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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신라호텔 안준호 상무
[나는프로] 신라호텔 안준호 상무
  • 장근영
  • 승인 2001.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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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서비스의 완벽함
호텔을 찾는 손님들의 취향은 색동옷처럼 제각각이다.
옷을 받아줘서는 안 되는 손님, 커피를 마실 때 꼭 꿀을 함께 찾는 손님 정도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잔돈을 거슬러줄 때 동전의 그림을 한 방향으로 맞춰서 드려야 직성이 풀리는 손님, 스파게티를 먹을 때 나이프를 찾는 손님 등 괴팍한 사람도 셀 수 없이 많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가 묵었을 때 일이에요. 귀빈(VIP)이 카운터에서 사인을 안하길래 무척 당황했어요. 알고보니 자기 나라 국기 색깔인 녹색 펜으로만 사인을 한다더군요.”

신라호텔 안준호(48) 상무는 ‘실수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강조한다.
좋은 호텔은 문제를 잘 해결하고, 그렇지 못한 호텔은 문제를 방치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해결 능력에 따라 호텔별로 서비스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신라호텔과 같은 큰 호텔은 들락거리는 손님이 많다보니 까다로운 손님들의 성향을 모두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안 상무는 실수가 오히려 고객을 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실수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호텔 직원의 불친절한 서비스와 같이 내부 잘못일 수도 있고, 고객의 성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사우디 왕자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두번째 실수에 속한다.
이런 실수를 최소화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호텔 업계는 사내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고객의 성향을 데이터베이스화해 CRM(고객관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안 상무는 자신의 주장이 괜한 아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통계 자료를 들고나왔다.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 고객이 다시 찾는 확률이 87%인 데 비해, 서비스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을 잘 해결했을 때 고객이 다시 찾는 확률은 92%나 된다고 합니다.
실수를 기회로 삼는 법 그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한번은 샐러드에서 애벌레가 나와 고객이 흥분한 적이 있었다.
당시 부총지배인이었던 안 상무를 비롯해 지배인, 총지배인 등 호텔 매니저들이 줄줄이 나와 사건을 가까스로, 그러나 성실히 마무리지었다.
그 고객은 지금 신라호텔 팬이 됐다고 한다.
98년엔 뉴욕 카톨릭재단의 감사기획국장인 유 아무개씨가 신라호텔에 들른 적이 있었다.
룸에 여장을 풀고 하드롤(딱딱한 롤빵)을 시켰던 유씨는 빵이 너무 딱딱하다고 호텔쪽에 항의했다.
그런데 룸서비스를 담당했던 종업원은 되레 “하드롤은 원래 딱딱한 것 아니냐”며 실랑이를 벌였다.
이때도 해결사의 역할은 안 상무에게 돌아갔다.
그는 고객의 얘기를 끝까지 정중한 자세로 듣고, 고객의 말에 동조했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안 상무의 정중한 예우로 기분이 풀린 유씨도 그 뒤 신라호텔의 팬이 됐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안 상무는 의사소통 채널의 중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바로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즉각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안 상무는 또 ‘지위’가 사람들에게 주는 신뢰감과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어야 고객을 끌 수 있다고 말한다.
고객은 종업원을 만나 실랑이를 벌이는 것보다 지배인 등 책임자를 만나 문제를 추궁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호텔 매니저란 직업이 서비스의 최전방에 있는 직업이다보니 서비스 강도도 남다르다.
특히 고급 호텔일수록 유명한 정치인이나 사업가, 예술인 등 각 분야에서 ‘난다 긴다’하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
그런 만큼 요구 수준도 높기 마련이다.
안 상무는 이들을 대할 때 서비스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이 든 손님들의 손을 잡아주고, 젊은 손님들에겐 다정한 아우를 대하는 것처럼 살가운 태도로 대한다.
말이야 쉽지만 실제로 그런 고차원적 서비스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안 상무가 강조하는 것은 답(答)의 서비스가 아닌 응(應)의 서비스다.
손님의 주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손님의 반응을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프로액티브(proactive)한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침에 허둥대는 손님을 맞게 되면 비행기 시간에 쫓기는 손님이라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람에게는 음식 제공도 평소보다 빠르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안 상무는 직업의 영향 때문에 다른 서비스 업종의 종업원들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지난주에 업무 때문에 한 항공사 일등석을 타고 싱가포르에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승객이 4명뿐이었는데 2명의 승무원이 그들에게 형식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고, 서비스가 아직 멀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손님과의 ‘감성적인 터치’를 중시하는 안 상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손님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객이 부르기 전에 가라 지금 면세점 영업을 지휘하는 일을 하고 있는 안 상무가 신라호텔에서 매니저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는 외국계 기업과 삼성물산에서 근무하다가 95년 초 본격적인 서비스맨으로 탈바꿈했다.
자신의 성향에 이 직업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호텔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사교성, 어학실력 등을 갖추고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호텔 매니저가 외부 고객에게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내부 직원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어차피 서비스는 내·외부 고객을 가리지 않고 총체적 고객관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상무는 식사를 할 때 꼭 혼자 간다고 한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직원들과 한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란다.
그래야 직원들의 고충도 잘 파악할 수 있고 자신도 서비스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내부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외부 고객을 배려하기 위한 필요조건인 셈이다.
호텔 매니저가 되는 길
늘씬하고 잘생긴 배우들 덕분에 최근 호텔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제법 인기를 끈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만 보고 호텔리어(호텔매니저)를 지망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안준호 상무는 실제 호텔에서 일하게 되면 반복 업무와 서비스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좌절하기 쉽다고 충고한다.
호텔매니저가 되기 위해서는 유명한 호텔학교를 나오는 것보다 호텔에 대한 열정과 인간관계의 친화력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모도 고객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서비스의 최첨단에 있는 업종이다보니 이런 제약조건이 따른다.
호텔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이상의 학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호텔경영학과와 같은 호텔 관련 학과를 나오면 유리하다.
하지만 전공보다는 어학실력이나 고객과의 친화력 따위가 승진하는 데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신라호텔은 토익의 경우 700점 이상, 일본어 능력시험 3급(JPT 700점) 이상의 실력을 갖춰야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영어특기직은 토익 850점 이상을 받아야 지원이 가능하다.
외국 손님들과 자주 접하다보니 어학 실력은 이제 필수가 된 셈이다.
급여 수준은 전문대졸의 경우 초봉 1800만원 이상, 4년제 대학 졸업자는 2300만원 이상이다.
내부평가를 통해 연봉이 결정되기 때문에 나중에 연봉차이가 많이 날 수도 있다고 신라호텔 관계자는 말한다.
호텔매니저 업무는 식음, 객실, 시설, 조리, 관리 분야로 나뉘어 있다.
이 가운데 음식점이나 호텔바 등에서 일하는 식음 출신들의 승진이 다소 빠른 편이다.
호텔의 매력은 상류계층의 귀빈(VIP)들을 쉽게 만나고 그들과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도 있다.
관계를 잘 맺어놓으면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과 손님들의 생활을 비교하는 데서 오는 괴리감을 극복해야만 꾸준히 일을 계속 할 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서비스 정신이 몸에 배지 않으면 결코 호락호락한 직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높은 서비스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건강과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 사람이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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