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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세계] ‘권총’ 2개로 퇴학당한 친구
[MBA세계] ‘권총’ 2개로 퇴학당한 친구
  • 이철민/ 보스턴컨설팅그룹 컨
  • 승인 2002.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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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첫날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필리핀계 미국인으로 가장 친한 동기였던 에드가 퇴학을 당하게 된 것이다.
본인이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 나를 비롯해 평소 함께 어울리던 에드의 친구들은 사실을 확인하느라 안절부절 못했다.
특히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에드가 집 전화도 받지 않자 모두들 혹시나 하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한 다리 건너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동기로부터 에드가 Term2와 Term3에 연속으로 F학점을 받아 퇴학을 당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누구도 F학점을 두개나 받은 것이 퇴학 사유가 된다는 것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 동안 실종상태였다가 다음날 학교에 나타난 에드는 상당히 풀이 죽어 있었다.
항상 웃던 얼굴은 사라지고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보는 사람을 안쓰럽게 할 정도였다.
몇몇 친한 친구들이 팀룸에 모이자 그는 그간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내가 수학 관련 과목들을 개인 교습해주었을 정도로 평소 수학에 약했던 그는 Term2에 재무회계 과목에서 F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뭐 F를 받을 수도 있는 거지. 2학년 때 재수강하면 돼”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였으나, 문제는 Term3에 관리회계 과목에서 또 F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시험을 너무 못 봤다는 생각에 교수를 찾아가 재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할까도 생각했지만, 설마 또 F는 아니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화를 자초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F학점이 2개면 재수강을 한다고 해도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따는 것이 어려워 퇴학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가 몰랐다는 것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에드가 자신의 퇴학에 대해 들었을 때는 이미 교수진과 학교 당국에서 여러 차례 퇴학 논의가 진행돼 최종적으로 퇴학이 결정된 시점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뉴저지에 있는 집에서 이런 사실을 통고받은 에드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개강일에 맞춰 학교에 나타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에드를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평소 MBA 과정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가 퇴학을 당하기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에드로부터 매주 영어강습을 받은 덕분에 미국의 컨설팅펌으로부터 서머인턴십 오퍼를 받기까지 한 나로서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자책감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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