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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과 지역통화, 소득과 소비의 간극을 메우다‘소득 주도 성장론’은 중요 정책 담론이지만 그것만으로 경제성장 장담할 수 없어…지역통화(Local Currency),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입 문제 해결 방법 중 하나
문진수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 원장  |  medi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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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8  15: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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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성인 나이에 도달하면 동일한 선상에서 공평한 기회를 갖고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시금을 지원해주고 아울러 어떠한 시민도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지 않도록 매달 일정한 급여를 지급해주자.”

혁명가의 외침이 아니다. 미국 예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인 브루스 애커먼(Bruce Ackerman)과 앤 알스톳(Anne Alstott)이 분배제도의 혁신을 주창하며 대안으로 내놓은 ‘사회적 지분급여’와 ‘기본소득 급여’의 기본 개념이다. 모든 시민은 빈곤하거나 불평등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따라서 빈곤층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해주는 것은 ‘구휼’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생산물 중 ‘개인의 몫’을 나누어주는 것이라는 철학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이다.

오직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합리적 바보’의 눈에는 이러한 사회 윤리가 공허하게 들리겠지만,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가야 할 의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향한 사회적 질서재편의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최근 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회자되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론', 즉 소득이 늘면 그만큼 소비가 확대되고, 내수가 살면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는 성장하게 될 것이므로 최저임금 기준을 높이고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는 등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올리는 방향으로 성장정책을 펴야한다는 주장도 이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득이라는 것이다.

‘빚내서 돈 쓰라’는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내일 빚더미에 깔려 죽더라도 일단 먹고 보자는 식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책임한 모형이라면 ‘더 벌어서 더 쓰게 하자’는 정책은 성장의 결과물을 독식하고 있는 소수 계층들에게 불평등세를 징수하는 등, 분배 정의를 실현해 중산층과 서민의 지갑을 채워줌으로써 소비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므로 훨씬 발전적이고 건강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더 벌어서 더 쓰게 하자’는 정책이 발전적이고 건강한 방향

이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할까. 두말할 필요 없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재원을 조달하려면 현재 사회가 만들어낸 생산물을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파이’의 일부를 가져와 더 적게 가진 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결코 녹녹치 않다. 왜냐하면 이미 사회 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향유함으로써 풍요에 젖어있는 이들이 자신의 것을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 발전의 핵심동력을 ‘대기업’과 ‘수출’에 못 박고 한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대부분을 모두 쏟아 부음으로써 발생시킨 잉여가 노동자, 농민 등 다수 국민들의 희생의 대가로 창출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자신들은 이미 공짜 점심을 먹었으면서도 국민을 향해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소득만 늘려주면 경기가 살아나고 성장의 길로 나갈 수 있을까. 지갑 속에 돈을 넣어주었는데도 사람들이 이 돈을 빚 갚는데 사용하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쓰지 않고 꽁꽁 묶어두려 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 아닐까. 저축이라는 행위가 개인과 가계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악덕이 되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지금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평균 소득은 약 4% 가량 늘었지만 한계소비성향(새로 늘어난 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0.2%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 다수가 가처분소득의 상당 부분을 빚 갚는데 사용했거나 장기 불황에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 2012년 3월 1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에서 열린 ‘2012 기본소득 국제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에서 독일 하네스 포나더(오른쪽 두번째) 감독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본소득 제도를 중심으로 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중요한 정책 담론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기가 살아나 나라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가계소득을 늘려도 소비하지 않는다면 경기는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일 것이고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건강한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국민경제의 틀 안에서는 가계 실질소득 상승이 소비 진작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지방 특히 낙후된 지역경제 영역에서 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개별 가계 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늘어나면 단기간 돈이 흐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디에 돈을 쓰는가에 따라, 누구의 호주머니로 돈이 흘러가느냐에 따라 지역경제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지역 소비자들이 쓰는 돈 중 상당 부분이 지역에 남지 않고 지역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다시 말해, 지역자금의 역외 유출이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신용 창출을 통해 돈을 왕창 푸는 정책을 펴든, 국가가 나서서 추가 소득을 창출해주는 방법을 동원하든 돈이 지역 안에서 순환되지 않는다면 지역자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도별로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입 크게 달라…충남도 등 9개시도 유출이 더 많아

