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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변신은 무죄인가
지식인의 변신은 무죄인가
  • 최광웅 데이터 정치평론가, 前청와대 인사비서관
  • 승인 2014.09.1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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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어도 주요 자리 꿰차는 일부 지식인의 변신을 어떻게 봐야하나

추석 연휴가 끝난 11일 오전 당 회의에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정치와 정당개혁의 학문적 이론을 갖추고 현실정치에도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분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보도가 잇달았고 곧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임이 밝혀졌다. 하루 만에 소속의원 54명이 연판장을 돌려 반대에 나섰고 결국 없던 일이 돼버렸다. 리더십에 타격을 받은 박영선도 문제지만 손쉽게 비대위원장직 수락을 결정한 이상돈 또한 머쓱해진 건 마찬가지다.

이상돈은 유석춘 연세대 교수, 전원책 변호사와 함께 대표적인 우파 논객 3인방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DJ의 햇볕정책을 대북 퍼주기로 강하게 비난했고, 2007년 무소속 이회창 캠프 정무특보를 거쳐 2008년 자유선진당 창당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한나라당의 좌파에 대한 전투력 부족을 힐난했던 인물이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지 못하자 결국 전원책과 함께 탈당을 선택한 감투욕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의 정치쇄신특위 위원으로 변신해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랬던 그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자 또 작년 말 이후 쓴 소리를 내 뱉기 시작했고, 드디어 야당으로부터 콜을 받기에 이르렀다. 경기 중․고, 서울대 법대 출신에 오랫동안 중앙대 법대 교수를 역임한 보수를 대표하는 지식인인 그의 변신 시도를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靈魂이 없는 그대의 이름은 고위공무원인가요?

2008년 1월 초,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당시 국정홍보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해당 분과 전문위원이 “노무현 정부의 취재 선진화 방안이 언론과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일으켰다”며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담당자가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답변하자 보고를 받던 인수위원들은 아연 실색을 하고 말았다. 당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이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된다. 기능은 조정이야 되겠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대안을 만들어서 같이 해보자는 건데 대한민국 공무원이 그런 식으로 얘기해서 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영혼이 없는 공무원’은 특정한 정부에만 있었던 일도 아니며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정권교체기에 고위공무원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하에서 관료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하는 말로 흔히 인용되는,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일찍이 언급한 바가 있다. 베버는 관료제가 개인감정을 갖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상하관계라는 합리적인 권위구조와 비인격적인 규칙과 절차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즉, 베버는 관료란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을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숙명이라며 관료의 특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였다.

대표적인 관료 두 사례만 살펴보기로 한다. 진보에서 보수로 親李에서 親朴까지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4대째 정부를 거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정홍원 국무총리. 경남 하동 출신으로 36년 공직인생의 대부분을 검사의 길을 걸었다. 김대중 정부 검사장, 노무현 정부 고등검사장과 장관급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이명박 정부 공공기관장, 박근혜 정부 초대국무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그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표상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PK인맥을 동원하여 강금실 법무장관의 검찰개혁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19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의해 발탁되어 공천위원장을 맡더니 꿈꾸던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보다 더 윗자리인 국무총리에 직행했다.

경제 관료로 35년째 상승 곡선만 그려온 한덕수 무역협회 회장. 그는 전북 전주 출신이지만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전학 와서 고향을 숨겼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직후에야 커밍아웃을 하고 승승장구의 길로 들어선다. 통상교섭본부장, 주OECD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등 알짜배기 직위만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는 경기고 동기동창이 청와대 인사라인에 포진하자 산업연구원장, 국무조정실장에 올랐고, 이후 재경부총리와 국무총리까지 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랬던 그가 2009년 2월 이명박 정부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돼 3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으며, 귀국하자마자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선출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역협회 회장은 경제5단체장의 하나로 정부가 바뀌면 교체가 관례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반을 경과한 지금도 그는 청와대 회의에 수시로 불려 다닌다.

