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15 16:51 (화)
경쟁, 혁신없는 중소기업살리기는 나쁜 경제민주화
경쟁, 혁신없는 중소기업살리기는 나쁜 경제민주화
  •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 승인 2013.09.25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적합업종 지정이나 타율적인 동반성장은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생태계 창조 못해

<커버스토리④>근혜노믹스논쟁-중소기업살리기2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는 학계와 언론에서 국내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개념이지만,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그만큼 개념과 정의가 모호하고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인과 관료의 경제개입 초래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의 근거는 헌법에 있다. 헌법 119조 2항에 국가는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달성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의 다른 규정들과 마찬가지로 선언적 규정이기 때문에 과연 ‘경제주체간의 조화’가 어떤 의미고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는 모호하다. 그 결과 지난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해 다양한 주장과 논리가 제시되었으나, 일관된 정책 방향을 가지지는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체로 “경제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자” 또는 “경제적 약자를 경제적 강자로부터 보호하자”는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총론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으나,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다양한 주장과 의견대립이 존재했다.

그동안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제시된 정책방안들은 대부분 과거에 도입되었다가 폐지되었거나, 도입을 추진하다가 부작용과 반대가 심해 보류된 방안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재벌규제, 중소기업 보호, 동반성장, 골목상권 보호, 무상복지, 양극화 해소, 부자증세 등등의 정책방안들이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제시되었다. 즉 경제민주화는 새로운 정책이라기 보다는 이미 논의되었던 기존 정부규제를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묶어서 재포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에서는 대기업 때리기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와 민주화를 합성한 단어다. 경제문제를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절차로 해결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불가피하게 정치인과 관료에 의한 경제문제 개입을 초래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므로 경제문제를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초래될 것이다. 이는 불가피하게 경제정책이 영합주의(populism)에 빠지도록 할 것이다. 이는 이미 지난 두 번의 선거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바 있다.

경제와 민주화가 혼합돼 정치와 경제논리가 충돌

여론을 존중하는 것과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경제문제를 다수결과 영합주의에 의해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경제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따뜻한 시장경제는 필요하지만 기강해이와 영합주의는 경제에 치명적이 독이 될 것이다. 남유럽과 70년대 남미의 경제적 고통의 뿌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정신은 살리되, 민주적 절차를 지키면서 한국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독재정치가 지속되지 못하고, 또 독재 정치를 하면서 시장경제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일군 대한민국이 그 증거다. 정치적 절차로서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것은 바로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분산함으로써 독재를 방지하고 권력의 상호견제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제도로서 시장경제가 이상적인 것은 바로 시장경제가 관치경제 계획경제를 거부하고, 경쟁과 개방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견제하고 경제적 의사결정을 분산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권과 소비수준의 향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두 제도의 이런 장점을 잘 결합시킬 때 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다. 문제는 경제와 민주화를 혼합함으로써 정치논리와 경제원리가 충돌하는 경우다. 정치논리는 통합과 상생, 공존이 기본원리고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다수결과 타협이 원칙이다. 다수 국민에게 정치적 신뢰를 더 얻는 자가 승자가 된다.

그러나 경제원리는 효율과 생산성이 기본원리다. 경쟁과 차별적 보상이 원칙이고, 결과의 불평등이 불가피하다.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시장에서 승자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정치논리와 경제 원리는 본질적으로 상충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착한’ 경제민주화가 있고 ‘나쁜’ 경제민주화가 있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5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합동 브리핑실에서 정부의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정부의 규제심화는 경제관치화로 생산성 저하 귀결

착한 경제민주화는 개방과 경쟁촉진을 통해 경제권력을 견제하고 분산시켜, 시장지배력 남용과 불공정 거래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경제력화한 대형 노동조합과 과격 이익단체의 경제권력 집중도 막아야 한다. 정부도 경제 권력의 하나이므로 정부로의 경제권력 집중도 견제되어야 한다. 정부가 경제 민주화의 명분으로 경제 활동에 대한 간섭과 개입을 강화한다면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관치화가 될 것이다. 착한 경제민주화는 소비자의 권익과 선택권을 확대하여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게 될 것이다.

