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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와 영산포,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홍어와 영산포,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 임호균 문화연구가
  • 승인 2013.10.1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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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영산포 지명유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영산도 유래설’의 근거없음을 밝힌다.

최근 한국의 음식문화와 관련하여 각종 매체에 실린 글이나 출판된 책들 중 일부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글쓴이들의 권위에 대한 믿음으로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그러한 주장들을 퍼 나르면서, 왜곡된 내용이 더욱 확산, 증폭되고 있다. ‘잘못된 권위’는 늦기 전에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로 ‘홍어’를 선택했다. 합리적인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혹여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여러분의 날카로운 비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 저자 주

홍어!

‘홍어’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독자들 중 다수는 전라도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홍어만큼 한 지역을 폭넓게 상징하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안동 간고등어, 포항 과메기가 있지만 이것이 평안도 냉면, 함경도 냉면, 경북 간고등어, 경북 과메기로지칭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홍어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는 냄새일 것이다. 암모니아 냄새. 썩은 냄새인지 너무 삭힌 청국장 냄새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처음 맡으면 비위가 뒤틀리면서 먹기는 커녕,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음식. 한민족 음식 역사상 이보다 더 강력한 냄새가 있을까! 사람마다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 그래서 전라도를 상징하게 되었을까.

이제는 맛 좀 안다는 이들은 홍어를 못 먹으면 미식가 축에도 끼지 못한다. 처음에는 코를 싸매고 먹다가 나중에는 그 맛에 중독되어 전국의 잘 한다는 집을 주유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 음식의 중독성은 무엇인가.

영산도를 찾아서

홍어의 주산지는 흑산도와 대청도 인근 바다이다. 여기서 잡은 홍어를 잘 삭혀서 전국으로 유통시키는 주요 지역은 영산포이다. 옛 기록에 영산포의 유래가 흑산도 주민들이 왜구 노략질을 피해서 이주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근래 들어 그 섬이 흑산도가 아니라 그 옆 영산도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 근거는 영산도에서 왔으니 영산현이 되고 영산포, 영산강의 유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삭힌 홍어의 유래도 영산도 주민들이 홍어를 싣고 영산포로 오다가 날이 오래 걸려서 썩은 줄 알았는데, 막상 먹고 보니 먹을 만해서 영산포에서 삭힌 홍어를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이것을 확실히 밝혀야 홍어음식문화 역사에 대한 바른 탐색이 가능하다.

▲ 영산도에서 바라본 흑산도 Ⓒ임호균
목포여객터미널에서 흑산도-홍도행 쾌속선을 타고 흑산도를 향해 출발했다. 비금도, 도초도 까지는 안바다, 내해로서 더 안전한 바다이고 거기를 벗어나면 먼 바다, 거친 큰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흑산도 가는 길은 큰 바다로 나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목숨 걸고 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 바다 길을 이제는 쾌속선을 타고 실내에서 TV보며 고속버스 타듯이 간다. 날씨가 좋아서 바다는 평온하고 배는 생각보다 빨라 1시간 50분 만에 흑산도에 도착했다. 흑산도에서 영산도는 정기여객선이 없어서 마을에 미리 연락하여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이장님이 운행하는 최대속도 20노트의 날렵한 쾌속어선을 타고 10여분 만에 도착한 영산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섬의 유래가 영산화가 많이 피어서 영산도라 되어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한국지명유래집 등 모든 백과사전에도 그리 되어있다. 그러나 영산도에는 영산화가 없다. 단 한 그루도. 우리나라 지명의 유래나 소개를 보면 어떤 근거와 사실로 그렇게 된 것인지 불확실한 경우가 너무 많다. 더욱 황당한 것은 출처들 대부분이 정부 간행 출판물이라는 것이다. 영산도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장님 말씀으로는 영산도는 신령스런 섬이라서 신령 영자를 써서 영산도라 하며, 영산화(영춘화)는 본인이 어려서도 없었고 현재도 없단다. 아주 오래 전에는 있었다가 없어졌을 수도 있겠으나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을 아무 근거 없이 너무 자신있게 주장하고 있으니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영춘화의 영은 맞을 영(迎)이다. 현재 영산도의 영은 길 영(永)이다. 영산포의 영은 꽃 영(榮)이다. 17세기경 入島祖 이래 300년 넘게 대대로 영산도에서 살고 계신 경주 최씨 이장님은 신령 영(靈)이란다. 어떤 영자가 맞을까? 참 어렵다.

