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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페르손, 우파 바람 잠재울까
[스웨덴] 페르손, 우파 바람 잠재울까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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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강국 스웨덴 총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9월15일 열리는 스웨덴 총선의 관심사는 과연 예란 페르손(53) 현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것인가 여부다.
스웨덴은 흔히 ‘사민주의의 요새’라 불릴 만큼 사민당의 전통이 강한 나라로 꼽힌다.
1930년 이후 사민당이 집권에 실패한 것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이르는 7년 기간뿐이다.
98년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국민들이 페르손 현 총리의 손을 들어줄 경우, 1~2년 전부터 서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우파 집권 바람은 한풀 꺾이게 된다.
스웨덴 총선 결과에 국내외의 눈길이 몰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페르손 총리 역시 “스웨덴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다른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다”며, 우파 집권 도미노 현상이 국내 총선 판도에 끼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나섰다.


현지 분위기는 일단 사민당의 승리를 점치는 목소리가 훨씬 높은 편이다.
이웃나라인 노르웨이와 덴마크에까지 몰아친 우파 집권 바람이 스웨덴은 비껴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선거일을 3주 앞두고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페르손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 지지율이 43%에 이르러 야당세력의 지지율과는 10%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지지율은 8년 만의 최고이며, 4년 전 총선 당시 사민당이 얻은 지지율보다도 6%나 높은 것이다.
총선 이후 진행될 연정구성 과정에서 공산주의 성향의 좌파당(지지율 10%)이나 사회운동이 중심이 된 녹색당(4%)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게 확실한 것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물론 사민당에 맞서 이번 총선에 나서는 우파성향의 4개 정당들이 별다른 응집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각개약진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복지책 공약으로 민심 잡아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90년대 후반 이후 스웨덴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게 가장 커다란 요인이라고 분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페르손 현 총리는 집권 이후 15%에 이르던 실업률을 현재 4%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물가상승률 역시 10%에서 2%로 뚝 떨어졌다.
이뿐 아니다.
한때 13%에 이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지난해 1.7%를 기록했다.
여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좋은 성적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페르손 현 총리는 육아급여액을 늘리고 의료기관 및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유권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복지제도의 틀을 큰 폭으로 손질하는 일반적 추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셈이다.


물론 사민당이 정권을 재탈환한 94년 이래 ‘스웨덴 모델’은 고전적 모습에서 벗어나 많은 변화를 겪은 게 사실이다.
스웨덴의 현대사는 종종 올로프 팔메 전 총리와 한묶음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만큼 팔메 전 총리가 남긴 흔적이 뚜렷했던 탓이다.
노사간 대타협이라는 큰 틀 아래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골고루 복지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스웨덴 사회정책의 기조는 팔메 전 총리에 이르러 활짝 꽃을 피웠다.


스웨덴에 ‘복지천국’이란 이름이 따라붙은 것도 이런 사정과 잇닿아 있다.
하지만 86년 팔메 전 총리의 급작스러운 피살과 뒤이은 정치적 혼란의 뒤편에는 ‘스웨덴 모델’을 큰 폭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시대적 분위기가 놓여 있었다.
스웨덴 사회를 특징짓는 높은 수준의 복지제도는 결국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세금부담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잇달아 세금부담이 적은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도 서둘러 변화를 재촉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94년 사민당은 전통적 사민주의 정책기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탈규제와 개방, 자유화라는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되찾았다.
정치적으로는 이전의 중립정책에서 탈피해 훨씬 서유럽에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각종 복지비용을 과감하게 삭감하고 세율을 인하하는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팔메 전 총리로 대변되는 전통주의자의 이미지 대신 ‘세련된 실용주의자’임을 내세운 페르손 현 총리에 이르러 이런 변신은 더욱 두드러졌다.
국민들의 상당수가 유로화 도입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도 커다란 변화 가운데 하나다.
90년대 후반 이후의 스웨덴 사회를 일컬어 ‘가장 성공한 제3의 모델’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경제가 활력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페르손 현 총리가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스웨덴 경제의 앞날에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 50% 이상이 생계를 국가부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공공부문의 비중이 상당한데다가 복지제도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지나치게 많은 탓이다.



사민주의 전통 명맥 유지 판가름 잣대


이런 사실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스웨덴 경제의 활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
70년 세계 4위를 기록했던 1인당 GDP가 현재 17위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좋은 예다.
지난 30년 동안 스웨덴 경제가 평균 2.1%씩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유럽연합내 국가들이나 미국이 각각 2.6%, 3.1% 성장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탈규제와 자유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스웨덴 경제를 이끌었던 주력업체들이 잇달아 해외자본의 손에 넘어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스웨덴을 대표하던 볼보자동차는 포드자동차에게, 사브자동차는 제너럴모터스(GM)에 이미 팔린 상태다.


특히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스웨덴의 인구발전 추세가 스웨덴 경제에는 장차 가장 커다란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5~64살 인구와 65살 이상 노인인구 사이의 비율을 뜻하는 노인부양 비율은 이미 30%선을 넘어섰다.
게다가 오는 2040년까지 그 비율은 50%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인부양 비율이 높다는 말은 그만큼 경제활동인구의 현재 소득 가운데 많은 부분을 노인인구 부양을 위해 써야 한다는 걸 뜻한다.
달리 말하자면, 노인인구 한명을 부양하는 데 3~4명의 경제활동인구가 필요하던 것이 앞으로는 두명의 경제활동인구가 노인인구 한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제발전에 투입할 여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스웨덴 총선 결과는 일차적으로는 서유럽에서 사민주의 전통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만일 대부분의 예상대로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우파 집권 바람을 누르고 사민당이 승리할 경우, 그 파장은 꼭 일주일 뒤인 22일 열리는 독일 총선의 향방에도 다소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만 이번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스웨덴 사회는 내적으로 끊임없이 변화의 물결을 탈 게 분명하다.
스웨덴 경제의 미래상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구체적 청사진을 둘러싼 공방은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가을쯤으로 예정되어 있는 유로화 가입 여부 국민투표 결과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건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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