지역자금의 역외유출ㆍ입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2012년을 기준으로 볼 때, 전국 16개 시ㆍ도 가운데 지역내총생산(GRDP)보다 지역총소득(GRI)이 많은 지역, 다시 말해 역외유출보다 역외유입이 더 많은 지역은 총 7곳으로, 서울시가 약 54조 원 규모로 가장 많고 다음이 경기도, 부산시, 대구시 순이다. 반대로 지역내총생산보다 지역총소득이 적은 곳, 즉 지역민이 타 지역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은 곳은 9개 시ㆍ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시ㆍ도별 역외유입(출) 현황 (2012년 기준 / 단위, 10억)

역외유출이 가장 많은 지역은 충남으로, 24조 원 이상의 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음이 전남, 경북, 경남, 울산 순이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역외유입이 압도적으로 큰 이유는 주로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대기업 본사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며, 반대로 충남의 역외유출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이 지역에 대기업 공장들이 많이 입지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역자금의 역외유입(출)이란, 생산 활동을 통해 조성된 자금이 지역 경제활동에 재투입되지 않고 다른 경로를 통해 지역 외부로 유출(자금이 흘러들어가는 지역 입장에서는 유입)되는 것을 말한다. 일국 내에서 지역 간 자금의 이동은 경제주체들 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따른 것이고 이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이 현상을 꼭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에서 거액의 자금이, 구조적으로 유출되는 경우는 다르다. 지역경제는 생산과 소비ㆍ투자활동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성장하게 되는데 지역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투자와 생산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될 경우 경제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지역통화(Local Currency)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이다. 지역통화는 오직 해당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생산된 가치(통화)의 외부 유출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해주며 지역 자원의 내부순환을 촉진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다.

지역통화는 통화 저장기능이 발휘될 수 없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소비를 ‘부추겨’ 통화 사용자들의 한계소비성향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완전 소비를 지향함으로써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이 작동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소비가 늘어나면 공급이 확대되고 확대된 공급이 다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게 되는 원리다.

지역통화, 소비 승수효과 통해 지역 총수요 증가 효과를 이끌어내는 ‘기제’ 역할 가능

법화를 매개로 움직이는 유통구조(국민경제) 하에서는 완전소비를 이끌어내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역외유출 문제로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 또한 기대하기 힘들지만, 지역통화는 새로운 지출흐름을 만들어 공급 확대를 견인하고 소비 승수효과를 통해 지역 총수요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내는 ‘기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산업 클러스터(Cluster) 조성과 같이 지역경제를 성장․발전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전략은 아니지만, 지역통화는 지역 안에서 생산된 가치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고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들을 활용함으로써 지역 스스로의 힘으로 지역을 재생시키는, 내생적 발전구조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며 지역경제 내에서 소득주도 성장을 고양시킬 수 있는 탁월한 윤활유인 셈이다.

모든 국민이 빈곤선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이 실현되려면 사회가 생산한 가치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 성장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나와 주어야 하며 이를 토대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작금의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과 정착은 그 자체로 ‘크고, 위험하고, 담대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동시에 질문해봐야 한다. 소득과 소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본소득과 지역통화가 공명할 수 있을까. 한 나라에는 오직 하나의 통화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기업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고 오직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믿고 있는 것만큼이나 낡고 어리석은 통념이 아닐까. 이미 익숙한 질서에 침잠되어 마치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메커니즘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껏 당연시해왔던 주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멋진(Good)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기업가들이 지금보다 많아져야 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의 물방울들이 모여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Great) 물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 기준과 잣대로 볼 때 말이 안 되는, 그래서 실패할 것처럼 보이는, 맹랑한 시도와 겁 없는 도전을 응원하고 지원해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바다 위에서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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