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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를 부르는 사회
과로를 부르는 사회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연세대 의대 교수
  • 승인 2014.10.1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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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과로 산재보상 기준 주당 평균 60시간…산재 보상 받으려면 추가 근로 사실 동료 증언과 회사 확인 필요

올해로 52세가 된 김근면씨는 조그만 전자부품 조립 회사의 작업반장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일 저일을 하다가 10년전부터 이 회사에서 일을 했다. 요즘 일이 없다고 난리지만 다행히 이 회사는 휴대폰 부품 중 하나를 조립해서 납품하기 때문에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보통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까지 일한다.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은 각각 30분이라서 11시간 근무가 기본이다. 김씨는 작업반장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나이가 많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남들보다 30분 먼저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한다. 토요일은 대개 오전에 4시간 근무하고, 일요일은 쉰다.

김씨는 2년전부터 건강진단에서 혈압이 조금 높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병원에서는 아직 혈압약을 먹을 때는 아니라고 했다. 담배는 10년 전에 끊었고, 술은 작업이 9시에 끝나기 때문에 자주 먹을 수는 없지만 동료들끼리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마신다.

김씨에게 심근경색증이 발생하던 날은 납품일이어서 물건을 확인하여 포장하고, 급히 상차를 돕던 중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심해져서 조금 쉬었는데도, 가슴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심근경색증이 의심된다고 하며,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대학병원에서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고, 가슴에 스텐트라는 것을 넣는 시술을 받았다. 다행이 늦지는 않았는지 시술을 받고 7주일 만에 퇴원하고 지금은 2달째 통원치료 중이다.

김씨는 자신이 10년 동안 과로로 인해서 조금씩 몸이 망가지면서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김씨가 산재보상 신청을 했더니 과로 기준에 미달한다고 하면서 산재 보상이 거부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일을 해야 과로라는 것인가?

김근면씨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성실한 가장이자 근로자이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일한다. 이런 김씨가 과로 기준에 미달해서 산재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과로 기준이 무엇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자.

먼저 우리나라에 ‘과로사’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90년 11월 24일자 경향신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10개월 동안 103일을 해외에 출장가야 했던 일본 미쓰이 물산의 이시이씨가 급성심부전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일본 내에서 이것이 과로사인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는 것을 보도하였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 과로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하였다. 대법원은 1991년에 ‘거래처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로 과로사한 경우도 업무상재해에 해당 된다’고 판결하여 과로사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였다.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지만 과로사로 생각되는 많은 근로자들이 산재로 보상받지 못하고, 법원에서 소송 끝에 보상받는 일이 많이 발생하였다. 1992년 후 산재보험에서 인정하지 않은 825건의 과로사가 법원에서 인정되었고, 1995년까지 산재 행정소송에서 정부의 패소율이 68%에 달하였다. 이런 문제들이 지적되면서 1995년 5월 1일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규칙에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뇌혈관질환 또는 심장질환’이 추가되어 산재보험에서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인정 기준 가운데,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고, ‘업무상 만성적으로 육체적·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는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해서 산재보상을 해 주었다. 이때부터 과로가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의 인정기준에 포함되었고, 업무상 과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과로 기준을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전 3일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이상 증가된 경우’로 정의하였다. 물론 ‘1주일이내에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작업환경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도 만성 과로로 인정하였지만 이는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막연한 기준 때문에 실제 적용되기 어려웠다.

‘일상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라는 개념은 2013년 개정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김씨와 같이 매일 11시간씩 일하는 근로자는 3.3시간 이상 더 일을 해야 과로로 인정되는 반면 매일 8시간씩 일하던 근로자는 2.4시간 즉 10.4시간만 일을 해도 과로 기준에 해당한다. 더욱이 매일 12시간씩 2교대로 일하는 근로자들은 과로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하고도 과로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뇌심혈관질환 인정기준이 개정된 것이 과로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과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자들은 3개월간 주당 평균 5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을 만성과로로 이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은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들에게 심근경색증이 2배이상 발생한다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연구를 근거로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2013년 고용노동부 고시에서 만성과로는 ‘3개월간 주당 평균 60시간’ 근무로 정의하였다. 물론 이 고시는 주당 평균 60시간이 초과하지 않더라도 업무시간이 증가할수록 뇌심혈관질환과의 관련성이 증가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산재보상 실무에서는 주당 평균 60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김씨의 경우 매일 11시간씩 5일과 토요일은 4시간 일을 하기 때문에 1주일 근무시간은 59시간이 된다. 물론 김씨가 남들보다 30분 먼저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지만 이 회사는 출퇴근 카드가 없어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산재 보상 받으려면 추가 근로 사실 동료 증언과 회사 확인 필요

김근면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씨가 산재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1시간 더 일했다는 것을 동료 근로자들의 증언과 회사가 확인해 주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그러면 김씨의 근로시간은 현행 만성과로 기준인 주당 평균 60시간을 초과해 만성 과로가 인정되기 때문에 당연히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쉽지는 않겠지만, 김씨의 근무시간이 주당 59시간으로 조금 짧기는 하지만 업무량이나 부담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고, 컸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다.

김씨의 문제를 떠나서 주당 60시간이 과로 기준으로 적당한지 생각해 보자.

2011년 우리나라의 근로자의 년간 평균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세계에서 멕시코(2,250 시간) 다음으로 길다. 미국(1,787시간)보다는 303시간 더 길고, 독일(1,406 시간) 보다는 무려 684시간이 길다.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무려 85일을 더 일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며, 근로자가 동의하면 주당 52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주말과 휴일 근무가 주당 근무시간 산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주당 60시간 근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주일 60시간은 5일간 매일 12시간씩 일하던지, 하루 10시간씩 6일을 일해야 하는 시간이다. 물론 일부 직종에서는 근무시간 중에 적절한 여가를 가질 수 있거나 업무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생산직이거나 서비스직 근로자들의 경우 근무시간은 말 그대로 근무시간이고,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식자층’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한국 사람 중에서 이만큼 일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고 한다. 맞다. 그런데 내가 이 만큼 일하니까 다른 사람이 이 만큼 일하는 것이 과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그 만큼 일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그 만큼 일하는 것도 과로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미덕으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만큼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삶의 가치를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들의 근로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고, 삶의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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