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1-28 19:44 (토)
피케티 논쟁 이제 시작 단계
피케티 논쟁 이제 시작 단계
  • 윤종인 본지 편집기획위원/백석대 교수
  • 승인 2015.01.08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케티 논쟁①-피케티 읽기> 피케티, 소득불균형 문제 선명하게 제기하는데 성공했지만 논쟁점도 많아

<피케티 논쟁①-피케티 읽기>

이른바 ‘피케티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을 두고 세계적으로 논쟁이 커지고 있다.

2011년에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부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시작이었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개인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면서 불평등 심화에 대한 저항의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피케티의 책이 출간되었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다. 막연히 불평등 심화를 느끼고 있는데 구체적인 통계분석 결과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높아 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장기 통계분석을 통해 상위 10%가 순자산의 70%를 소유하고, 상위 1%가 30~40%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가장 많은 문제제기는 피케티의 실증자료에 오류가 있으며, 이론이 정립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직관적 분석이라고 비판한다. 또 자본수익률이 언제나 경제성장률을 앞선다는 주장은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들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피케티 주장을 한국에 적용한 결과를 두고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특집은 피케티 주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다. 특히 피케티비율을 한국에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다루었다. - 편집자 주

본 특집호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불러일으킨 논쟁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 논쟁은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열기는 매우 뜨거운데, 아마도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퍼졌던 우파적 개혁과 그 정점으로 간주되곤 하는 2007년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비판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상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피케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일본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2배나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일본의 인구가 2.5배 많은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판매량은 우리나라에서 5배나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정의나 불평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읽은 독자가 그리 많지 않았듯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충분히 이해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그다지 쉬운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이해하려면 사전지식이 필요할 텐데, 이 글은 피케티를 읽기 위한 길라잡이로 쓰여졌다. 몇 가지 기본 개념을 설명하게 될 것이며, 피케티 이전에 이루어진 경제학계의 논의를 소개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하여 피케티 논쟁의 핵심이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본 특집호가 피케티 논쟁에 불을 지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연구

토마 피케티(Thomas Picketty)는 1971년에 태어난 프랑스의 경제학자로 런던정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그 때 이후로 줄곧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왔다. 현재는 파리경제대학(Paris School of Economics)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3년 야심만만하게 출판한 ‘21세기 자본’으로 경제학계뿐만 아니라 세간에서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피케티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21세기 자본’의 출간 이후이지만 경제학계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주로 앤쏘니 앳킨슨(Anthony Atkinson)과 엠마누엘 사에즈(Emmanuel Saez)와 공동연구를 수행하였는데, 이들과의 공저 논문이 오늘날의 피케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버클리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교수인 사에즈는 스페인 출신으로 피케티에서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사에즈는 노벨상보다 받기 힘들다는 클라크메달(John Bates Clark Medal)의 2009년 수상자이기도 하다.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연속성이 있는, 매우 장기간의 시계열자료를 추계하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만 언급하면, 미국의 경우 1913년, 영국의 경우 1908년, 프랑스의 경우 1900년, 놀라운 것은 일본의 경우 1886년 이후 부와 소득의 시계열자료를 추계하였고, 이 자료들이 연속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간에 따른 변화를 유의미하게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추계의 결과에 기초할 때,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그들의 핵심논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논점은 쿠즈네츠(Kuznets)가설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고, 둘째 논점은 최근 30년간 전체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한 이유로 상위 1%의 임금소득이 전례없이 급증했던 현상이 가장 중요했다는 점이다.

▲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9월 1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지식포럼 사전행사로 ‘1% 대 99% 대토론회 제1부 : 피케티와의 대화’에 참석해 전 청와대 경제수석, 유종일 한국개발원(KDI) 교수 등 국내외 석학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매일경제 제공

제1쟁점, 쿠즈네츠가설은 틀렸는가?

