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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은 사상 최대, 배당은 쥐꼬리
수익은 사상 최대, 배당은 쥐꼬리
  • 이정환
  • 승인 2001.03.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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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 “배당 적다” 불만…자금조달·투자지출 계획 맞춰 배당해야

“배당률을 500%로 인상해줄 것을 긴급 제안합니다. 500%라고 해도 시가배당으로 치면 19%밖에 안돼요.”

지난 3월9일 삼성전자 주주총회. 첫 발언권을 얻은 한 소액주주는 대뜸 배당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는 지난해 주가 하락을 감안하면 19% 배당을 줘도 주주들의 손실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자사주 300만주를 매수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까지 나오자 삼성전자 직원들로 보이는 주주들의 반발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는 마이크를 빼앗긴 채 주저앉아야 했다. 맞장구를 치는 목소리도 없진 않았지만 이내 묻히고 말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4조2837억원 매출에 6조4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주주들에게는 한주에 3천원씩 모두 5085억원의 배당이 돌아갔다. 나머지 5조5천억원은 고스란히 사내 유보금으로 남게 됐다.

액면가 배당으로 60%라니까 제법 많아 보이지만 시가배당으로 치면 2%에도 못 미치는 배당이다. 한때 40만원 가까이 치솟았던 주가는 19만 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익을 남겼으면 당연히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연평균 배당수익률 0.5% 그는 마이크도 없이 발언을 계속했다.
“어차피 삼성전자 주가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따라 출렁출렁하는 것 아닙니까. 주가로 보상을 해줄 수 없다면 배당이라도 넉넉히 줘야죠. 도대체 주주들을 뭐로 보는 겁니까.”

삼성전자는 대답을 피하려고 했지만 주주들의 질문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의장을 맡았던 윤종용 부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맞서기 위해 유동성을 충분히 안고 갈 필요가 있다”며 “많은 투자자들이 당장 배당을 늘리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고 설득했다.

SK텔레콤의 배당도 쥐꼬리 수준이다. 지난해 9506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SK텔레콤은 한주에 540원씩 모두 480억원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배당률을 108%로 크게 높였다고는 하지만 역시 시가배당률로 따지면 0.2%에 지나지 않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단말기 보조금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IMT-2000 등 신규 사업 진출에 대비해 투자재원을 미리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유난히 배당에 인색한 모습을 보인다.
증권거래소 상장업체들의 배당실적을 살펴보면 지난 4년 동안 우리나라의 연평균 배당수익률은 0.5%에 지나지 않는다. 배당수익률이 예금이자율의 17%에도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업체들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예금이자율의 26%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배당수익률이 우리나라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예금이자율의 64%는 된다. 일본의 경우 주가야 오르건 떨어지건 그냥 묻어두기만 해도 예금이자율의 절반 정도는 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도 필립모리스나 질레트, 코카콜라 같은 주식은 높은 배당으로 장기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단기 투자가 극성을 부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터무니없이 낮은 배당수익률 때문일지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배당을 실시한 업체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례적으로 시가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한국정보공학이 그렇다. 한국정보공학은 지난 연말 종가 8960원을 기준으로 소액주주들에게 5%, 대주주들에게 1%의 배당을 실시할 계획이다. 다른 기업들처럼 액면가 500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배당률은 90%에 이른다. 주주들은 한주에 450원씩 모두 15억원을 돌려받게 된다. 배당성향(배당금÷당기순이익×100)은 25%다. 한국정보공학의 소액주주들이 받은 배당은 지금까지 발표된 배당수익률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담배인삼공사도 주주들에게 화끈한 배당을 안겨줄 계획이다. 담배인삼공사는 고가 담배 매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지난해 1조7050억원 매출에 270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소액주주들은 28%, 대주주들은 21%의 배당을 받게 된다. 배당성향은 무려 76%에 이른다.

두 회사는 주총을 앞두고 한껏 느긋한 표정이다. 많이 준다고 좋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배당은 얼마만큼 하는 게 좋을까. 주주들은 높은 배당을 달라고 할 테고 기업은 이왕이면 내부 유보율을 높여 현금을 쌓아두고자 할 것이다. 자금사정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배당금을 늘린다면 현금흐름이 나빠져 주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배당에 인색하면 주주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기업마다 적절한 배당정책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은 전통산업은 높은 배당을 할 만한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저기 투자할 데가 많은 성장산업은 아무래도 순이익의 대부분을 재투자하는 데 쏟아 붓게 된다. 배당을 통한 자본이득보다는 주가 상승을 통한 시세차익이 훨씬 크다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은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내면서도 배당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주주들도 주가만 꾸준히 올라준다면 딱히 불평할 이유가 없다.

