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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동원, 左금융 右식품 체제
[비즈니스] 동원, 左금융 右식품 체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2.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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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수산회사인 동원산업을 모태로 성장한 동원그룹이 금융과 식품의 양대 그룹 체제로 재편됐다.
동원산업은 7월14일 식품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지분 15.6%를 동아타이어에 전량 매각했다.
이로써 동원산업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과,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한 식품그룹 사이의 지분 관계가 대부분 정리됐다.
내용상 계열분리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이미 각 회사들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어 계열분리 자체가 큰 의미는 없다”며 “계열분리라는 복잡한 법적 절차를 굳이 밟아야 할 필요성을 아직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그룹과 식품그룹으로의 분리는 동원그룹의 후계구도와도 곧바로 연결된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큰 아들 김남구(39)씨는 금융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동원산업의 최대주주로서 지분 53.09%(특수관계인 포함)를 갖고 있으며, 금융부문 주력 계열사인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둘째 아들 김남정(29)씨는 식품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최대주주로 지분 84.4%(특수관계인 포함)를 갖고 있으며, 이 회사 과장으로 실무를 배우고 있다.
지분 구조상 금융그룹은 남구씨가 맡고, 식품그룹은 남정씨가 맡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내세울 만한 주력 계열사 없어


그러나 그룹 재편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금융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동원산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인지, 아니면 금융지주회사로 별도의 회사를 설립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질적인 사업부문에 속하는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와 동원ENC(동원정밀과 동원건설의 합병회사)의 처리도 과제로 남아 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이스텔시스템즈의 매각설을 강력하게 부인하며 “계열사간 지분 매각을 통해 그룹내 위치가 바뀌는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원그룹은 한때 서울은행의 강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동원그룹이 현금동원력이 풍부하고 ‘금융주력 그룹’의 기준에 가장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법은 비금융부문 자본 비중이 25% 미만이고, 비금융부문 자산 합계가 2조원 미만인 곳을 금융주력 그룹으로 분류하고, 이들에게는 최대 10%로 되어 있는 은행지분 동일인 보유한도에 예외를 인정해주고 있다.
즉 금융주력 그룹으로 인정받으면 대규모 기업집단이라도 은행을 단독 인수해 독자경영할 수 있다.
애초에는 동원그룹이 서울은행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하나은행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뜻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은행 인수 문제는 앞으로도 되풀이해 떠오를 가능성이 많다.
금융그룹이라고는 하지만 동원증권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수 있는 계열사가 없기 때문이다.
동원BNP투신운용, 동원경제연구소, 동원창업투자, 동원상호저축은행, 동원캐피탈 등 저마다 내실은 인정받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모두 중간그룹에 속해 있다.
더구나 7월29일에는 동원BNP투신운용이 프랑스의 BNP파리바와 합작관계를 청산했다.
3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BNP파리바는 신한금융지주와 새로운 합작관계를 맺었다.
동원BNP투신운용은 8월 중으로 사명을 ‘동원투신운용’으로 변경하고 상품명도 모두 바꿀 계획이다.
금융그룹 차원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문서 동원엔터프라이즈 이사는 “현재의 금융계열사만으로는 금융주력 그룹의 위상을 충족시키기 어렵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힘들다”며 “새로운 사업부문 진출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식품그룹도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식품그룹의 주력계열사인 동원F&B는 2000년 11월 동원산업의 식품사업부문이 떨어져나온 것이다.
분할 당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세계적 수산회사인 동원산업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동원F&B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식품산업은 수익성이 낮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동원F&B는 시장점유율 70%인 참치캔이 주력 상품이며 이밖에도 햄, 샘물, 김치, 생면, 김 등 40여 품목을 생산한다.
올해는 내수시장의 확대로 지난해보다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참치캔을 제외한 기타 상품의 경쟁력 부족 현상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참치캔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며 “음료수 등으로 품목을 다각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원그룹은 1969년 김재철 회장이 일본에서 신용으로 빌린 배 한척과 7명의 직원으로 설립한 동원산업에서 출발했다.
부산수산대를 졸업한 김 회장은 당시 원양어선 선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동원산업은 창업 직후부터 국내 수산업계에서는 선구적으로 인도양 출어에 나섰으며 계속해서 어업 선진국들의 세력권을 비집고 태평양 등 여려 원양 어장을 개척했다.
82년엔 국내 최초로 참치캔을 선보이며 식품회사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한신증권(현 동원증권)을 인수해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동원산업은 90년대 들어 주력인 참치사업 매출이 격감하면서 93년에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차 산업인 수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공위성 정보시스템 장비를 도입하는 등 원양어선 과학화로 위기를 타개했다.



“변화 적응 느리다” 비판도


동원그룹에는 ‘그룹’이 없다.
전문경영인인 CEO들이 중심이 돼 각 계열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도 동원증권에서 그렇게 길러진 CEO 중 한명이었다.
다른 대기업처럼 계열사간 내부거래나 지급보증도 거의 없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호출자가 제한되는 기업집단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그룹이라는 명칭도 쓰지 않았다.
지금도 그룹 업무를 전담하는 별도 조직은 없다.
동원F&B 홍보팀에서 그룹 홍보업무를 같이 처리하는 식이다.


김재철 회장은 99년부터 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룹의 큰 일들은 여전히 직접 챙긴다.
김 회장은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금융지주회사 격인 동원산업과 식품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즈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엄격한 2세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김남구 동원증권 부사장은 6개월간 원양어선을 타야 했고,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은 한동안 재래시장을 돌며 참치 판촉활동을 해야 했다.


동원그룹은 내실경영을 추구해 계열사들이 대부분 재무구조가 우량하다.
IMF 외환위기 때는 낮은 부채비율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만 현재 이스텔시스템즈가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지만, 올해 초 서두칠 한국전기초자 사장을 영입해 구조조정에 전력하고 있다.
그러나 동원그룹은 상대적으로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느리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금융그룹과 식품그룹으로 재편된 동원그룹이 어떻게 변화의 파도를 헤쳐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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