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⑥-근혜노믹스 논쟁-재벌개혁2
21세기 이후 한국 경제·사회 저변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도전들 중 하나는 경제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앞으로도 더욱 심각해지리라는 사실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전까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기업들이 제공했던 안정적이며 괜찮은 일자리들 덕분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자리들이 대폭 줄어들면서 중산층에 속했던 상당수의 국민들이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 위기는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적 욕구로 폭발했다. 흔히 1987년 개정된 헌법의 제119조 2항과 연관되어지는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슬로건은, 앞서 언급한 한국 경제·사회 저변의 큰 격류들이 부딪치면서 생겨난 긴장과 갈등이 그 분출구를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과거에는 재벌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다수 국민들을 중산층으로 도약하게 만들어 준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총 취업자의 고작 10%에게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조기퇴직의 위험이 매우 높은 일자리들이다. 반면 총 취업자의 90%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급변하고 있는 국내외 환경들의 무게에 눌려서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때 양극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격류의 흐름이 곧 완화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의 경제민주화 정책들 중 재벌정책들 또는 동반성장 정책들은 적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 양극화 위기라는 문제의 구조적 원인들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드러난 증상들에 때 늦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표출된 모습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위안해 볼 수도 있으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정책들이 양극화 흐름을 완화시키고 한국경제발전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기는 커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이는 더 큰 정치적 시각에서 보자면, 아직 미비한 사회보장시스템 하에서 (한계 중소기업들을 구조조정할 경우 나타날) 대량실업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중소기업정책을 사회정책 수단으로 사용한 셈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정책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사회정책 수단으로 전용한 것은 사회적 목적의 효율적 달성에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문제의 소지를 더욱 키웠다는 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정부는 공정거래법, 세법, 회사법 등의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동원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 저변의 경제양극화 격류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때늦은 감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정책대응들 중에 특기할 것은 회사법을 통한 정책대응이다. 앞서 언급한 현대 글로비스 사례를 들어 회사법을 통한 정책대응의 핵심을 살펴보자.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완성품의 물류 사업들을 글로비스라는 지배 대주주 100% 소유의 아주 작은 개인회사에게 몰아준다. 이러한 물량 몰아주기의 결과, 글로비스는 불과 몇 년내에 물류 서비스 시장에서 우리나라 1위의 기업이 되고 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는 당초의 100배가 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은 현대자동차의 소수 주주들이다. 왜냐하면 글로비스라는 회사를 처음에 현대자동차의 100% 자회사로 설립했었다면 100배가 넘는 글로비스 기업 가치의 상승분은 고스란히 현대자동차 주주들에게 그 지분 비율대로 배분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지배 대주주는 자신의 지분비율 만큼만 이익을 가져갈 것이며 나머지 소수 주주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지분비율만큼 이익을 가져갈 것이다. 이러한 인식하에 회사법을 통한 정책대응은 현대자동차의 이사회 이사들에게 소수 주주들의 이익이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지배주주에게 넘어가는 것을 감시하게 하고 그러한 거래들이 이사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도록 하는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일 이사들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소수 주주들이 대표소송 등을 통해 이사들에게 현대자동차가 입은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사실 앞서 설명한 바, 물량 몰아주기 관련 회사법 개정안은 2006년에 이미 만들어졌으나 반대론자들에 의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가, 2010년과 2011년의 경제양극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기 분위기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앞으로 물량 몰아주기 관련 회사법 조항이 실제 소기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사회 내의 사외이사 시스템, 소송 관련 인프라 등이 하나 둘씩 차례로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 대부분 나라들의 회사법과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법(상법 회사편)은 제369조(의결권)에서 ‘회사가 가진 자기주식 및 그 우회 형태들인 직접 상호주 및 간접 상호주(기업집단의 순환출자)에는 의결권이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342조의2(자회사에 의한 모회사주식의 취득)에서는 그 원칙을 기업집단의 순환출자에 대해 적용하고 있다(회사법 369조와 342조의 2항 내용은 박스 <용어설명> 참조).
다만 우리 회사법은 수십만 개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주식회사들을 규율해야 하는 기본법이기 때문에,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배기준을 ‘자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50 초과’라는 가장 넓은 정의를 도입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상법 제342조의2).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중소·중견 기업들도 상당수가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법에서 기업집단에 대한 정의를 현실에 맞추어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만일 회사법의 이러한 정비 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우리는 회사법 원칙을 재벌에 대해 적용하는 역할을 공정거래법이 회사법과 분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법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통용되고 있는 계열사간 지배의 개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법 체계에 반영시켜왔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환상형 순환출자 현상의 본질은 재벌에 고유한 문제가 아니고, 중소그룹이든 재벌그룹이든 불법적으로 자사주들의 의결권을 부활시켜서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불법적으로 창출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사실은, 환상형 순환출자 현상의 본질을 재벌의 소유권과 의결권간 괴리 현상으로 보는 잘못된 주장은 정책대응의 무력함을 미리 예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소유권과 의결권간 괴리는 오늘날 전 세계의 표준적 회사제도인 주식회사제도 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고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즉 이 주장에 따르면 환상형 순환출자 현상에 대한 정책대응은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주식회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셈인 것이다.
용어설명
상법 제369조(의결권)
①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
② 회사가 가진 자기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③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신설 1984.4.10>
(상법 제369조제3항은 다음 두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전자는 직접 상호주, 후자는 간접상호주(기업집단의 순환출자)에 해당함.)
③-1: 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③-2: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상법 제342조의2 (자회사에 의한 모회사주식의 취득)
①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진 회사(이하 "모회사"라 한다)의 주식은 다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다른 회사(이하 "자회사"라 한다)가 이를 취득할 수 없다. <개정 2001.7.24>
1. 주식의 포괄적 교환, 주식의 포괄적 이전, 회사의 합병 또는 다른 회사의 영업전부의 양수로 인한 때
2. 회사의 권리를 실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
② 제1항 각호의 경우 자회사는 그 주식을 취득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모회사의 주식을 처분하여야 한다.
③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주식을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는 이 법의 적용에 있어 그 모회사의 자회사로 본다. <개정 2001.7.24> [본조신설 198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