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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로 몸살이 났는데 산재 아닌가요?
과로로 몸살이 났는데 산재 아닌가요?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연세대 의대 교수
  • 승인 2014.08.21 1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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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감염의 직업적 인과관계 분명치 않으면 업무상 질병 어려워

33세 김순진씨는 의류 생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의류업체의 특성상 계절의 영향이 커서 때만 되면 일감이 몰려서 가끔 몇일 밤을 새서 일하곤 한다. 최근에 5일간 잠을 4~5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하면서 연속으로 근무하고 나서 몸살이 크게 났다. 3일은 너무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했고, 그 후 일주일은 아픈데도 억지로 출근해서 간신히 일을 했다. 사정만 허락하면 일주일을 더 쉬었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하다 과로로 몸살이 났는데 산재가 아니냐고 하시면서 더 쉬라고 하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산재가 맞을 것 같았다. 3일간 쉰 것은 병가로 처리했는데, 병가는 자기의 연차를 쓰는 것이어서 손해 본 느낌이다.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말하니 이런 경우 산재가 맞기는 하는 것 같은데, 산재로 보상 받지는 못할거라고 했다. 일하다가 과로로 생긴 몸살은 산재일까? 아닐까?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 질병은 업무상 사유에 의해 발생한 질병을 말한다. 업무상 사유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시 업무상 질병 인정원칙을 정하여 놓았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업무 수행 중에 질병을 유발할 만한 유해 인자에 노출되어야 하고, 그 노출된 유해인자의 양이 질병을 일으킬 만큼 충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출된 유해인자와 질병 사이에 의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무슨 병이던지 이 세 가지 원칙이 모두 충족되어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고 보상 받을 수 있다.

몸살은 업무상 질병인가?

이제 김순진씨의 몸살을 이 원칙에 따라 생각해 보자. 먼저 순진씨 몸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유해인자는 무엇인가? 순진씨는 이것을 과로라고 생각했다. 유해인자는 일단 과로라고 하자. 그럼 다음에는 5일간 잠을 4~5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일한 과로는 몸살에 걸리기에 충분한가? 이정도 과로라면 몸살에 걸리는 것이 타당한가? 이것이 첫번째 의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과로해야 몸살에 걸리는가?

마지막으로 몸살과 과로 사이에 의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되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몸살이란 병이 어떤 병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우리가 보통 몸살이라고 하는 병은 감기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다. 그래서 일단 순진씨의 몸살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질병이라고 하자. 그럼 문제는 다시 과로와 바이러스 감염 사이에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는지의 문제로 귀착된다.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일하는 중에 바이러스나 세균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경우에 한한다. 즉, 의사나 간호사와 같이 감염된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되는 경우와 바이러스나 세균을 갖고 각종 실험을 하는 경우, 동물이나 가축을 기르거나 다루는 직업에서 동물이나 가축에 의해 전염되는 경우 등이 이에 속한다.

흔히 과로가 쌓이면 면역기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나 세균에 쉽게 감염되니까 과로와 감염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이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직업병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또 몸살을 업무상 질병으로 신청한 경우가 없어서 정말 심각하게 검토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는 원칙은 질병이 고용과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며, 고용의 특별하거나 고유한 특성을 갖고 하는 일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도 과로가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어떤 고유한 특성이나 특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미국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순진씨와 같은 과로가 특별한 일이겠고, 그렇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또 하나 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법에는 4일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것만 산재보상을 한다. 순진씨와 같이 3일 동안 쉬면서 치료 받은 것은 산재보상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4일을 쉬었다고 해도 앞서 말한 이유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 받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순진씨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이 말이 순진씨의 몸살이 과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의 기준으로 엄격히 따지면 이것이 직업병이 될 지 안될 지는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몸살은 과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유급 병가와 유급 휴가의 큰 차이

외국에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할까?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유급 병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급 병가는 직업병이나 산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종업원이 병에 걸려서 출근할 수 없는 경우 유급 휴가를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대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유급 병가를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와 외국과의 차이는 법으로 인정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병가를 유급으로 인정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병가를 신청할 경우 근로자 자신의 유급휴가를 먼저 사용하도록 한다. 유급 휴가 범위 내에서 병가가 끝나면 병가를 신청한 근로자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유급휴가가 없어지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자신의 유급휴가를 먼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병가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병가 기간이 끝나도 자신의 휴가는 남아 있다는 차이가 있다.

미국이나 독일 등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직업병 인정 범위는 매우 좁다. 이들 국가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것들도 우리나라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유급병가 제도가 없어서 순진씨와 같은 사람들의 애매한 질병 또는 사소한 개인적 질병이 있는 경우도 충분히 치료 받지 못하고 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도 생산성 저하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근로자들의 건강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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