아시아·태평양 지수에선 0.5%포인트 높인 15.4%, 세계 지수에선 0.1%포인트 높인 0.8%로 확대했다.
FTSE 지수는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 런던증권거래소가 공동으로 작성해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로, 주로 유럽계 대형 펀드들이 투자기준으로 참고한다.
한국팀 4강 진출의 파급력은 유럽에서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 권태신 국제금융국장은 한국 경제에 대해 문의하는 유럽 투자자들의 e메일과 편지가 크게 늘었다고 전한다.
“유럽 투자자들이 그 전에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다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유럽에선 올림픽보다 월드컵을 더 알아줍니다.
” 그는 7월3일 한국 경제를 유럽 투자자들한테 설명하기 위해 전윤철 부총리와 함께 런던에 갈 예정이다.
나라 안팎의 이런 열기가 과연 한국 경제 업그레이드에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장 먼저 반영하는 주식시장의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 없다.
피치의 국가신용등급 두단계 상향조정이라는 호재가 터져나온 6월27일 종합주가지수는 폭락을 멈추고 살짝 반등해 700대에 자리잡는 데 그쳤다.
2월부터 맹렬한 기세로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며 시세차익을 실현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패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LG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나스닥지수가 반등하는 등 각종 호재가 나왔지만 아직 미국 시장이 불안정해 투자심리가 바짝 얼어붙어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해도 이것이 수출증가 같은 확실한 실적으로 가시화하지 않으면 미국발 악재에 얼어붙은 국내외 투자자들의 마음은 여간해서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은 월드컵 개최와 4강 진출에서 큰 경제적 실익을 챙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들 어떠랴. 월드컵 내내 온 나라 사람들이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기쁨을 나눴다.
프랑스 월드컵에 이어 두번째로 ‘월드컵과 경제’에 관한 분석보고서를 낸 골드만삭스의 리서치팀장 짐 오닐은 “만약 한국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한국 사람들의 자신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팀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고 그 자신감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인터뷰 |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권태신 국장
‘“비즈니스 변방에서 중심으로”

주영 재경관 시절 재정경제부 권태신 국제금융국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고쳐야 할 점이 두가지 있다고 생각했다.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 둘 모두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 나오는 습성이었다.
그러나 월드컵 개최기간 동안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도 질서를 지켰고 낯선 이들을 향해 미소지었다.
“남을 의식하고 존중하는 사회에선 낯선 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어줍니다.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을 때 웃는다는 건 ‘난 네게 적의가 없다’는 표시죠. 우리나라에도 그런 정서가 생긴 겁니다.
” 이런 풍토는 한국이 첨단산업, 금융산업, 서비스산업의 중심지로 새롭게 자리잡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사람이 맘 편히 살기 좋은 땅에 외국인도, 외국기업도 들어온다는 것이다.
편리한 복지시설, 자유로운 영어 사용환경, 투명한 기업 풍토, 선진적 외환제도 등 내외국인을 위한 기업환경은 정부가 만들어나갈 몫이다.
그는 해외투자자한테 한국 축구팀의 변화를 예로 들어 한국 경제의 변화를 설명한다고 한다.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을 등용한 한국 축구팀은 외국인 경영자에게 문을 연 한국 기업을, 한국선수간의 수평인 화합은 연고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한 한국 기업의 분위기를, 높아진 기초체력은 크게 보강된 한국 경제의 기본체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축구팀이 골을 넣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실적 중심주의가 정착된 거죠. 한국 기업도 요즘엔 이익과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내실 경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달라진 한국 경제의 증거로 내세운다.
IMF 구제금융기 이후 4년 동안 한국에 들어온 FDI 규모가 그전 35년 동안 들어온 금액(250억달러)의 두배가 넘는 520억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올해 5월까지 들어온 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월드컵 개최의 힘은 이런 기세를 더욱 북돋울 것이라고 권 국장은 내다본다.
그가 최근 만난 BNP파리바, 골드만삭스 등의 펀드매니저들도 매우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여세를 몰아 한국을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겠다는 것이 ‘주식회사 한국의 투자홍보(IR) 담당자’가 전하는 한국의 미래 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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