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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 소유 (상·하) -A.S.바이어트
[책과삶] 소유 (상·하) -A.S.바이어트
  • 임현우/ 재무관리 컨설턴트
  • 승인 2004.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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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엮어내는 로맨스

하나의 작품 속에 둘 이상의 에피소드가 서로 교직하면서 전개되는 경우, 대개는 실패로 끝난다.
에피소드들이 사실상 아무 관련 없이 병렬되거나 아니면 둘을 억지로 만나게 하려고 온갖 작위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나는 예외도 물론 있다.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의 <소유>는 한 세기의 시차를 두고 있는 두 사랑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낸다.


교수가 되는 데 실패하고, 명성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곤궁한 젊은 영문학자 롤랜드 미첼은, 1980년대 말에 런던 도서관에서 빅토리아 조의 천재시인 랜돌프 헨리 애쉬가 자신이 읽던 책의 여백에 남긴 메모를 추적하다가, 두 편의 편지 초고를 발견한다.
‘경애하는 여인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애쉬를 분석한 롤랜드는, 애쉬가 평생 가정에 충실했고 그가 남긴 모든 서한들이 격식과 정중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애쉬의 이례적인 격정에 롤랜드는 흥분에 휩싸인다.
지적인 호기심과 자신의 학문적 커리어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올 수도 있는 새로운 가능성. 롤랜드는 편지를 조용히 자신의 책 속에 감추고 도서관을 나선다.
이것이 아주 긴 여정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여정의 출발점이 된 두 편의 편지 초고

롤랜드는 도서관의 낡은 일기들을 뒤져서 상대방이 빅토리아 시대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던 크리스타벨 라모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라모트를 연구하고 있던 모드 베일리를 만나게 된다.
금발의 차가운 젊은 페미니스트 모드는 처음에 롤랜드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라모트는 레즈비언이었다.
또 라모트는 조카에게 모든 것을 상속했는데, 그 조카가 모드의 고조할머니였다.
모드에게 있어서 라모트에 대한 연구는 학자로서의 업일 뿐만 아니라 개인사적인 숙제이기도 했다.
모드는 롤랜드가 훔쳐온 편지를 본 후에 그의 작업에 동참한다.


이 책은 이 지점부터 미스터리 소설이 된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자연스레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빅토리안 시인들의 사랑은, 100년도 더 지나 도서관의 낡은 책 속에 먼지로 덮여 있는 일기와 메모들을 단초로 해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두 명의 문학평론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바이어트가 인도하는 바대로 독자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프랑스로, 시와 신화해석, 미술과 자연과학까지 따라가며, 시인의 감성과 제도의 충돌을, 그리고 또 질투와 체념을, 마침내는 사랑과 파국을 경험한다.


모든 미스터리가 사건·범인·증거를 넘어서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탐정 자체에 또 하나의 초점을 두듯이, 지적인 추적자 롤랜드와 모드의 관계, 그들과 그들의 동료 또는 적들의 이야기도 하나의 축이 된다.
현대 대학의 아카데미안들의 경쟁과 질투, 비열한 책략이 냉정하게 묘사된다.
롤랜드와 모드의 관계는 그 속에서 나아가고 물러서면서 변화해 간다.


이 미스터리에는 살인범이 없고, 따라서 혈흔과 지문이 단서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도저히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류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맘껏 즐겨라!

또한 이 책은 글에 대한, 또는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문학인 또는 문화비평가들에게 있어서 이 책은 매우 중요한 텍스트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상징과 해석과 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북-러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문학인들의 심오한 분석과 무관하게 <소유>는 멋진 책이다.
바이어트가 얼마나 정확하게 빅토리아 시대의 지식인을 묘사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글과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한 너무도 자연스러운 서술에 몸을 맡기고 마치 자신이 빅토리아 시대 런던 대학의 자그마한 홀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해 시와 미술을 논하는 것처럼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 물론 허영이다.
하지만 허영을 제외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참고로 이 책은 2002년에 닐 라뷰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국내 개봉명은 <포제션>이다). 영화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했고, 그래서 꽤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은 원작의 깊이에는 턱없이 못미치며, 귀네스 팰트로(모드 베일리 역)의 연기도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와 소설을 다 경험하실 분은 소설을 먼저 보시길 권한다.


객적은 얘기를 좀 하고 싶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사랑 이야기인 <유브 갓 메일>에서 냉정한 비즈니스맨인 톰 행크스는 언제 어디서나 말론 브란도의 흉내를 내면서 <대부> 이야기를 한다.
반면에 아이들과 동화를 사랑하는 맥 라이언은 <오만과 편견>을 200번도 넘게 읽었고 엘리자베스 베네트와 미스터 다아시의 얘기를 모든 이에게 권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건 편견이야,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왜 꼭 여자들은 사랑 이야기를 읽고 남자들은 전략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거지?’라고 약간의 불만을 갖고 있던 차에, 에 글을 쓸 기회가 있어서, ‘그래, 비즈니스 잡지에 로맨스에 대한 서평을 써보자’라고 도전해 봤는데, 역시 무모한 일이었다.
비즈니스 잡지에 인문과 로맨스에 대한 글이 실리는 것은 좋은 시도이겠으나, 그것도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부디 이 무모한 시도를 이해해 주시길. 독자 여러분과 나 같은 비즈니스맨들이라고 해서 늘상 <식스 시그마>와 <손자병법>만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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