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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CO2를 물건처럼 사고 판다
[커버] CO2를 물건처럼 사고 판다
  • 런던·쾰른 = 황보연
  • 승인 2004.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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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시장 개막, 카운트다운!

독일 출신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 <투모로우>를 보셨는가. <투모로우>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을 다룬 영화다.
끔직한 토네이도가 LA를 휩쓸고, 일본에선 엄청난 우박으로 피해를 입는다.
급기야 뉴욕은 시 전체가 잠길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고 빙하로 뒤덮이게 된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에서 지구의 역습을 맞은 나라는 교토의정서에서 발을 뺀 미국이다.


그런데 좀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단지 ‘영화 속 장면’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엄청난 기상재해들이 일어나고 있다.
80년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기상재해는 연간 9건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14건으로 늘었다.
피해액도 813억달러에서 2792억달러로 3.4배나 증가했다.


9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 중에서도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이 배출권 거래(Emission Trading)다.
배출권 거래는 온실가스를 자유롭게 사고 팔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배출량을 줄일 수 있어 많은 나라와 기업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환경 문제와 경제를 하나의 틀 안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은 유럽을 중심으로 강하게 불고 있는 배출권 거래, 그 격변의 현장을 현지 취재해 2차례에 걸쳐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지난 6월9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카본 엑스포(Carbon Expo). CO2라는 새로운 상품의 거래에 주목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BP, SHELL, RWE 등 거물급 에너지 기업들은 물론이고 냇소스, CO2e.com 등 전문 중개기업과 프로젝트 유치에 한창인 개도국 정부가 그들이다.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의 리챠드 킨리 사무부국장은 “배출권 거래(Emisson Trading)는, 보이지 않는 형태의 새로운 무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배출권 거래란 한마디로 교토의정서를 원활하게 이행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지난 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선진국과 동유럽권의 38개 국가들은 2008~2012년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총량을 90년 수준에서 평균 5.2% 줄여야 한다.
이를 이행하는 방안 중의 하나가 바로 배출권 거래다.
흔히 ‘캡 앤 트레이드’(Cap and Trade)라고 부르는데, 총량을 규제하는 대신에 거래를 허용한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은 높은 환경세를 부과하는 등의 직접적 규제조치를 대신할 수 있다.
배출권을 계량화하고 이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하면 보다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 나라나 기업이 목표치보다 더 많은 배출량을 줄였다면, 여분의 권리는 다른 나라나 기업에 팔 수가 있다.
반면 배출권을 사는 쪽은 자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총량 규제하되 배출권 거래 허용

세계은행의 이코노미스트 프랑크 레코크는 “배출권 거래시장의 모형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국가나 기업별로 초기에 할당하는 배출권 자체의 거래와 JI나 CDM 등 다양한 저감 프로젝트를 실시해 추가로 발생한 크레딧에 대한 거래가 그것이다.
카본 시장에 대한 조사연구기관인 ‘포인트 카본’(Point Carbon)에 따르면 배출권시장은 향후 연간 1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배출권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는 점도 시장 전망을 밝게 한다.
교토의정서는 발효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아직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55개국이 비준을 하고, 비준을 마친 부속서I 국가의 90년 CO2 배출량이 부속서I 국가 전체의 55%를 넘어서야 가동이 된다.
30%가 넘는 배출량을 자랑하는 미국이 개도국 불참과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지난 2001년 발을 빼면서 문제가 된 것.

하지만 전체의 17%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최근 교토의정서 비준에 청신호를 보내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21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유럽연합(EU)-러시아 간 정상회의에서 교토의정서 비준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현재 비준을 마친 부속서I 국가들의 총 CO2 배출량이 44.2%여서 러시아가 합류하면 교토의정서의 발효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카본 엑스포에도 참여해 이런 내용을 재확인시켜 줬다.
러시아 에너지부의 오렉 플루츠니코브 생태부국장은 “배출권 거래를 EU의 방식대로 따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교토의정서 비준은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이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고 밝혔다.
짧게는 6개월 정도가 걸릴 것이며, 의회에서 다른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보였다.
그는 또 “EU와의 관계뿐 아니라 러시아의 연간 GDP 성장률이 7.2%에 달하는 등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2005년부터 유럽시장 시동

당장 배출권 거래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는 곳은 EU다.
이미 선점 효과를 꾀하기 위해 영국은 지난 2002년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한 상태며, 내년부터는 EU가 자체적으로 배출권 거래를 시작한다.
1단계는 2005~2007년, 2단계는 교토의정서의 의무이행 기간인 2008~2012년과 동일하다.
1단계에선 CO2만을 거래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며, 2단계에 가서 6종류의 온실가스로 확대할 예정이다.
각 회원국은 국가별 할당계획을 EC에 제출해야 하며, 이곳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가별 할당량이 어떻게 정해질 것이냐는 EU의 배출권 거래를 지켜보는 데 있어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시장 규모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 거래 전문중개기업인 CO2e.com의 유럽 시장 담당자인 루시 모르티머는 “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초기 배출허용권을 관대하게 주는 경향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배출권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당장 크레딧이 나올 만한 프로젝트는 CDM이라고 할 수 있다.
서유럽과 동유럽 간의 거래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선진국 간의 거래제도인 JI보다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거래인 CDM의 사례가 훨씬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EU도 1단계 배출권 거래에서부터 CDM 크레딧의 사용을 승인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CDM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상당수의 프로젝트가 추진 중인 상태라 활용이 빠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개별 기업 차원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미국의 민간 기업들이 발 빠르게 배출권 거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시카고기후거래소(CCX, Chicago Climate Exchange)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배출권 거래 시장이다.
1998~2001년의 평균 배출량을 기준치로 하고 2006년까지 총 4%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했으며 듀폰, 포드자동차, 모토로라 등 60여개 기업이 참여한다.
하루에 거래되는 CO2의 양은 4천톤 수준. CCX의 마이클 J 월쉬 수석 부회장은 “앞으로 ECX를 만드는 등 유럽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라고 전한다.



