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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최악의 시나리오 배제할 수 없어 Ⅲ
[커버스토리] 최악의 시나리오 배제할 수 없어 Ⅲ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10.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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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한반도] 제2의 IMF 가능성도…외국인 투자자들 움직임 예의주시해야 "(북한이 핵 실험을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이야기다.
미국의 경고는 강력했지만 북한은 결국 핵 실험을 단행했고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됐다.
온갖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당장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0월 9일, 추석 연휴를 끝내고 맞은 첫 출근일. 주식시장은 유난히 평온했다.
아침에는 종합주가지수가 13.01포인트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핵 실험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주가가 폭락, 눈 깜짝할 사이에 48.38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
개인 투자자들 투매가 집중된 코스닥 시장에서는 사이드카가 발동돼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IMF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 충격은 주식시장에서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으로 확산됐다.
원 달러 환율은 이날 하루 동안 14.08원이나 치솟았다.
역외세력이 달러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국내 기관들까지 손절매에 가담하면서 1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채권시장에서도 채권금리가 잠깐 4.55%나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다음 날이 되자 주가는 반등에 성공했고 환율과 채권 금리도 안정을 찾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증권사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과거 북한의 핵 관련 위기 때도 2주 안에 반등에 성공,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경험도 이런 낙관적인 기대에 한 몫을 했다.
그러나 메릴린치증권 이남우 전무의 판단은 다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최근 한국 경제를 외환위기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은 계속 주식을 팔기만 했다.
최근 며칠의 매수 움직임을 놓고 상황을 낙관할 근거가 부족하다.
일단 관망하고 있을 뿐 얼마든지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 이날 아침, 언뜻 9년 전 IMF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린 투자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1997년 10월, 한보그룹과 기아자동차 부도 이후 국내 금융기관들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대외 채무는 1천억달러에 육박했다.
외국 금융기관들의 채무상환 압력도 거셌고 급기야 외환보유액은 바닥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10월 28일, 모건스탠리증권의 보고서였다.
제목은 "긴급: 아시아물을 즉각 팔아치워라". 종합주가지수 500포인트가 무너졌고 사상 처음으로 외환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20억달러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폭로해 가뜩이나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 무렵 홍콩 페레그린 증권이 낸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지금 즉시 한국을 탈출하라(Get out of Korea, right now)." 그 결과는 우리가 지난 9년 동안 익히 경험했던 바와 같다.
1천85원이었던 환율이 한 달 만에 1천962원으로 뛰어올랐고 주가는 297포인트까지 떨어졌다.
금리는 17.85%까지 치솟았다.
IMF 외환위기와 최근의 위기는 전자가 내부적인 위기였다면 후자는 외부적인 위기라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9년 전과 달리 우리 경제는 외부 의존도가 훨씬 높아졌고 그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전무의 지적처럼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아직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에는 이르지만 최악의 경우 IMF 외환위기 못지않은 심각한 위기가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첫째,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다.
안보리 회원국들은 이미 대북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 상태다.
다만 구체적인 수위를 놓고 특히 회원국들이 의견대립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평화에 대한 위협과 파괴, 침략행위 등을 규정한 유엔 헌장 7장을 적용하되 구체적으로 41조와 42조 가운데 어디까지 포함시키느냐는 것. 41조는 비군사 제재 조치로 교통·통신 수단 및 무역 봉쇄부터 외교관계의 단절까지를 규정하고 있다.
42조는 군사적 제재 조치로 회원국 병력을 통해 시위, 봉쇄, 군사작전 등을 수행하는 강경 대응을 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42조를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일본 선제공격 가능성도 더 심각한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이라크의 경우처럼 대량살상무기(WMD)의 파괴를 목적으로 다국적 군사작전에 돌입할 가능성이다.
미국은 그동안 강력한 대북 경제 제재를 천명해왔고 북한은 이번 핵실험으로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사실 미국에게는 꺼내들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가뜩이나 부시 행정부는 11월 7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아직 테러 세력과의 연계 혐의도 없고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도 부족하다.
세계적인 반전 분위기도 무시하기 어렵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UN을 통한 제재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설 가능성이다.
외신 등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이미 '작전계획 5026'을 마련해 놓고 있다.
24시간 정밀폭격으로 전력의 90%를 무력화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 1994년에도 영변 등 북한의 핵 연구시설을 공격하려다 막바지에 철회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선제공격이라는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이라면 전면전으로 치닫는 것은 미국에게도 부담스럽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최근 CNN과 인터뷰에서 "북한 핵 문제와 관련, 모든 대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려 한다는 것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의 어조도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참지 않을 것(not tolerate)"이라고 공언했으나 북한의 핵 실험 이후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unacceptable)"로 바꿨다.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을 핵 실험 실시로 잡았다가 최근에는 핵무기나 핵물질의 확산으로 슬쩍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두 번째나 세 번째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이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이 2차 핵 실험을 단행할 가능성도 크고 미국이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최근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금융시장 분위기도 이런 징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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