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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 삭힌 홍어를 먹은 까닭은?
남도에서 삭힌 홍어를 먹은 까닭은?
  • 임효균 문화연구가
  • 승인 2013.11.07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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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경제력과 해양문화 개방성, 날 것에 대한 욕구…전라도를 상징하다가 전국에 확산, 통합의 음식 자리잡아

홍어 ②

세간에 알려져 있는 삭힌 홍어의 유래는 지난 호에서 설명한 영산도 유래설과 결부되어 있다. 즉 영산도에서 홍어를 배에 싣고 오다가 오래돼서 썩은 줄 알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먹을 만해서 먹게 된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카더라 통신’ 이상의 근거는 없지만, 당시의 상황과 조건상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삭힌 홍어는 우연히 발견됐을까?

또한 위 이야기에 덧붙여 나주 지방에서 삭힌 홍어를 먹는 것에 대해서, 남도의 따뜻한 겨울과 봄 날씨로 인하여 영산도, 흑산도에서 배로 오다 보면 홍어가 삭혀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까지 제법 설득력 있게 퍼져 있다.

이런 삭힌 홍어에 대한 유래설의 문제점은 음식문화의 생성을 외부적 조건 즉 기후와 우연한 발견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즉 인간의 능동성은 없이 무의지적이고 객관적인 조건만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질문을 던져보자. 독자 여러분은 삭힌 홍어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먹고 싶은 마음이 들던가요? 똑같은 질문을 낯선 음식인 썩은 홍어를 처음 마주한 옛날 나주 사람들에게 던져보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기후를 생각해 보면 예전의 영산강 유역 겨울날씨가 전라북도나 경상남도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실제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흑산도 어민들은 힘들게 잡은 홍어를 염장하거나 말리지 않고, 상할지도 모르는 생선을 날 것으로! 또 잘못하면 팔리지도 않을 홍어를, 게다가 얼마가 걸릴지도 모르는 험한 바닷길을 건넌다는 매우 특이하고 비경제적인 생각을 했을까?

또 상한 홍어를 나주 영산강 유역 사람들은 왜 버리지 않고 먹었을까? 아까워서인가, 먹을 것이 없어서였을까? 다른 지방에서는 왜 삭힌 홍어를 먹지 않고 말리거나 덜 삭힌 상태일 때 먹었을까?

음식문화란 자연의 산물이 주어지는 객관적 환경과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음식과 관계된 행동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왜 나주에서는 처음 본 낯선 음식인 썩은 홍어를 먹었을까? 이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전라도 음식문화의 특징

프랑스 요리가 세계 최고 요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프랑스의 풍부한 농토와 긴 바다, 산과 강 등 다채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나오는 산물을 우선 꼽는다. 하지만 그런 조건은 이태리나 스페인, 독일도 갖추고 있다. 핵심은 음식문화가 꽃피우려면 무엇보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돈 없이 다채롭고 맛있는 요리를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대의 궁중요리에서 음식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벌어지던 궁중파티 문화는 전 유럽의 사교문화와 귀족문화의 모델이 되었다.알다시피 지나친 향락의 끝은 파멸로 끝났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실업자가 된 왕실요리사들이 궁 밖으로 나와 전문식당을 차리면서 새로운 지배층인 부르주아를 고객으로 요리를 개발해 나간 것이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인 요리가 된 연유이다.

▲ 홍어의 본고장인 영산포 홍어의 거리. 제공=뉴시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까닭은 흔히 세간에서 이야기 하듯이 산, 들, 강,바다에서 나오는 풍요로운 자연산물이 많아서 된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바다의 조건만 빼놓고 어느 곳인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산과 강, 들이 없는 곳이 있는가?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전라도 음식이 맛에 관한 한 타 지역 음식보다 더 인정받게 되었을까?

그 차이는 세 가지에서 나온다. 첫째는 경제력, 둘째는 역사적, 정치적 조건, 셋째는 문화의 개방정도이다.

