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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사회적 책임” 인식 필요
“산재는 사회적 책임” 인식 필요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연세대 의대교수
  • 승인 2014.04.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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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특집 1> 드러나지 않는 산재가 더 큰 문제…경제적 손실 년 18조1,269억원…근로손실일수 5,477만일로 노사분규 120배

인간의 노동과 산업재해는 인류가 도구를 이용하여 생산활동을 시작한 때부터 있었다. 이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공동생산과 공동 분배의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노동 중에 다친 사람 역시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최초의 산업재해는 개인적 일이 아니고, 공동체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는 계급 사회여서 생산은 주로 노예 노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노예는 ‘소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하다가 다친 노예는 주인의 처분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되었다. 주인은 노예를 치료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는 전적으로 주인의 결정이었으며, 이를 다른 누구도 관여할 수 없었다. 평민이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따라서 이 시절 산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산업혁명 시기 산업재해

그러나 산업혁명은 산업재해에 대해 사회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 지고, 분업을 통해서 숙련공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농촌인구의 대부분이 도시로 몰려들어 공장에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도시의 생활환경 뿐아니라 작업 환경이 열악했으며, 수많은 산재 희생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의 산업재해는 사업주와 노동자의 계약 관계에 따라 사업주의 책임이었다. 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은 법을 통해서 사업주의 과실을 밝혀야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법만으로는 노동자들을 지켜줄 수 없었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산업재해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는 국가로서도 해결하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업주의 사회적 책임을 묻게 되었다. 영국에서 공장주책임법이 제정되었으며, 독일에서는 책임배상법에 이어 산재보험이 도입되었다. 산재보험의 도입은 산업재해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산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확대되면서 선진국에서 산업재해가 줄어들게 되었다.

우리 사회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산업재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 방화대교 붕괴사고의 공통점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안전 불감증, 인재, 사고 공화국, 이런 생각이 대부분일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그렇게 보도하고, 불산 사고 같은 경우는 주민들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고, 노량진 배수지 사고나 방화대교 사고 같은 경우는 책임자와 감독 소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 사고들의 공통점은 산업재해라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산업재해 근로자와 그에 대한 보상 문제를 먼저 생각할 수도 있고, 사고 예방을 생각할 수도 있고, 산업 재해율이 매우 높은 산재공화국을 생각하는 이도 있다. 산업재해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수도 있고, 더러는 산재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산업재해가 사회문제가 아니라 근로자와 사업주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이 산업재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않을 때,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2011년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8조1,269억원이다. 이 돈은 얼마나 큰 돈일까? 2011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 309조원의 5.87%이며, GDP 1,238조원의 1.46%이고, 보건•복지•노동 예산 86.4조원의 21%이다. 2011년 삼성전자의 총매출액은 120조원이고, 순이익은 10조원이었다. 산재손실액은 삼성전자라는 거대기업이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순이익의 181%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2011년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5,477만일로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수 43만일의 128배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들이 2일을 쉴 수 있는 날짜와 같다. 논란이 되었던 대체 휴일을 모든 공휴일에 적용할 경우 늘어나는 휴일 수가 겨우 1.9일인데, 비해 산재로 인한 휴일이 더 많다. 즉,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을 없애면 직업을 가진 모든 국민이 2일의 유급휴가를 가질 수 있다.

산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 현실

이와 같이 산업재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이처럼 들어난 산업재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2011년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율은 0.65%인데, 독일은 2010년 산업재해율이 2.5%로 우리나라의 3.8배 높고, 미국의 산업재해율 1.1%로 우리나라보다 1.7배 높다. 물론 통계 방식이 달라서 다소간에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독일이나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작업환경이 나빠서 산업재해가 더 많을까?

반면에 산재로 인한 사망률은 1만명 당 0.96명인데 비해 독일은 2010년 1만명당 사망률이 0.14로 우리나라가 6.9배 높다. 미국의 경우도 2012년 1만명당 사망률이 0.32%로 우리나라가 2배 높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나라에는 숨겨진 산업재해가 많다는 결론이다.

결론적으로 산업재해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경제적인 면만 보더라도 산업재해를 간과할 수는 없다. 산업재해를 내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온 국민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때이다.

산재보험 급여 인정기준 장벽이 높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산업재해를 보는 시각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독일과 미국의 산재 통계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 2010년 독일의 산재보험 적용 인구는 3,180만명이었으며, 이중 3일 이상 휴업을 했던 재해는 95만4천 건이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산재보험 가입 근로자가 1천4백만명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2012년 캘리포니아 주의 산재보험 청구건수는 총 53만5천 건이었다.

반면에 2011년 우리나라 산재 재해자는 총 93,292명으로 인구수를 고려해 보아도 독일이나 미국에 크게 못 미친다. 이 숫자는 산재 은폐의 결과로 보기에는 너무 차이가 크다. 그럼 뭘까?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나라 산재보험에서 급여 인정기준이 너무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재보험 적용 인구가 비슷한 미국의 근골격계 질환자는 22만명인데, 우리나라는 불과 4,885명에 불과하다. 미국의 작업환경이 우리나라보다 나빠서 근골격계 질환 환자가 많은 것일까? 물론 미국은 모든 근골격계 질환 근로자가 포함된 것이고, 우리나라는 4일 이상 요양을 요하는 근로자들만이 포함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업무상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정받기 위한 문이 너무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근골격계질환 인정 기준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산업재해를 사회적 문제로 볼 것인지, 재해 근로자들만의 문제로 볼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모든 국민들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모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외치고 있다. 실제로 수 년전에 비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많이 강화되었다. 건강보험의 문제는 국민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산재보험은 어떤가?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노동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산재보험의 인정 기준을 확대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사업체의 부담이 너무 증가한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물론 설득력 있고, 타당한 주장이다.

