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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원화강세 덕에 ‘2만 달러’ 조기 진입?
[진단]원화강세 덕에 ‘2만 달러’ 조기 진입?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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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에 열린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환율문제를 화제에 올렸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선거공약으로 내놓기는 했지만 애초 달성 시기를 2010년 이후로 봤는데, 원화 강세 덕에 ‘까딱 잘못하면’ 임기 중에 2만달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노 대통령은 “환율 때문에 국민소득 2만 달러가 조기 달성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노 대통령의 이날 우려(?)가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LG경제연구원은 이보다 앞서 빠르면 2007년, 늦어도 2009년경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분석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LG경제연구원은 환율 960원, 성장률 5.1%, 물가 3.5%를 유지할 경우, 2007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63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다음 날인 5일 환율이 990대 밑으로 추가 하락하면서 노 대통령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실제로 환율하락, 즉 원화강세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는 가장 손쉬운 지름길이다.
단 우리 기업들이 그 정도의 환율대를 견뎌낼 수 있는 수출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최근의 환율하락에 대한 상반된 평가도 바로 이 부분에서 갈라진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오상훈 전문위원은 환율하락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고 했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말부터 환율하락을 어느 정도 예상했고 나름대로 환 헤지를 해두었다는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환율하락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오 전문위원은 “대기업들은 품질이나 기술 등 비가격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환율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크지 않다”며 “문제는 여전히 가격경쟁력에 의존하고 있는 대다수 중소기업들”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오 전문위원은 통화당국이 금리인상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를 올릴 경우 원화의 메리트가 더 높아져 환율하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경우 중소기업들은 환율하락으로 수출 채산성이 악화되고, 이자 상승으로 인해 금융비용까지 늘어나는 이중고를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환율하락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내수 기업과 수출 기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큰 중소기업들은 수출 채산성이 악화돼 벼랑 끝으로 몰릴 수 있지만, 내수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수입 자본재의 가격이 그만큼 하락하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환율하락이 오히려 설비 투자와 내수를 촉진시키는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윤석 연구위원은 “상당수 중소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며 “이런 업체들은 환율하락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환율하락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곳은 생산과 조립을 전적으로 국내에만 의존하는 업체들에 한정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또한 2001~2005년의 자료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실적은 환율보다는 수출 상대국의 수입수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환율 변동에 수출이 좌우되는 단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중소기업들도 이제는 환율이 떨어져 채산성이 악화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이를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대기업들의 경우 환율하락의 영향에서 한발 빗겨나 있다고 보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한국시티그룹의 오석태 경제분석팀장은 생각이 다르다.
오 팀장은 “그동안 수출 대기업들이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원화약세가 큰 작용을 했다”며 “이제는 진검 승부를 통해 자신들의 실력을 증명해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는 주식시장에는 상당한 시련이 될 수 있다.
오 팀장은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아무리 좋다 해도 비바람이 계속된다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외국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로 대거 몰려드는 진짜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사려는 것은 바로 우리 기업들이 떼돈을 번다고 할 만큼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환율하락은 바로 이런 기업들의 높은 마진에 가장 큰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
오 팀장은 최근의 환율 흐름에 대해서도 ‘달러약세’가 아니라 ‘원화강세’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20원 이상 환율이 급락한 것은 달러약세가 아니라 원화강세”라며 “달러를 파는 게 아니라 원화를 사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최근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원화뿐만 아니다.
오 팀장은 “아시아 통화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런 흐름을 진두지휘하는 게 원화”라는 분석했다.
향후 달러약세, 원화강세가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데는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지난 2002년부터 달러는 3년 연속 약세를 보였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강세로 업턴 했다.
13차례에 걸쳐 단행된 FRB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FRB의 금리인상 행진이 조만간 끝맺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달러는 다시 약세 기조로 돌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월 그린스펀 FRB 의장의 은퇴를 달러강세가 끝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윤석 연구위원은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미국으로 몰렸던 자금이 풀려나와 아시아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아시아 증시의 전망은 밝다”고 전망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환율 떨어져도 수출 늘었다
지난 4일 금융연구원의 이윤석 연구위원이 낸 짧은 보고서가 외환시장의 긴박한 흐름과 맞물려 큰 반향을 불렀다.
보고서의 제목은 ‘원달러 환율 급락, 정말로 큰 문제인가?’. 환율하락은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켜 우리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통념을 깬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최근의 환율급락은 2001~2004년까지 매년 연초 반복돼 온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환율하락이 수출감소로 이어진다는 통념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2002년~2005년 환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는데, 오히려 수출은 2002년 8.0%, 2003년 19.3%, 2004년 31% 증가했으며 2005년 역시 12.2%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를 “우리 경제의 수출경쟁력이 더 이상 환율변동에 의한 가격변동에 좌우되지 않고 제품의 품질 경쟁력으로 승부한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오히려 환율하락은 고유가 충격 완화, 물가안정, 소비회복 등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적정 환율이란 개념 자체에 대한 컨센서스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며 “환율과 같은 가격변수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만 한다면 하락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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