흑산도는 왜 영산현이 되었을까?

<신증동국여지승람 나주편>에 ‘영산폐현(榮山廢縣)은 주의 남쪽 10리에 있다. 본래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南浦)에 우거하였으므로 영산현’이라 했다.

흑산도 사람들이 나와 살았으면 黑山縣이라 해야지 왜 榮山縣이라 했을까?

永山島 유래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한글소리만 같지 한자는 다르다!) 영산도에서 집단이주하였다 하며 옛 기록을 무시하고 있다. 기록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 성립할 수 있을까! 그런데 무슨 이유로 흑산도는 영산현으로 되었을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두 가지 가설이 나온다. 첫째 흑산과 영산은 같은 뜻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다. 둘째 이름을 바꾼 것이다. 즉 흑산도가 영산현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추정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한자가 서로 다른데 어떻게 같은 말로 볼 수 있을까? 답은 우리말, 옛 우리말에 있다. 흑은 우리말로 ‘검다’인데, ‘검’은 고대에는 神을 일컫는 말이다. 단군왕검의 검이 그것이다. 영을 신령 靈으로 가정하면 黑山이나 靈山이나 똑같은 뜻을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것일 뿐이다. 즉 신령스런 산이다. 흑산도와 영산도는 신령한 산이 있는 섬, 신령한 섬인 것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흑산도 사람들이 와서 산 지역을 영산현이라 했을 수 있다. 그 흔적이 흑산도에 남아 있다.

흑산도에는 영산도가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이다. 윗글에 있는 영산도 말고 흑산도항 앞에 영산도가 또 있다. 內永山島와 外永山島가 그것이다. 두 섬은 흑산도항을 방파제처럼 둘러싸고 있다. 두 섬은 무인도이고 永山島와 한자가 같다. 섬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같은 이름의 섬이 세 개나 된다는 것은 흑산도가 영산도로 불리던 시절의 흔적이 바로 옆 섬들에 남아있는 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즉 흑산도는 영산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명칭의 뜻은 추론이 가능하나 역사적 맥락과 기록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려 말 공민왕 시절 왜구 피해로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 시행 때, 나주목에서는 3개 섬 주민이 육지로 이주한다. 압해도, 장산도, 흑산도이다. 앞의 두 섬은 현을 옮길 때 이름을 바꾸지 않는데 흑산도만 영산현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그 후에 흑산도가 영산도로 불린 적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후 역사기록에는 흑산도는 흑산도, 대흑산도로 불리나 영산도로 불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떻게 공식적으로 바뀐 이름이 5백년 넘도록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결정적으로 漢字가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기록상 영산도는 길 永으로만 쓰였지 꽃 榮,신령 靈으로는 쓰인 적이 없다. 길 영과 다른 두 영은 의미상 같은 뜻이 없다. 조상님들이 한자를 잘 못 쓰셨다면 모를까, 이 추론은 말은 될 수 있으나 기록상, 역사상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다음으로 흑산도가 영산현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추정하는 것의 타당성을 살펴보자.

먼저 흑산도 주민들이 이주한 나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나주의 지명 유래는 삼국사기에 처음 나오는데 백제 때 지명은 發羅이다. 이후 통일신라 경덕왕 때 중국 한자식인 錦山으로 바뀌고 이후 錦城이 되었다가 羅州로 바뀌었다.

發羅는 무슨 뜻인가? 羅는 신라, 탐라처럼 땅이나 나라를 뜻한다. 發은 우리말 ‛�밝’으로 밝다, 빛나다, 신령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밝은 땅이 錦山으로 된 것은 신령하다는 우리 말 검에서 비롯된 것으로, 검이 한자 錦으로 바뀌어 錦山, 錦城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예가 금강으로 웅진 즉 고마나루에서 고마가 검으로, 검이 금이 되어 錦江이 된 것이다.