산재보험의 보험금을 사업주가 100% 부담하기 때문에, 산재보험료가 너무 높아지면, 사업체의 경쟁력이 낮아져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업주가 부담하는 보험료는 사실 모든 생산품에 비용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부담하는 것과 같다. 산재보험금은 제한되어 있고, 산재로 급여를 받는 재해 근로자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해 보상 비용으로 지급되는 돈을 아까와 하기도 한다. 마치 자기 돈을 허투루 쓰는 것처럼. 보상을 늘리면 금방 재원이 바닥나고, 국민 부담이 늘어날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적절한 선에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이런 문제로 전문가들은 산재보험의 급여 수준이나 인정 기준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산재 인정기준의 사회적 합의 필요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먼저 앞서 언급한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대부분 질병을 치료해야 하는 객관적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근골격계 질환은 한마디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골병든 것으로, 근육과 관절, 인대에 발생한 통증이 주로 문제이다. 물론 아주 심해지면 수술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전에 요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치료해 줄 것인가? 아래 그림에서 빨간색과 흰색을 구분하는 선은 어느 것이라 생각하는가?(2월호 참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나 ‘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근골격계 질환의 통증이고, 치료를 시작해야 할 점으로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나라의 기준은 ‘바’ 정도에 위치할 것이고, 우리는 이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다’나 ‘라’ 정도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 2012년 1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천화재참사 산재사망자 추도 및 건설현장 산재근절 대책 마련을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산업재해사망노동자들에게 헌화를 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삼성전자 근로자에게서 발생한 백혈병이 사회적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문제가 삼성전자가 백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할 것인지 하는 매우 사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삼성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업성 암을 어떻게 보고, 어떤 기준을 갖고 직업병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해 봐야 한다.

암은 발생에 관여하는 인자가 많아서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직업을 통한 유해 인자에 노출되는 것도 암 발생의 한 가지 원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원인을 알았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이 노출되어야 암이 발생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담배를 피워야 폐암이 되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발암 물질에 노출되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되었을 때 직업병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 된다.

산업안전과 감독과 단속의 상관관계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산업안전에 대한 감독과 단속의 문제이다. 산업안전을 위해서 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면 산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설의 PQ이다. PQ 제도는 공공 건설을 수주하기 위한 자격심사 제도인데, 여기에 산업재해와 관련된 항목이 포함되어 있어서 재해가 많이 발생한 건설업자는 PQ 점수에서 감점을 받아 수주에 제한을 받는다.

이 문제 때문에 건설업에서 산재 은폐가 가장 흔하게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체감하는 재해율은 건설업이 훨씬 높은데도, 공식적인 재해율은 제조업보다도 낮다. 결국 감독과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산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산업재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야 산업재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 뿐 아니라 산업안전과 산업재해의 당사자인 근로자들도 산업안전의 중요성을 간과하기도 한다. 산업안전 문제는 임금이나 복지 문제와 바꿀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산업안전이나 보건 문제를 임금이나 복지 문제와 교환하기도 한다. 산업안전은 개인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근로자 한사람 한사람의 문제일뿐 아니라 모두의 문제이다. 이것은 결코 타협할 수도 없고, 타협해서도 안되는 문제이다.

산업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면 산재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필자는 우리나라 교통 사고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자동차 1만대 당 사망자수는 2000년 7.4명에서 2012년 2.4명으로 67.6% 감소하였다. 물론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만큼 감소한데는 사회적 노력의 힘이 크다. 1988년에 교통사고 전광판을 설치해서 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였고, 각종 방송과 매체들을 통한 캠페인과 단속 강화 등이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산업재해는 어떤가? 2000년 근로자 1만명 당 산재사고 사망률은 1.49명이었는데, 2011년에는 0.96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감소율은 35.6%로 교통사고 사망률 감소의 절반에 불과했다. 교통사고와 산업재해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필자는 이런 차이가 사회적 관심과 인식의 차이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 산업안전에 대한 TV 광고와 캠페인 등을 통한 노력이 눈에 띠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 관심과 국민의 인식을 높이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그래도 산업안전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140개 중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 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11월 8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140개에 대한 신호등 평가에 따르면 산업안전은 녹색 신호등으로 분류되어, 계획대로 잘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이 신호등은 믿어도 되나? 올해만 해도 지난 7월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 방화대교 붕괴 사고,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 현대제철 화재 사고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산업재해들이 줄을 이었는데도 산업안전은 녹색 신호등이다. 이는 아직도 국민들이 산업재해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국민의 관심과 인식이 높을 때 정부도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고용노동부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모든 국무위원들과 국회위원들이 최우선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산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압축 성장을 했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최빈국에서 GDP 순위 15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성장을 이끌어 온 것은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근로자들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매년 2천명이 넘는 근로자가 사망하고, 4만명에 가까운 근로자는 장애가 남아 불구로 살아가고 있다. 산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고, 사회경제의 문제이다. 산재는 산재 근로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국민적인 문화와 의식수준의 척도이다.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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