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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 에리트로포이에틴
[테크놀로지] 에리트로포이에틴
  • 허원/ 강원대 교수
  • 승인 200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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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않고도 적혈구 늘린다 산소 공급 부족시 콩팥서 분비… 미 암젠서 상품화, 빈혈 치료제로 각광 피가 붉은 것은 적혈구 때문이고, 그 속에는 산소와 결합하는 헤모글로빈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적혈구는 혈액 1cc에 약 400만~500만개가 들어 있고, 적혈구가 있기 때문에 혈액은 물보다 70배나 많은 산소를 녹여 신체의 필요한 부분으로 운반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적혈구의 평균 수명은 약 120일 정도이며,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몸 속을 평균 30만회 정도 순환한다.
또 1초에 300만개의 적혈구 세포가 죽지만, 그만큼의 새로운 적혈구 세포들이 골수에서 만들어져 파괴된 적혈구들을 대체한다.
히말라야나 안데스 산맥의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적혈구 숫자가 보통 사람들보다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보통 사람도 높은 산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 적혈구 수가 증가한다는 점도 관찰됐다.
예를 들어 4500m 고도에서 2주를 지나면 적혈구 숫자는 20~50% 증가한다.
비행기 여행을 할 때도 혈액 속의 적혈구 숫자가 늘어나는데, 이는 지라 속에 보관돼 있던 적혈구가 방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압이 낮은 환경에서는 더 많은 적혈구가 있어야 우리 몸에 필요한 산소가 충분히 운반·공급된다.
이것이 바로 인체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메커니즘이다.
이같은 적응과정은 기압이 낮아지면 산소 공급이 적어지고, 그렇게 되면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적혈구 숫자를 증가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인체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적혈구 숫자가 많으면 산소를 빨리 전달할 수 있으므로 심폐기능이 향상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자, 혈액의 적혈구 수를 증가시키는 빈혈 치료제 에리트로포이에틴이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약물로 오용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이클 선수인 에르완 망투르는 1997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의 파리-니스간 경기에서 무작위 약물검사 결과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복용한 것으로 양성반응이 나타나 출전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선수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다고 고백했지만, 자신의 에리트로포이에틴 양성반응은 설사에 따른 탈수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은 원래 사람 몸에서 적혈구 수를 조절하는 호르몬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혈액에서 발견되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도핑 테스트가 불가능하다.
그는 적발 2주 만에 출전자격을 되찾았다.
경기력 향상 위한 약물로 오용되기도 적혈구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으면 혈액응고나 심장발작 혹은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손상 가능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실제로 지난 몇년 동안 네덜란드의 사이클 선수들이 연속적으로 사망했는데, 모두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남용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은 콩팥에서 만들어진다.
만성 신부전증 환자나 신장 투석을 하는 환자의 경우에는 콩팥이 기능을 하지 못해 적혈구 양을 정상적으로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빈혈이 발생하게 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나 항암 치료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빈혈을 치료할 때도 이 물질을 사용할 수 있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은 콩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중 하나다.
콩팥은 혈액에 있는 노폐물을 걸러 배출할 뿐만 아니라 혈압 조절과 관련이 있는 레닌(renin),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용이하게 하고 신장에서는 정맥을 팽창시키고 소변을 생성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그리고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분비해 신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이 가운데 에리트로포이에틴은 골수 속의 조혈세포로부터 적혈구를 만들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골수의 조혈세포는 백혈구, 적혈구, 임파구 등 혈액을 구성하는 8종류의 세포로 만들어져서 혈액을 구성하고, 인체 안을 돌아다니며 맡은 소임을 다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죽어버린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은 인체의 각 부분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적절한 숫자의 적혈구가 만들어지게끔 조절해주는 작용을 한다.
콩팥에서는 지속적으로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만들어 골수의 조혈세포에게 신호를 보내면 적혈구가 만들어진다.
만일 신체의 특정 부분에서 허혈 증상이 일어나면, 즉 산소가 잘 공급되지 않게 되면 그 주변 세포들이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만들어내 적혈구의 생성을 촉진시키려 한다.
동시에 콩팥으로 하여금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더 만들도록 신호를 보내 적혈구 수를 증가시켜 허혈 상태를 벗어나게 해준다.
운동량이 많은 말의 근육은 산소 소비량이 크기 때문에 당연히 적혈구가 많아 매우 붉은색을 띤다.
쇠고기가 붉은색을 띄는 반면, 돼지고기는 붉은색이 적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운동량에 따라 산소 필요량이 다르므로, 호흡을 통해 얻어진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양도 운동량에 죄우된다.
생명공학 최고기업, 암젠의 효자상품 에리트로포리에틴은 현재 미국 최정상의 생명공학 회사인 암젠(Amgen)이 최초로 상품화해, 신장 투석이나 만성 신부전증 환자에게 발생하는 빈혈을 방지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전에는 적혈구 생성을 촉진시켜 빈혈을 방지할 수 있는 의약품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암젠의 상품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허가를 받고 시장에 출시된 지 2년 만인 92년 11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암젠은 매년 20% 정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2000년에는 20억달러, 우리돈으로는 2조6천억원에 해당하는 매출을 에리트로포이에틴 한 품목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현재 암젠은 단지 4개의 의약품만을 판매하고 있지만 약 4조5천억원의 연간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전세계에 걸쳐 5천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세계 최정상 생명공학 기업이 됐다.
암젠의 성공에는 에리트로포이에틴이 크게 기여했다.
암젠은 70년대에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기술 개발로 탄생된 여러 생명공학 회사들 가운데 비교적 늦은 79년에 설립됐다.
그 당시 생겨난 생명공학 회사들 가운데 제넨텍이 80년에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되는데, 초기 공모에서 매우 큰 자본을 끌어들여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이유는 제넨텍이 인터페론이나 인슐린 같은 단백질을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정과 생산기술을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새로운 기술의 산업적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80년부터 약 3년간 13개의 생명공학 기업들이 초기 공모과정을 거쳐 상장을 했다.
그 가운데는 그뒤 크게 성공한 기업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매출이 하나도 없고 자본금만 소진하던 기업들이었다.
물론 암젠도 자본금이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운이 따랐는지 암젠은 시장이 식기 직전인 83년에 4천만달러의 자금을 초기 공모를 통해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자본시장이 냉각하면서 최초 공모할 때 16달러에 거래되던 암젠 주식은 1년 반 만에 3달러 수준까지 하락했고 암젠의 미래는 불투명한 듯 보였다.
당시 여러 생명공학 회사들이 에리트로포이에틴의 유전자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암젠의 연구원들이 결국 가장 먼저 에리트로포이에틴 유전자를 찾아내 클로닝하여 제품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이 임상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86년에 증시가 활기를 되찾음에 따라 암젠 주가는 초기 공모가의 2배 이상으로 폭등하게 된다.
이 회사는 이어 초기 공모가의 3배로 7500만달러를 증자해 에리트로포이에틴 임상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생산시설과 마케팅에 많은 투자를 했다.
89년에는 에리트로포이에틴 판매 허가를 받은 뒤 ‘에포젠’(Epogen)이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기 시작해 급속한 매출 증가를 이룩했다.
암젠은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회사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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