배당정책은 단순히 배당금을 얼마로 할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총수익률(주가상승률+배당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 사업계획에 맞춰 전략을 짜야 한다.
배당금 지출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지, 기업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꼼꼼히 살펴보고 자금조달 계획이나 투자지출 계획과도 맞춰봐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의 배당정책이 계획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기업들은 현금흐름 계획을 잡아놓고 정해진 목표가 달성됐을 때 배당을 하거나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관리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돈이 부족하면 차입금을 끌어다 쓰고 남으면 무조건 쌓아두기만 하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구멍을 메울 뿐이죠.”
배당은 기업의 재무 상태를 주주에게 전달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일 뿐 아니라 자금관리 전략의 핵심이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기보다 정당하게 이익을 배분하려는 자세가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잘 짜인 배당정책에는 주주를 사업파트너로 인정하는 자세와 체계적인 자금운용 전략, 합리적 경영노하우가 함께 녹아들어야 한다.
경영 전반에 걸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삼성전자 주총, 이재용씨 '대권' 승계 갑론을박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33)씨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이 회장이 지난 2월28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재용씨의 경영 참여를 슬쩍 흘린 데 이어,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3월9일 오전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재용씨의 이사 선임 계획을 공표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에는 재용씨를 전자기획팀 상무보로 승진시키기로 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표됐다.

윤 부회장은 주총장에서 작심을 한 듯 참여연대의 질문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이 “삼성전자에 과장이 1만1600명이고 거기까지 가려면 7년 동안 엄청난 헌신을 해야 한다”며 “입사 이후 유학만 다녀온 재용씨가 어떻게 바로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러자 윤 부회장은 “최고경영자로서 재용씨를 사내이사로 승진시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이는 경영판단 사항인 만큼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특히 그는 “승진은 회사 내규에 따라 이뤄질 것이며, 재용씨도 삼성전자가 키우고 있는 인재 500여명 가운데 하나”라면서 “98년부터 3년간 529명의 해외 석·박사를 채용했는데 이 가운데 22명이 이사에서 부사장급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윤 부회장은 참여연대쪽이 세습경영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자 “모토로라도 창업자의 손자가 회장을 하고 있고 포드도 증손자가 회장”이라고 받아쳤다.

재용씨가 관여하고 있는 e삼성도 도마에 올랐다. e삼성에 삼성전자가 물적·인적 자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참여연대가 지적하자 윤 부회장은 “재용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e삼성과 가치네트 등에 삼성전자 차원에서 물적·인적지원을 제공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이는 공정거래위 조사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연대 장하성 경제민주화위원장(고려대 교수)은 “공정거래위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은 부당내부거래가 없다는 것뿐이며 삼성전자와 e삼성, 가치네트 사이에 거래가 오갔는지는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주총장에서의 모습이나 최근 삼성의 움직임을 보면 삼성이 삼성자동차 문제 이후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던 재용씨의 경영참여 문제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재용씨의 경영참여는 국내 최대 재벌이 경영권을 3세로 이양하는 수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은 이 사안에 대한 여론이 곱지 않다는 점을 의식해 그동안 다방면으로 정지 작업을 해왔다.

재용씨의 이번 경영참여는 사실 시기가 그리 좋지 못하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순익을 기록하긴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세계 반도체경기 침체 여파로 고전이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고전하게 되면 그 원인은 주로 시장 탓이 크겠지만 주주들은 경영진에 책임을 묻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반도체경기가 활황세에 돌입하는 시점에 재용씨가 경영참여를 하는 게 삼성으로서는 부담이 덜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은 점을 고려해 시기를 미룰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용씨의 경영권 승계는 삼성으로서도 새로운 실험이 될 전망이다. 국내 재벌 역사에서 창업자의 2, 3세가 경영을 제대로 한 경우는 많지 않은 만큼 삼성은 앞으로 몇 년간 재용씨를 능력 있는 경영자로 성장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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