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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뚜앙떼리요르]국경분쟁 타결 묘안은 없는가?
[푸뚜앙떼리요르]국경분쟁 타결 묘안은 없는가?
  • 이코노미21
  • 승인 2006.04.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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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국가들끼리의 국경 분쟁 문제는 전 세계에 널려 있지만 이 국경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한 경우는 많지 않다.
독일과 덴마크 국경 지역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은 상이한 두 문화가 조화롭게 만나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 지역의 갈등 해결의 메커니즘이 유럽연합 전체의 모델로 적용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에서 평화가 정착되기까지 150여 년에 걸친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홀슈타인 지역이 순수 독일계로 구성되었음에 비해, 슐레스비히 지역에는 독일과 덴마크인들이 섞여 있었다.
이 경우 슐레스비히 북부 지역은 덴마크적인 정체성을, 슐레스비히 남중부 지역은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 분열 상황은 두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이어져서 1848~1850년에 일어난 첫 번째 전쟁에서는 덴마크가 슐레스비히를 홀슈타인으로부터 분리해서 덴마크에 결속시키려 하였고, 1864년에 있었던 두 번째 전쟁을 통해서는 덴마크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모두를 독일에 양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첫 번째 전쟁의 결과로 슐레스비히가 덴마크에 속했을 때에도, 그리고 두 번째 전쟁의 결과로 슐레스비히가 프로이센에 속했을 때에도, 각각 덴마크화와 프로이센화가 진행되어 독일계와 덴마크계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었다.
독일과 덴마크의 국경 분쟁 문제에 돌파구가 열린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19년 파리 강화회의를 통해서였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서 슐레스비히 지역을 북부와 남중부,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북부지역은 덴마크로 귀속되고 남중부 슐레스비히는 독일에 잔류하기로 결정됨으로써 국경 분쟁의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평화가 정착되기에는 걸림돌이 많았는데, 이는 투표를 통한 국경의 재조정에도 불구하고 슐레스비히 북부에 거주하던 독일인과 독일 지역에 거주하는 덴마크인이 다시금 소수민을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소수민들을 중심으로 국경을 재조정하자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서, 예컨대 나치 체제가 공고해질 무렵에는 국경을 좀더 북쪽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는 독일계 소수민들의 목소리가 높았는가 하면, 독일이 패배한 이후에는 덴마크계 소수민들이 국경 정정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 소수 주민의 문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정부가 1949년 9월 킬 선언을 통해서 덴마크계 소수민들의 권리를 대폭 인정함으로써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보수적인 주정부가 들어서게 됨으로써 다시금 덴마크계 소수민들에게 독일에 대한 충성 맹세를 요구하고 참정권에 제한을 가하는 등 평화에 역류하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서독 정부와 덴마크 간의 외교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결국 1954년 당시 덴마크가 독일이 나토에 재가입할 지 여부에 대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던 상황을 무기로 삼아 서독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결과, 1955년 본-코펜하겐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에 뒤이어 덴마크 정부도 덴마크 내 독일인 소수민에게 덴마크인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결의했다.
이제 양국에서 소수민들은 덴마크 국적을 취득할지 독일 국적을 취득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을 것이 선언됨으로써 독일과 덴마크 간의 국경 분쟁 문제는 일단락될 수 있었다.
국경 분쟁의 문제는 각 사회의 종교, 문화, 정치, 역사 등 많은 요소들이 결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을 도출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과 덴마크의 국경 분쟁 역시 양국의 국민소득이 유사하다든지, 독일이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거듭 패배함으로써 국제 정치에서 발언권이 약화된 상태에서 중요한 진전이 일어나는 등 양국 관계의 특수성이 국경 분쟁 해결에 있어서 결정적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단지 국경 분쟁의 문제가 우리 사회만이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경험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국경 분쟁의 문제를 타협을 통해서 해결해낸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독도문제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인 패닉 상태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게 된다.
문수현 대학강사 munshyun@yahoo.col.kr 지인 중 한 명이 나를 '호기심 많은 친구'라고 정의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도 나 자신을 소개하는 문구로, 이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점차 나이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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