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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김우중 언론 나들이는 계획된 시나리오
[추적] 김우중 언론 나들이는 계획된 시나리오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3.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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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1999년 10월 중국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들렀다가 사라진 뒤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문화일보'는 지난해 12월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김우중씨 인터뷰 기사를 실었고 모든 신문과 방송이 앞다투어 그 기사를 받아썼다.
그러나 사람들의 궁금함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모처럼 나타난 김우중씨는 “어차피 진실이라는 것은 시간이 밝혀주게 돼 있는 법”이라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딱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 3년 만에 나타나 하는 이야기치고는 너무 무책임했다.


김우중씨는 “귀국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명예회복을 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늘어놓는 변명이 참 궁색하기만 하다.
평생을 대의를 위해서만 죽어라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와서 파렴치한 사기꾼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란다.
해외로 재산을 도피시켰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있기 때문이란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들어와서 제대로 평가를 받으면 될 일이다.
뭘 주저하는가.

인터뷰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언제 이 인터뷰가 이뤄졌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제 했느냐에 따라서 김우중씨의 발언은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김용옥 기자는 언제 어디에서 김우중씨를 만났는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뒤늦게 경찰청이 발표한 김우중씨의 출입국 기록을 살펴보면 이 두사람은 대략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지난해 11월말 무렵에 만난 것으로 짐작된다.
대통령 선거를 한달 남짓 앞두고 있던 때다.


김우중씨는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한 며칠 뒤인 지난해 12월1일 대리인 석진강 변호사를 통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조만간 귀국하겠다는 뜻을 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우중씨가 연내 귀국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김우중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기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런 소문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대검찰청도 김우중씨 귀국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보고 대우그룹 수사기록을 다시 검토하는 등 준비작업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몇년간의 움직임으로 볼 때 김우중씨는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무리하게 귀국을 고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다음 정부까지 건너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이번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는 귀국을 앞두고 국내 여론을 슬쩍 떠보려는 얄팍한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김우중씨에게 누구보다도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김용옥 기자가 마침 그 역할을 맡은 건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정말 절묘했다.
그렇게 보면 김우중씨가 부린 잔꾀에 김 기자가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


김우중씨는 분위기를 살피면서 이런저런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우중씨 귀국과 대우 문제의 해결은 이제 다음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백기승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 이사는 “노무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물려받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김우중씨의 귀국은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가 김우중씨와 대우그룹 문제를 지난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런저런 상황을 돌아볼 때 김우중씨가 무리하게 귀국을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여론이 돌아설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겠다는 속셈이라면 말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동안 정부와 김우중씨는 어떤 줄다리기를 벌여왔을 가능성이 높다.
김우중씨의 귀국은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게 뻔하다.
기소중지 상태에 있는 김우중씨는 귀국하면 곧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보석으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지만 결국 조사과정에서 그동안 숨겨져왔던 갖가지 비리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옳지 못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잡혀들어가게 된다.



안 잡나 못 잡나 의혹은 여전


그런 이유 때문인지 김우중씨가 귀국한다는 소문이 나돌 때마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찰청 외사과는 '문화일보' 기사가 나간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7일 김우중씨가 11월16일 태국에 입국했다가 12월1일 로마로 출국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연 정부는 이때까지 김우중씨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을까. 김우중씨는 검찰의 체포영장이 떨어진 뒤인 2001년 4월부터 7월 사이에도 미국과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세계 13개 나라를 여러 차례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제 자문역 맡아


심지어 지난해 8월과 11월에는 두차례에 걸쳐 김우중씨의 부인 정희자씨가 보름 가까이 서울에 머물다 간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정희자씨의 움직임만 제대로 좇았어도 김우중씨를 찾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우중씨는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병원에서 장 협착증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5월에는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초청으로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옛날 대우 사람들을 꾸준히 만난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이쯤 되면 정부가 김우중씨를 안 잡는 것인가 못 잡는 것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김우중씨의 귀국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제보에 따르면 김우중씨가 지난해 귀국 의사를 갖고 있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막기 위해 대우 위장계열사를 대거 적발, 검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의혹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난 2001년 11월에도 한동안 김우중 연내 귀국설이 나돌았고 비슷한 무렵 예금보험공사에서 김우중씨 은닉재산을 찾아냈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 발표는 모두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합법적 매매 절차를 거친데다 한창 재판이 진행중일 때라 은닉재산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예금보험공사 발표는 이래도 들어올 거냐는 정부의 김우중씨에 대한 경고처럼 보였다.


그 무렵 김우중씨는 '한국경제신문' 조규제 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 영향을 줄 것 같아 그동안 귀국을 미뤄왔지만 2심 재판이 끝나는 대로 귀국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재판은 이듬해까지 기약없이 늘어졌고 김우중씨 귀국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지난해 11월 재판이 끝나고 대우 경영진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김우중씨는 귀국을 앞두고 무엇인가 요구조건을 내걸었고 그게 맞지 않아 귀국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부대로 김우중씨가 몰고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가 끝나지 않으면 김우중씨는 돌아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우중씨는 그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경제자문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우중씨는 지난해에도 몇차례 평양을 다녀갔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고위층에 선이 닿아 있는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때 신의주 경제특구의 장관 후보로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 함께 김우중씨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우중씨는 일찌감치 지난 1996년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와 손잡고 남포공단에 민족산업총회사라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김우중씨는 그때 정부의 승인도 받지 않고 북한을 안방 드나들듯 넘나들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에서는 더 자유로울 수도 있다.


김우중씨가 북한에 경제부총리로 간다는 소문도 그런 맥락에서 흘러나왔다.
소문은 이렇다.
김우중씨는 해외 어딘가에 막대한 자금을 숨겨놓았다.
어차피 우리나라에 가져와봐야 쓸 수 없는 돈이다.
귀국하면 모든 재산을 털어 24조원이 넘는 추징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숨겨놓은 돈이 얼마가 됐건 그 돈을 쓸 수 있는 데는 세계를 통틀어 북한밖에 없다.



차기 정권 태도변화 따라 귀국시기 정할 듯


북한 전문가들은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양문수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남북경제협력에 가장 먼저 앞장섰던 김우중씨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을 수 있다”면서 “양빈 장관 사례에서 보듯 개혁 개방을 이끌어갈 국제적 인물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김우중씨가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연철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외자유치나 개방정책에 목을 매는 북한이 김우중씨같이 말 많은 사람을 경제부총리로 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 사실 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김우중씨가 물밑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정부는 그동안 김우중씨를 붙잡을 수 있는 데도 내버려두고 있고 정작 김우중씨가 귀국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귀국을 막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김우중씨는 나름대로 북한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유럽 각국을 오가면서 무엇인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2001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있던 무렵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입학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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