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4:09 (금)
[커버]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커버]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대별 베스트 상품을 찾아서



하지만 그건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500원짜리 동전이 처음 나왔던 20여년전, 1982년의 얘기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더 이상 PC를 보면서 그 용도나 성능에 놀라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PC를 통해 낯선 세계에 접속하고 지구촌 반대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얘기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생활 패턴도 이에 맞춰 변한다.
이제 PC나 휴대전화 없이는 하루라도 살 수 없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담배보다 PC 끊기가 더 어렵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침에 출근해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e메일을 체크하는 건 일상이 됐다.
잠깐이라도 e메일이 안 되거나 메신저 연결이 끊어지면 금세 답답함을 느끼거나 초조해하는 게 현대인의 모습이다.


2003년, 한가위를 맞은 우리네 생활은 이렇듯 차갑고 건조하다.
하지만 이 또한 변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정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82년 당시 PC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PC를 새로이 여기지 않듯, 새로운 시대엔 그에 맞는 새로운 ‘물건’이 나오게 마련이다.
시대가 변하면 대표 상품도 변한다.
동시에, 시대를 풍미하는 상품들 속에는 동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욕망이 투영돼 있다.


그래서 ‘옛 스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우리 모습이 보인다.
70년대 삼성 카세트 녹음기를 들고 야유회를 떠나던 ‘장발 청년’들은 80년대 조카들의 졸업 선물로 ‘마이마이’를 골랐고, 자녀 교육비 걱정을 할 나이가 된 지금은 ‘MP3플레이어’에 눈을 돌리고 있다.
70년대 라면이 주린 배를 채우던 가난한 서민들의 고달픔을 대변했다면, 90년대에 등장한 숙취 해소 음료는 경제 발전과 궤를 같이했던 샐러리맨의 스트레스를 중의적으로 투영하는 지표인 것이다.
21세기 들어 먹거리나 입을거리, 가전제품 등이 모두 건강을 화두로 내세우는 것도 윤택해진 삶의 한 단면에 다름아니다.


좀 더 ‘경제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변화를 꿰뚫는 트렌드를 잡아낼 것이다.
이른바 그 시대에 ‘먹혀들’ 상품을 집어내는 안목이다.
조그만 칩을 통해 무선으로 연결되는 가전제품들,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디바이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연료전지 자동차와 기능성 식품들. 이들 ‘코드’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까. 하지만 아쉽게도 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은 과거 우리 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 상품들’을 빌려 우리네 경제의 흐름을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를 위해 해방 이후 반백년 경제사를 지도처럼 펼쳐놓고, 각 시대별 대표상품을 좌표 삼아 이들의 지정학적 의미를 답사해 보려 했다.
골치 아픈 숫자놀음이 아닌, 지난 시절의 ‘욕망’을 은밀히 엿보면서 오늘날의 희망을 품어 보고픈 소박한 욕심에서다.
이 속에는 80년대 양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루마블’ 속 가짜 돈을 만지작거리며 부자의 꿈을 일궜던 놀이문화의 단면이 스며 있으며, 힘겨운 가난의 늪 속에서도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윤택한 삶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꼈던 70년대 우리네 모습이 거름처럼 녹아 있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다.
한가위란 자고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만큼 즐거워야 한다.
주름진 살림살이 얘기도, 바늘구멍보다 좁아 보이는 취업문 앞에서 고개를 떨군 조카도 잠시 잊자. 마음만이라도 꼭 한가위만큼만 풍성해지자. 1976년 5대의 ‘포니’로 첫 자동차 수출길을 뚫었던 현대자동차가 2003년 자체 기술력으로 미국시장을 호령하듯, 지금의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황금빛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가위를 꿈꾸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