나쁜 경제민주화는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심화되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제약하고, 정치인들이 정치권력의 기반 확대를 위해 경제정책과 경제원리를 왜곡하는 경제민주화다. 경쟁과 개방을 제한하고 조직화된 이익집단에게 포획되어 그들의 조직 이익을 보호하는 경제민주화는 나쁜 경제민주화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경제적 어려움을 대기업과 잘 사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매도하면서, 일 덜하고도 더 많은 임금을 받게 해준 다는 등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와 게으름, 무책임을 유발하는 경제민주화는 나쁜 경제민주화다.

이런 경제민주화는 결국 이익집단과 떼쓰기가 득세하는 관치경제를 초래하고, 기업활동과 투자를 위축시켜 한국경제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경기침체를 가속화하여 세금 수입을 줄이고 복지 재정의 확충을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 각론을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 추진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착한 민주화인가 나쁜 민주화인가?

재래시장 보호책은 나쁜 경제민주화

재래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대형 유통사업자에 대한 각종 영업규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제약하고, 물가안정을 위협하며, 정작 보호받아야 하는 재래시장에 대한 혜택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나라 경제 전반적으로 국민 생활의 불편을 초래하고, 일자리를 줄이고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이미 여러 학술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착한 경제민주화로 보기 어렵다.

재래시장의 문제는 과거 우리나라가 농업 개방을 앞두고 겪은 진통과 같은 구조적 문제로서 쌀 개방을 무조건 막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혜와 국민적 공감대를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어렵게 얻은 바 있다. 산업으로서의 농업과 거기 종사하는 농민의 생활안정을 구분해서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민의 생활 안정은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국가 기간사업으로서의 유통산업의 발전과 거기에 종사하는 재래시장 상인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통산업의 현대화를 억제하면서 무조건 재래시장을 보호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소비자는 물론 재래시장 사업자들과 물가안정에 도움되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 농업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유통산업에서 반복하고 있다. 국민생활의 편익과 물가안정을 위해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현대화하되 이 과정에서 재래 부문에 종사하는 영세 사업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해주는 것이 보다 미래지향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있는 중소기업 생태계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은 다른 것이다. 우리경제에 필요한 것은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중소기업 생태계이지, 현존하는 중소기업들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지정이나 타율적인 동반성장 요구는 현존하는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높일 수는 있을 것이지만, 중소기업들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반드시 높이지는 못한다.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생태계는 치열한 경쟁과 혁신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지, 칸막이와 정부 지원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배적 지위의 남용이나 불공정 거래 행위는 이미 실정법상 위법이고 이를 강력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지배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이 협력 사업자들에게 가하는 부당한 가격인하 요구나 불공정 거래행위는 규제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중소기업 간이라도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들이 이미 해외에 다수의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고 생산과 판매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동반성장을 위해 요구되는 대기업과 국내 협력사업자간의 타율적 협력관계는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장기적으로 대기업들이 협력관계를 해외 기업과 맺게 되면 결국 국내 협력사업자들의 사업기회와 일자리의 상실로 나타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증세와 규제강화로 한국경제살리기는 불가능

결론적으로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경제민주화는 헌법정신이고 또 지난 선거를 통해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제민주화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하는가다. 국민들이 경제민주화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경제의 활성화를 통한 소득과 일자리의 창출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치권과 정부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도입되었거나 도입을 추진하는 각종 규제는 이런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증세와 규제강화로 경제를 살리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착한 경제민주화는 우리 경제를 활성화해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할 것이지만, 나쁜 경제민주화는 우리 경제를 침체시키게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각론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은 2013년 4월 15일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정책세미나에서 필자가 토론한 내용을 전재한 것임.) E21 

본 기사는 <이코노미21> 8월호 커버스토리 '근혜노믹스 논쟁'에 게재된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