CDM, 배출권시장의 공급원 될 것

감축의무가 없는데도, 자발적인 참여를 하는 이유는 뭘까. 마이클 J 월쉬 수석부회장은 “기후 변화에 따라 미래에 닥칠 리스크에 미리 대비하는 측면과 함께 주주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CCX에서 거래하는 기업들의 경우 감축량을 지키지 않아도 EU처럼 패널티가 뒤따르진 않는다.
대신 위반사항을 대중적으로 공개해 해당 기업의 주식가치를 떨어뜨리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이 밖에도 BP나 SHELL과 같은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들은 이미 사내에서 배출권 거래를 실시해 본 경험을 갖고 있을 만큼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예컨대 SHELL의 경우 그룹내 56개의 정유회사를 대상으로 지난 1999~2002년 사이에 사내 배출권 거래를 실시한 결과 90년 배출량 수준의 10%를 감축한 바 있다.
SHELL의 쿠르트 되멜 독일지사장은 “EU의 목표치인 8%를 초과달성하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10%를 감축했다”며 “SHELL의 배출량 감축 사례는 유럽 배출권 거래의 모델로 쓰일 예정”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기류를 읽을 수가 있다.
J-POWER의 유주루 노나카 기후 변화 담당 이사는 “배출권 거래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은 크게 두 부류”라고 말한다.
한 부류는 비싼 환경세를 물어야 하는 배출량 자체가 많은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다.
나머지 한 부류는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기술적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기업들로 배출권 거래 자체를 비즈니스로 바라보는 쪽이라고 한다.


많은 배출권 전문가들은 탄소시장이 확실한 금융상품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불확실성부터 해소돼야 할 것이라고 전한다.
세계은행의 한 관계자는 “아직 제도가 설계 중인 것들이 많아서 투자자들에게 확실히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근거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보다는 시장 자체가 스스로 형성되고 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출권 중개전문기업인 냇소스사의 환경시장팀장 마틴 콜린즈는 “오로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고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탄소시장의 매력은 확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용어설명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 온실가스 규제를 위한 국제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방안으로 1997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다.
총 38개 의무이행 대상국은 2008~2012년 사이에 온실가스 총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감축 대상 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불화탄소, 수소화불화탄소, 불화유황 등 6가지다.
2001년 11월 모로코의 마라케쉬에서 세부이행방안이 일괄타결됐다.
교토의정서를 이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JI, CDM, 배출권 거래 등이 있다.
·부속서Ⅰ (ANNEXⅠ) 국가 => 선진국과 옛 소련 연방의 동유럽권 국가 등이 해당된다.
1992년에 채택된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진 국가들로, 교토의정서의 의무이행 대상국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들은 비부속서Ⅰ(Non-ANNEXⅠ) 국가로 의무이행 사항이 없다.
·JI(Joint Implementation, 공동이행제도) => 부속서Ⅰ 국가가 다른 부속서Ⅰ 국가에 투자해 발생된 온실가스 감축분을 투자국의 감축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개발체제) => 부속서Ⅰ 국가가 비부속서Ⅰ 국가에 투자해 발생된 온실가스 감축분을 투자국의 감축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 대부분 CDM 이행방안은 제7차 당사국 총회(2001년 11월)에서 합의됐고, 해외 재조림은 9차 당사국 총회(2003년 12월)에 확정됐다.
2000~2007년 사이에 발생한 감축실적(CERs)도 소급인정을 받을 수 있다.
·배출권 거래(Emisson Trading) =>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있는 국가들 간에 배출량 거래를 허용해 쉽게 목표 달성을 하도록 한 제도. 예컨대 A라는 기업이 있다고 치자. 이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 1톤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은 100원이다.
반면 B라는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 1톤을 줄이는 데 50원이 든다.
이럴 경우 배출량 감축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B기업이 더 많이 배출량을 줄이고 남은 배출권을 A기업에 파는 식이다.
결국 지구 전체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비용을 좀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크레딧(Credits) => 배출권은 크게 배출허용권(Allownaces)과 크레딧(Credits)으로 나뉜다.
국가나 기업에 초기에 할당하는 배출권을 배출허용권이라고 한다면, 온실가스 저감 프로젝트를 통해 배출량을 감축한 데서 나온 권리가 크레딧이다.
크레딧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실제 감축량을 인증받은 뒤에 거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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