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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경제 ‘가계빚 풍랑’ 이 닥친다
[초점] 경제 ‘가계빚 풍랑’ 이 닥친다
  • 이현호 기자
  • 승인 2002.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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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 중 총액대출한도를 줄이고 가계대출 억제대책을 강화하겠다.
” 9월26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뒤 이같이 밝혔다.
이런 대책이 나올만 했다.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에 비해 꾸준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업대출이 3분기에 주춤한 반면 가계대출은 3분기에 2조원이 둔화됐을 뿐,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증가세를 유지했다.
기업대출 증가액은 1분기에 12조7천억원, 2분기에는 10조5천억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가계대출 증가액은 1분기에 17조2천억원, 2분기에는 17조5천억원으로 기업대출과 달리 증가세를 기록했다.


가계대출은 이후에도 증가세를 유지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9일 ‘9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9월 기업대출은 3조원 늘어나 전달의 3.1조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가계대출은 6.1조원 증가하여 전달 5.4조원보다 증가폭이 확대됐다.
가계대출이 9월까지 두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간 것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9월 소비자전망’에서는 6개월 전과 비교해 부채가 증가했다는 응답이 전달의 같은 기간보다 0.7% 늘었다.



가계대출, 내수확대 효과서 부실 위험으로


상황이 위급해졌다.
은행, 카드회사가 풀어온 가계대출의 연체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 카드사 등 금융회사의 수익구조에 빨간불이 켜졌다.
가계대출을 배경으로 한 내수와 부동산 붐으로 지탱해온 경제의 기조도 흔들리고 있다.
가계대출이 부실화가 심해질 경우 악성채무 누적에 따른 금융회사의 부실 증가로 소비가 감소하고 자산가격도 큰 폭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화증권 임일성 책임연구원은 “현금서비스, 대출금 등 가계 부실변수가 앞으로 국내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특히 일부 카드사는 연체율이 20%에 육박해 연체자가 고객 5명 중 한명꼴에 달하고 있다.
게다가 연체율 급증은 돈을 떼일 것에 대비해 금융회사가 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하기 때문에 대출재원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박사는 “연체율 증가가 금융회사들의 대출 심사 강화로 이어진다”며 “그렇지 않아도 쪼들리는 빚쟁들을 파산으로 내몰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럴 경우 영업력이 취약한 일부 중소 금융회사는 위기 상황에 몰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김 연구원은 예상했다.


은행권의 선두주자인 국민은행은 3분기 당기순이익이 3489억원으로 2분기 4918억원보다 29.1% 감소했다.
1분기 6722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카드권의 선두주자 LG카드도 순익이 지난해보다 15% 감소해, 9월말 기준으로 부실자산에 대한 충당금 규모는 지난해보다 3배 증가했다.
LG카드 순이익이 감소하기는 올해 들어 처음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은행의 펀더멘털이 취약해졌으며, 일부 은행들의 4분기 실적은 더 나빠질 뿐만 아니라 내년엔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용카드사 연체율 상승세도 이대로 멈추지 않고 4분기를 기점으로 더 지속될 수 있다고. 그동안 금융기관들이 외형 위주 대출경쟁을 벌이다 결국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격’으로 연쇄 순익감소로 이어지면 금융권이 순항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해석인 셈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출과 연체율 못지않게 경제 전반의 소비성향을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한국은행은 10월4일 ‘최근 가계의 소비지출 동향자 특징’이란 보고서에서 “저금리 정책이 실수요가 아닌 투기의 목적의 부동산을 구입을 증가시켜 가격거품이 형성되고 부동산가격을 무너지게 한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이렇게 되면 주택담보비율이 상승하고 주택담보대출은 부실채권으로 절락과 경기 전반에 소비과열로 이어진다”고 전망했다.


한은은 또 “대출 관련 이자비용을 커버하기 위해 이미로 소비 조정을 하면, 소비 둔화와 성장률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경상소비 증가율은 11% 정도인데, 소비 조정은 이 증가율이 떨어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조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해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은행 부실→ 소비 억제→ 경기침체 악순환 우려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창균 연구위원은 “소득대비 부채규모가 급격히 증가하여 지불능력이 잠재적으로 약화됐다”며 “은행의 위험관리 시스템에서 자금용도 관리가 부재하고, 주택담보에 너무 의존하는 대출정책은 리스크가 크다”고 분석한다.
위험관리 체계 개선과 정책수단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진단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도 이런 움직임이 역력하다.
은행권의 카드 매출 채권 매입이 시들해진 것이다.
그동안 신용카드사의 대출 채권을 실제 대출이자보다 낮은 이자에 되사들여 이자놀이를 했었지만, 이 취급액이 10월20일 기준으로 3천억원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연체율 증가로 채권회수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대출잔액(신용카드 채권 포함)은 20일 기준으로 238조7천억원으로 보험권 가계대출 잔액에 비해 낮아지면서 낙관적 전망이 줄고 있다.


반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인 EIU는 “한국의 가계대출 증가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EIU는 “외환위기 후 한국의 가계대출 증가추세는 금융기관의 자산을 다변화하고 한국 경제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계기로 오히려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또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한 다른 국내외 우려와는 대조적인 점에서 주목받는다.
즉 EIU는 한국이 대기업 위주의 대출관행에서 탈피해 가계대출을 증가시킨 결과,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이 높아지고 수출의존성을 줄여 대외적 충격을 잘 흡수하는 두가지 긍정적 효과를 낳은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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