현재 영산강의 나주 지역 강 이름이 조선시대 때 錦江으로 기록된 것을 보면 나주 즉 錦城은 진산인 錦城山이 있고 錦城江, 즉 錦江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영산강, 영산포는 모두 나주 땅이름에서 유래한 것, 영산도와 무관

그렇다면 영산강은 금강과 어찌 되는 것인가. 옛 기록을 보면 나주를 흐르는 영산강은 錦江, 榮江, 榮山江, 靈山江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 조상들은 무슨 까닭으로 같은 강을 두고 이리도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 서울의 한강 마포 쪽 사람들이 한강을 두고 3-4개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상식적인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같은 뜻을 다른 글자로 표기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錦江과 榮山江, 靈山江을 신령한 강을 뜻하는 다른 표기로 추정해보면 榮山과 靈山은 錦山,錦城의 다른 표기인 것이다. 그런데 靈山은 이해되는데 榮山은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옛 기록에는 두 영을 왜 같이 썼을까?

이것 역시 같은 뜻, 다른 글자인가? 찾아보니 둘은 같은 뜻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榮에도 빛의 뜻이, 靈에도 빛의 뜻이 있다. 빛은 밝은 것이니 榮山江, 靈山江은 錦江과 같은 뜻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영이란 한자를 둘 다 쓴 것이다. 그렇다. 영산강은 錦江, 榮江,榮山江, 靈山江으로 불려도 뜻은 검강, 신령한 강인 것이다.

그렇다면 榮山縣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영산강과 마찬가지로 나주에서 유래된 것으로 봐야 한다.

<고려사지리지 나주목편>에는 나주목의 여러 군과 현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 중 나주목에는 금성산과 남포진, 흑산도(영산현)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뜻은 흑산도가 나주목 직할지에 있다는 것이다. 압해현, 장산현은 나주 근처, 나주목 관할로 이전했으나 나주목 직할지가 아닌 현이어서 이름이 바뀌지 않았지만 흑산도는 나주목 직할지의 현이었기에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흑산도가 영산현으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흑산도 옆 영산도가 영산현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에 흑산도로 다시 사람들이 들어갈 때 榮山縣, 榮山倉의 기억을 가지고 가서 쓰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추정 역시 한자가 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상상에 그칠 뿐이다. 정조 때 발간된 해동여지도를 보면 흑산도는 大黑山島로 그 앞에 內永山島, 外永山島가 그려져 있다. 이것이 사료상 영산도에 관련된 첫 기록이다. 반면 현재의 영산도에는 섬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후 고종 때 발간된 지도에서야 현재의 영산도가 永山島로 나타난다. 흑산도 본섬이 영산도로 따로 표기된 적이 조선시대 지도 어디에도 없다. 숙종 조에 중종 때 없앤 榮山倉(조창)을 나주 영산강가에 복원하는데, 같은 숙종 때 흑산도에 수군진을 설치할 때 흑산진이라 했지(이 흑산도는 현재 우이도, 옛적 小黑山島이다) 영산진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중종 때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나주편>에 흑산도가 나온다. ‘흑산도는 물길로 9백여 리인데 주위가 35리 이다. 옛날에는 黑山縣이라 불렀는데 遺址가 아직도 있다.’ 위의 흑산도는 크기로 볼 때 현재 흑산도 본섬이고 유지 즉 관아 터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근거없는 영산도 유래설

위 두 추론을 다 무시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옛날에 흑산도 주민들이 나주로 이전해 올 때 영산도 주민들도 함께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흑산도 본섬 주민들보다 많았을까?

현재 영산도 주민 수는 50여명, 黑山群島 전체 인구 4천 5백여 명 중 절반인 2천 2백여 명이 흑산도 본섬에 산다. 인구수를 봐도 영산도가 黑山群島 전체를 대표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가! 옛 기록과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영산도 주민들이 나주에 와서 영산현이 되고, 영산강이 유래되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옛 문헌과 기록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흑산군도 주민들이 나주로 이주해 왔었고 나주와 흑산군도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누가 시초인지는 모르나 영산도 유래설은 지도를 보고 대책 없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게으른 글이다. 이런 주장이 이제 정설로 굳어지고 심지어 관공서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와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이런 것이 역사왜곡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다음 편에는 삭힌 홍어 기원설에 대한 사실과 진실을 탐색해 볼 것이다. 이번 글이 역사를 쓰다 보니 딱딱한 면이 많았지만 다음 글은 홍어 음식 자체에 대한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추신: 이 글이 영산도 마을 발전을 위해 애쓰고 계시는 최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분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산도가 신령한 섬으로서 아름답게 꽃피우기를 기원합니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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