4계절 지식인의 변신은 무죄인가

한편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 강단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긴 많은 교수들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한번 움켜진 권력을 놓지 못하고 타락의 길로 달려갔다. 적지 않은 그들이지만 주요 인물들만 간추려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前인 지난 5일, KBS 이사회는 야당추천 이사들의 보이콧 속에서 기어이 이인호 이사장 선출을 강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이사에 임명한지 이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이사로 추천한 지 나흘 만에 이루어진 초스피드 인사다.

이인호 신임 KBS 이사장은 젊은 시절 서울대에서 러시아史를 가르친 나름 합리적인 역사학자였다. 96년 김영삼 대통령이 핀란드 대사를 제안하여 국내 1호 여성대사가 되었다. 98년 국민의정부로 정권교체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권부 핵심에 있는 서울대 인맥에 접근하여 4강대사인 러시아대사로 영전했다. 귀국 후에는 외교부 산하 핵심 공공기관인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직을 잘 마치고 모교 명예교수로 복귀한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조부 이명세의 악질적인 친일행위가 드러나 대통령 직속기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그의 입장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포럼’ 인사들을 주축으로 2011년 설립된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을 맡아 박효종 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과 함께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발간을 주도해 온 것이 그것이다. 김영삼-김대중-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만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자리를 탐하는 이인호 이사장. 젊은 시절 이인호 교수는 온데 간 데가 없다.

99년 6월 환경부장관에 임명돼 국민의정부 최장수 장관이었으며, 바로 이어서 17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역임한 김명자 前숙명여대 화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의 핵심 키워드인 ‘녹색성장’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그린코리아21포럼’라는 조직을 손수 만들어 이사장에 취임하고, MB맨들이 즐비한 ‘저탄소녹색성장 국민포럼’에도 공동의장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2012년 초 기어이 한국여성과총 회장에 올랐고 금년 1월에는 만 70세의 나이에 또 다시 미래부 산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이사장 자리를 꿰찼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진정한 4계절 지식인의 결정판이다.

국민의정부 시절 지방행정연구원장, 국무총리실 정책평가위원 등을 역임한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은 대통령이 바뀌었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버드대 동문인 경희대 송하중 행정대학원장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50여개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평가업무를 담당하며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국무총리실 정책평가위원을 계속 할 수가 있었고, 공공기술연구회 이사, 중앙공무원교육원 겸임교수, 한국행정학회 회장 등을 마음껏 누렸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이명박 정부 탄생에 줄을 놓아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참여했고, 18대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거쳐 마침내 행정안전부 장관을 차지한다. 5대 지방선거에 고향인 경남지사에 차출되어 낙선하지만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이장무 前서울대 총장. 그는 국민의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초대 자문위원을 시작으로 교육정책심의회 대학교육분과 위원장, 국립과학관 추진위원장 등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여러 위원회에 이름을 걸쳤다.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인 산업기술평가원 이사장도 맡아 참여정부 때까지 재직하는 식욕을 과시했다. 2006년에는 국립 서울대 직선총장에 1위로 선출됐으나 친일사학자 조부 이병도의 행적이 문제가 되어 인사검증에서 두 달간 미뤄졌다가 간신히 국무회의 의결을 받은 바 있다. 4년 임기를 마치자마자 이명박 정부 때부터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11월에는 KAIST 이사장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쉴 틈 없는 그의 변신은 조부의 DNA를 쏙 빼닮은 것일까?