전라도는 조선시대 토지소유를 보면 대지주 중심 지역이나, 전라도는 정여립사건 이후 반역 향으로 낙인찍혀 벼슬길이 대부분 막혔다. 벼슬길 막힌 전라도 양반들은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전라도 풍류문화는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정여립 사건 전에도 전라도 양반들의 경제력과 풍류문화가 대단했음을 담양의 정자문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정여립 사건 이후 낙향한 대지주 양반들의 경제력이 바탕이 돼서 전라도의 화려한 음식과 판소리 등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음식은 오픈마인드 즉,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사고와 수용성이 있어야 나올 수 있다. 전라도는 기존 시스템에서는 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해양문화의 영향이다. 조선조 이전까지 백제의 해양문화에서 통일신라의 장보고, 고려의 남방해로를 통한 활발한 대외무역 등 전라도 지역은 타 지역과 교류가 활발한 해양문화권이었다. 즉 낯선 것에 대한 개방적인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지역인 것이다. 영산강 유역은 그것의 중심지였다. 여기서 전라북도와 차이가 난다. 전북은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큰 강이 없어서 전남에 비해서 해양문화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볼 수가 있다.

이런 배경과 토양 속에서 썩은 홍어 즉 삭힌 홍어가 나온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시도가 가능한 문화였기에 삭힌 홍어가 나온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한 것이다. 다른 데보다 기후가 따뜻해서나 별생각 없이 썩은 생선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닌 것이다.

홍어는 왜 잔치상에 꼭 있게 됐을까?

홍어가 전라도 잔치상에 꼭 있어야하는 필수 음식인 까닭은 바로 날 것이기 때문이다.

잔치음식을 한 번 살펴보자. 생선회는 최근 이삼십 년 전부터야 육지에서도 먹을 수 있었지, 그전에는 바닷가에나 가야 먹을 수 있었다. 예전 잔치상에 날 것으로 무엇이 있었을까?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가오리회 아니면 홍어회일 것이다. 생선류는 모두가 염장하거나 말린 것이었다. 돈이 있는 부잣집에서는 쇠고기 육회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양은 얼마 안 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날 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홍어이다. 다른 생선은 날 것 상태에서 쉽게 썩지만 상당시간을 썩는 것이 아닌 발효되면서, 장기간 유통과 보관이 가능한 생선, 그것은 홍어만이 가능하다. 흥겨운 잔치에서 평소 먹을 수 없는 날 것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음식. 그래서 홍어가 전라도 잔치상에 빠지면 큰 일 나는 음식이 된 것이다.

홍어가 전라도를 상징하게 된 이유

삭힌 홍어는 영산강권 음식문화이다.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엔 영산포로, 근래에는 광주로 와서 주변 지역으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삭혀지고, 사람들은 시장에서 홍어를 통째로 사가서 집에서 두엄자리나 부뚜막 등에서 각각의 집마다 나름의 비법으로 삭혀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홍어의 삭혀지는 시간과 거리가 삭힌 홍어의 문화권이다. 그 지역이 영산강을 중심으로 하는 전남 서부권이다. 전남 동부권은 삭힌 홍어보다는 가오리를 즐겨먹는 가오리권 문화이고, 전북은 대부분 지역이 덜 삭힌 홍어를 먹는 문화권이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 내에서도 이렇듯 홍어에 대한 음식문화가 달랐던 것이 그 사이에 어찌 변했기에 전라도 전체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가 음식에 깊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도 경우 없는 자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며 홍어니 뭐니 하고 있다. 민주화가 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 전라도 사람들은 하와이니, 개땅쇠니 하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지역감정의 뿌리와 그 부당함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겠다.

거의 대부분 농민이었던 전라도 사람들이 소위 경제개발 시대에 더 이상 농사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 고향을 떠나 몸뚱이 하나 가지고 서울이나 타지에 갔을 때 외로움과 차별로 인한 서러움을 무엇으로 달랬을까? 고향음식을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였을 것이다. 특히나 타 지방 사람들은 먹기 힘든 우리만의 음식,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는 음식. 세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혀 천장이 홀라당 벗겨질 정도의 강렬함을 넘어선 독함으로 해소할 수 있는 음식. 그렇게 홍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전라도 출신들의 힐링푸드가 된 것이다.

이렇듯 삭힌 홍어의 전설은 전라도가 아닌 서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또 전라도 지역의 서로 다른 홍어음식 문화를 통합시키고 상징하게 된 역사이기도 하다. 이제 홍어는 전라도 사람만의 음식이 아니다. 그 징한 맛의 매력은 지역을 넘어섰다.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서울로 와서 정착되고 다시 확산되어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즐겨먹게 된 홍어. 그 음식 역사에서 우리는 이제 분열이 아닌 통합을 볼 수 있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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