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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천연가스 말고 미국 셰일가스 사란 말야!’
‘러시아 천연가스 말고 미국 셰일가스 사란 말야!’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1.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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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일~러시아 해저 가스관 연결사업 ‘노르드 스트림2’에 압력 노골화
사업 참여하는 유럽기업에 제재 경고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값싸게 들여오려는 '노르드 스트림(Nord Stream)2' 사업을 둘러싸고 미국과 독일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사안의 성격상 미국의 이란핵합의 이탈과 대이란 제재 재개를 둘러싼 충돌에 못지않다.

리처드 그레넬 주독미국대사가 노르드 스트림2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유럽 기업들에 서한을 보내 “미국의 관련 법률에 따라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을 위험이 있음을 알린다”고 경고했다고 독일 일간지 디벨트가 1월13일 보도했다, 관련 법률은 러시아․이란 등을 겨냥해 2017년 8월 발효한 ‘미국의 적대세력들에 대한 제재․대항법’(CAATSA; the 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 Act)으로, 동맹국들과 협조 아래 미국 대통령이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레넬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참여한 2011년 '노르트 스트림1' 준공식 장면. 자료 위키피디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참여한 2011년 '노르트 스트림1' 준공식 장면.
자료 위키피디아

지난해 6월 가스관 건설에 들어간 노르드 스트림2는 발트해를 거쳐 러시아 레닌그라드 서쪽 바르마만에 있는 비보르그에서 독일 북동부 도시 그리아프스발트의 루브민으로 이어지는 1225㎞의 해저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 사업이다. 수송용량은 연간 최대 550억㎥이다. ‘2’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노선 상에 같은 수송용력을 지닌 노르드 스트림1이 이미 2012년 완공돼 운영 중이다.

2015년 발표된 노르드 스트림2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컨소시엄은 러시아 국영 가스․석유회사인 가즈프롬, 독일의 우니퍼(Uniper)와 빈터샬(Wintershall), 프랑스의 엔지(Engie), 오스트리아의 OMV, 네덜란드의 더치셸, 영국의 브리티시티셸 등 유럽 굴지의 에너지 기업들로 이뤄져 있다.

이 사업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 7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에서 트럼프가 직접 나서 “러시아의 완전한 통제를 받는 포로”가 되는 행위로 비난하며 견제했다. 견제의 지점은 복합적이다. 첫째, 미국산 셰일 가스가 아니라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한 못마땅함이다. 이와 관련해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너무 많은 천연가스가 나와 그냥 태우기도 한다”며 “최대한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많이 보내 러시아의 주도권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 우크라이나를 통과해야 했던 러시아산 천연가스 물량의 상당 부분이 유럽에 직접 수출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러시아 견제를 위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취약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이런 지정학적 이해관계 일치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노르드 스트림2를 견제하는 미국의 주요한 목적이 자국산 셰일 가스의 유럽 수출에 있다면 ‘러시아산 석유의 자국 통과’에 걸린 우크라이나의 이해는 나중에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가스관 현황(점선은 진행 또는 계획중인 가스관)
유럽 가스관 현황(점선은 진행 또는 계획중인 가스관)

지난해 11월 러시아~터키 흑해 해저 가스관 ‘투르크 스트림’ 완공 이후 전면화

트럼프의 7월 압박 이후 수면 아래에 있던 이 사안은 지난해 11월 이른바 ‘투르크 스트림’으로 불리는 천연가스관 건설 사업 완공을 전후해 다시 전면에 떠올랐다. ‘투르크 스트림’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서쪽 흑해 해안인 아나파와 터키 이스탄불 서쪽 흑해 해안인 키기코이를 잇는 939㎞의 해저 가스관이다. 수송용량은 연간 315억㎥이다. 투르크 스트림 완공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몰도바․루마니아․불가리아 등 발칸반도 국가들을 거쳐 터키에 이르는 기존 가스관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점점 다급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으로 수출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주요 수송관들이 통과하는 요충지다.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3개의 육상 가스관을 거쳐 유럽으로 수출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2017년 930억㎥였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통과 수수료로 연간 재정의 10% 정도인 20~30억달러의 세수를 확보해 왔다.

반면 2014년 이후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기존 육상 가스관에서 25억6천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이에 비춰보면 투르크 스트림은 기존 육상 가스관을 대체할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미 가즈프롬은 지난해 2월 2019년 12월 만료하는 우크라이나 국영 가스․석유회사 나프토가즈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 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중재로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수출되는 천연가스 물량을 최소 100억~150억㎥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투르크 스트림에 이어 노르트 스트림이 완공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기존 육상 수송관의 일부는 필요성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 셈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갈등 속에서도 에너지 협력은 건드리지 않아

우크라이나나 폴란드 등이 러시아로부터 받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노르드 스트림2에 반대하고 있기는하지만, 유럽연합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상태다. 무엇보다, 미국과 함께 러시아를 제재하면서도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관계는 건드리지 않아왔다. 게다가 이미 노르드 스트림2 가스관 건설에 들어간 데다, 그동안 이 사업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 들인 공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가격을 석유 가격과 연계하던 가즈프롬의 가격 설정 방식을 시장 기반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유럽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달러화 대비 루블화의 가치 하락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가즈프롬이 이런 가격 설정 변경을 감당할 수 있게 된 사정도 꽤 작용했다.

유럽연합은 2012년 가즈프롬을 상대로 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5년 9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오랜 협상을 거쳐, 취약한 인프라를 이유로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중유럽 각국에 공급하던 천연가스 가격을 나라별로 차별하며 서유럽보다 높게 설정하던 차별화 관행을 없애는 합의를 도출했다. 에너지 생산․공급과 수송 부문의 소유를 분리하도록 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지침에 대해 가즈프롬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기한 소송도 2018년 8월 원만한 결과로 끝이 났다. 판결의 내용은 이 원칙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노르드 스트림의 육상 연장선에 해당하는 가즈프롬 소유의 가스관(OPAL)에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수송네트워크를 통합하는 범유럽에너지네트워크(TEE‐E) 구상은 가즈프롬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양쪽의 이해가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노르드 스트림 참여 유럽기업 제제하면 파급력 간단찮아

이런 그동안의 노력에 비춰보면 유럽연합이 미국의 압력에 따라 노르드 스트롬2를 중단할 가능성은 적다. 그동안 유럽연합을 지탱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이 노르드 스트림2는 유럽 차원의 안정적인 에너지 정책이라는 태도를 지켜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최근 “유럽의 에너지 정책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후퇴는 없다는 것이다.

유럽 가스관 용량 현황(단위: 연 ㎥ 입방미터, 자료: IEA)
유럽 가스관 용량 현황(단위: 연 ㎥ 입방미터, 자료: IEA)

하지만 트럼프가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등 유럽연합 내 노르드 스트롬2 반대 목소리를 내는 회원국을 등에 업고 참여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도발적인’ 행위를 할 여지는 남아 있다.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논리는 많다. 노르드 스트림2가 아니더라도 미활용 수송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40년까지 유럽연합의 가스 수요는 연 3070억~4150억㎥로 추정된다. 현재 유럽연합으로 통하는 가스관의 연간 최대 수송용량은 3570억㎥이고 이 중 여유용량은 1330억㎥이다. 여유용량을 활용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가스관 이외의 수입을 통해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은 나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노르드 스트림2를 계속 진행하되 유럽연합이 미국산 셰일 가스 수입량을 늘리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노르드 스트림2에 참여하는 유럽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가한다면 대서양 양안 관계는 미‐유럽연합 무역협정 체결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 첨예한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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