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영삼 정부시절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대표적인 개혁 성향의 교육학자였다. 이를 눈여겨 본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대통령 취임사 기초위원을 맡겼고, 2000년 1월 교육부장관으로 불렀다. 그러나 5.18 전날 광주에 갔다가 룸살롱 술자리 파문에 휩싸여 결국 한나라당의 퇴진 공세에 시달리다 불명예 낙마하고 만다. 초대 교육부총리까지 물망에 올랐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랬던 그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는 180도 변신, 박근혜의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된다. 이어서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서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보수진영 단일후보로 나서서 당당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는 출마 이유로 어처구니없게도 “전교조 운동이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국가관이 흔들린 것 같다.”라고 주장하였다. 문용린 같은 보수가 놀랍게도 진보진영 집권 청사진 작업에 참여한 것은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 최대 인사실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김태유 서울대 기술경제정책대학원 교수. 그는 서울 경복고 선배인 문희상 비서실장 추천으로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 발탁됐다. 과학기술중심사회를 표방한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인재 풀이 적었기에 자원경제학회를 이끌고 기술혁신 등을 연구해온 김태유 박사는 좋은 재목이었다. 1년간의 청와대 근무를 마친 이후에도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정책산업분과위원장, 대통령직속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 등 참여정부는 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9대 총선 때 그는 뻔뻔하게도(?) 새누리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다. 물론 보기 좋게 탈락은 했지만 결국 노무현 정부 최대의 인사실패 본보기가 된 셈이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상천 박사는 2000년 영남대 직선 총장에 선출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1년 단 9명만이 위촉되는 장관급 민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다. 2003년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여세를 몰아 2005년 산업자원부 창원국가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추진단장에 임명돼 3년 임기를 잘 채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고소영’을 우대하는 인사에 편승, 고향(경북 안동)과 학맥(영남대 총장)을 동원하여 한국기계연구원장을 꿰찬다. 그러나 소속 직원들이 지식경제부 공무원들에게 룸살롱 접대를 했던 사실이 총리실 감사로 적발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다시 또 TK 정권 본류인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 7월 미래부 산하 25개 출연 연구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그의 집요한 권력욕은 어디까지일까? 아직 그의 나이 만 62세에 불과하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다. 경기고-서울대-스탠퍼드 물리학 박사에 서울대 입학 수석, 졸업도 수석이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시절 5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전문위원을 지냈지만 그리 권력 지향적이지는 않았다. 그랬던 그가 서울대 자연대 학장을 맡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8기~9기 자문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초과학연구진흥협의회 위원, 과학기술부 BK21사업기획단 기획위원장, 인문사회연구회 국정과제연구위원회 위원, 한국과학재단 이사 등 감투란 감투는 있는 대로 다 걸쳤다. 또한 과학기술부장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 주요 정무직 인사 때면 항상 배수 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야인 이명박과 골프를 치는 관계를 유지하며 야심을 키운다. 꿈이 모교 총장인지라 2010년 제25대 직선총장 선거에 나섰다가 오연천 교수에게 고배를 마시고 이듬해 1월 대통령 임명직인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기 5년짜리 막강한 초대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직위가 새로 생기자 10개월 만에 사직하고 또 다시 이를 차지한다. 그러나 금년 초 법인화된 서울대 총장 간선에 도전하기 위해 임기 3년을 남기고 두 번째로 사임했고, 결과는 낙선이었다.

이준승 이화여대 교수는 낮에는 참여정부 자문위원, 밤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참모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이중처세로 훗날 이명박 정부 과학기술계 최고 실세로 활약했다. 그는 연세대 동문과 같은 생물학 전공인 순천대 박기영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를 거쳐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 발탁되자 찰싹 달라붙었다. 참여정부 제8~9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연임하면서 이명박 시장에게도 줄을 댔다. 서울시 산학연협의회 회장을 맡았고, 임기를 마친 이명박의 과학비지니스 신도시 구상을 위한 일본 방문을 수행했다. 이명박 대선 싱크탱크인 ‘바른정책연구원’ 맴버로 참여한 그는 2008년 8월 과학기술평가원 원장에 취임했으며, 3년 뒤에는 최초의 연임 원장이 되었다. 이명박 후보와 캠프 회의 시 여러 차례 TV 화면에 잡힐 만큼 그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오죽하면 과학기술자문위원을 함께 했던 오세정 교수조차 어떻게든 그에게 아부하려고 애쓸 정도였으니.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진보에서 보수로, 親李에서 親朴으로 정권과 정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권력욕과 감투 욕심에 청와대 언저리를 헤매는 지식인을 필자는 ‘사계절 지식인’이라고 명명해 보았다. 사계절은 ‘사계절 사나이’라는 토머스 모어의 삶을 다룬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상아탑을 지키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후학들에게 본보기가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붙여진 ‘지식인’이란 멍에는 이제는 덜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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