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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금성사PC '파트너'
[IT타임머신] 금성사PC '파트너'
  • 유춘희
  • 승인 2000.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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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수 있어
만화는 한때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의 ‘교과서’였다.
그들은 꼬질꼬질한 교복에 헐렁한 가방을 둘러메고 도둑처럼 만화가게에 모여들었다.
나무로 만든 의자는 한두시간 앉아 있으면 엉덩이에 못이 배길 정도로 딱딱했다.
여름에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고, 겨울에는 오뎅국물 냄새가 구수했다.


하지만 요즘 만화가게는 만화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부시설이 커피숍 못지않다.
이야기 구성이나 그림 솜씨도 웬만한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뺨친다.
만화가게를 이처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낸 이가 바로 이현세다.
80년대 말 그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 한편으로 전국을 만화신드롬에 빠뜨렸고, 어른들을 만화가게로 불러냈다.
금성사 PC ‘파트너’는 당시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까치 오혜성을 광고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정수라가 불렀던 영화주제가의 가사를 따와 “파트너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일하는 재주가 만능이라는 뜻일 게다.
오혜성이 들고 있는 플로피 디스크는, 지금은 자취를 감춘 5.25인치짜리. 드라이브도 한개에 불과했다.
당시 조금 비싼, 그러니까 서버급(386 SX급 정도)이라고 주장하던 PC들이 5.25인치 드라이브 두개를 장착했고, 그보다 훨씬(?) 좋은 기종들은 3.5인치 드라이브를 하나 더 갖춘 정도였다.
지금은 아예 3.5인치 드라이브가 없는 PC도 나온다.
뭐든지 할 수 있다? 512KB의 CPU 메모리와 10MHz의 클럭 속도가 제공하는 파트너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제공돼 초중고 학생의 학습용으로 손색없었고, 도스용 로터스 1-2-3 데이터베이스 활용도 가능해 업무용으로도 쓰였다.
게임은 테트리스 정도. 10단계까지 가도 막대가 떨어지는 속도는 완행버스 수준이다.
파트너는 ‘컬러’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금성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한글/하나 HCGA 칩(허큘리스 카드라고도 불렀다)을 사용한 비디오카드가 본체에 내장돼 있어, 별도로 소프트웨어 방식의 한글 처리를 하지 않고도 그래픽을 자유자재로 처리할 수 있었다.
가격은 의외로 싸다.
모니터를 따로 사는 대신 49만5천원이었으니 스스로도 ‘혁신적인 가격’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금성사가 국내 정상의 컴퓨터 종합 메이커로서 계속적인 기술혁신으로 원가를 절감, 그 혜택을 소비자 이익으로 되돌리는 차원에서 초저가로 공급한다”고 광고했다.
50여개의 부품과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HCGA 칩 개발로 가격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50만원대 벽을 돌파한 국내 최초의 16비트 컴퓨터가 바로 파트너였다.
금성사는 파트너를 광고하면서 최적의 16비트 교육용 컴퓨터라고 주장했다.
당시 문교부가 추진한 학교 교육용 컴퓨터 공급업체로 선정되기 위한 전략이었다.
각급 학교에 1년에 1만대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사업자로 선정만 되면 한해 장사를 끝내는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
파트너는 그때까지 보급되던 8비트 컴퓨터와 가격차이가 크지 않은 저가 교육용 컴퓨터로 나서고, AT급인 ‘마이티’ 기종은 업무용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16비트? 분에 넘치는 소리
89년 7월, 당시 문교부는 초중고에 공급하는 컴퓨터 기종을 16비트로 바꾸겠다고 발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16비트를 내놓은 회사는 금성사를 비롯해 삼성전자, 대우전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청계천과 용산상가를 중심으로 한 중소업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반발했고, 8비트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회사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허탈해했다.
당시로선 16비트가 너무 좋았던 게 화근이었다.
8비트를 고수해야 한다는 이들은 “무조건 상위 기종이라고 좋은 건 아니다.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좋다고 국민학생에게 자동차를 사줄 수는 없지 않느냐, 좋고 비싼 옷이라도 자기 몸에 맞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는 8비트가 좋다.
전국의 학교와 학원, 가정에 보급된 8비트 컴퓨터가 전체의 95%인데, 이를 사장시키는 건 국가적 낭비이며 국민을 과소비로 유도하는 꼴”이라고까지 주장했다.
90년도부터 학교 교육용 컴퓨터는 16비트로 결정됐다.
“시대적 요구에 따른 적절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나이가 어릴수록 우수한 기계에 적응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며, 예산 확보가 어렵다고 나라의 장래가 걸린 중요한 결정을 미뤄서는 안된다는 주석이 붙었다.
16비트 채택에 나라의 장래를 거론하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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