쿠즈네츠가설은 1971년 노벨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Simon Smith Kuznets)가 제시한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서는 소득불균형이 심해지지만 경제성장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소득불균형은 완화된다.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도시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는데 산업의 발전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증가한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에 비해 임금상승의 속도는 느리다. 왜냐하면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수요도 증가하겠지만 농촌으로부터 새로운 노동력이 유입되어 노동공급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즉 농촌으로부터의 신규노동력공급이 지속되는 한 임금상승은 그만큼 제한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임금이 빨리 증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득불균형은 심해진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농촌으로부터의 신규노동력 유입이 감소할 것이다. 따라서 임금상승의 속도가 빨라지고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이 크게 개선되므로 소득불균형이 완화된다. 물론 이 단계에 접어들면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발달도 함께 진행되곤 하는데 이에 따른 영향도 소득불균형을 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쿠즈네츠가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그림1>과 같은 쿠즈네츠곡선이다. 피케티의 글을 읽다 보면 역U자형 곡선(inverse U-curve)이라는 표현을 접하게 되는데, 그 형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림1> 쿠즈네츠곡선

 

우리나라는 불과 30~40년 만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후진국의 실상과 선진국의 실상을 모두 경험한 세대가 다수 살아있는 대표적인 나라일 것이다. 지금 중장년이 된 세대들은 1960~1970년대 한국경제의 급성장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로자들의 소득수준도 경제성장률만큼 개선되지는 못했다. 소득불균형이 뚜렷하게 완화되었던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1987년 민주화를 쟁취하였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임금도 급상승했다. 하지만 임금상승이 단순히 정치적인 요인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기업들도 임금상승이 불가피함을 알고 있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험을 위와 같이 정리하고 나면, 쿠즈네츠가설은 매우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하지만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는 쿠즈네츠가설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20세기 초반에는 주요 선진국들의 소득불균형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득불균형은 대폭 줄어들었고, 1940~1970년대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소득불균형은 다시 심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쿠즈네츠곡선과 달리, 1인당 국민소득과 소득불균형의 관계는 U자형 곡선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연구는 쿠즈네츠가설에 대한 탁월한 실증연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연속성이 있는, 매우 장기간의 시계열자료를 추계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언급하면, 제임스 갤브레이드(James K. Galbraith)는 2000년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소득불균형 완화 등을 근거로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또한 추계방법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이다. 그 내용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본 특집호의 김낙년 교수와 김우철 교수의 글은 그 핵심을 잘 정리하고 있다. 김낙년 교수는 피케티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였지만 김우철 교수는 그 방법이 좋지 못하다고 말한다.

제2쟁점, 상위 1%의 소득비중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매우 심각했던 소득불균형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폭 완화되었다가 1980년대 이후에 다시 확대되었다는 것이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20세기 초반의 심각한 소득불균형은 주로 자본소득(capital income)의 격차 때문이었고,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소득불균형이 대폭 완화되었던 것은 전쟁 등으로 인한 자본의 파괴 때문이라는 것이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의 설명이다. 또한 1950~1970년대는 20세기 초반처럼 자본소득의 격차가 재현되기는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 이후 소득불균형이 다시 확대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련의 연구에서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가 제시한 원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소득(wage income)의 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상위 1%의 임금소득이 매우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에 소득불균형이 확대되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흔히 언론에서 들어왔던 대기업의 CEO, 변호사, 스포츠스타 등의 고액연봉 탓이다.

사실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의 견해는 경제학계의 다수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1980년대 이후 IT의 등장으로 인해 고숙련노동력(high-skilled labor)의 임금이 급증하였음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세계적인 부자가 된 이유는 자본을 많이 소유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뛰어난 기술과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최고의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를 자처하는 폴 크루그만(Paul Krugman)도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원래 도금시대(Golden Age:1870~1890)에 고소득자들의 소득은 주로 소유재산에서 발생했다. 경제적 엘리트들은 가치가 높은 토지나 천연자원 또는 수익을 많이 내는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자본소득, 즉 증권이나 채권, 부동산 등 재산에서 발생한 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소수에 훨씬 더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소유권에서 발생한 소득은 더 이상 엘리트집단의 주요 소득원이 아니다. 요즈음은 심지어 천만장자들도 근로의 대가로 받는 형태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이외에도 많은 요인들이 소득불균형의 확대를 초래하였다고 말한다. 1980년대 이후의 감세정책, (미국의 경우) 이민자의 증가, 세계화 등이 소득불균형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사에즈, 앳킨슨, 피케티도 감세정책의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상위 1%의 임금소득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라는데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하지만 피케티는 2013년 출간된 ‘21세기 자본’에서 매우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쿠즈네츠가설은 여전히 틀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번째 쟁점, 즉 1980년대 이후 소득불균형이 확대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과 다른 입장을 추가했다. 소득불균형의 심화는 상위 1%의 임금소득이 급증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소득의 격차로 인한 소득불균형의 심화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것이라고 말한다. 책 제목도 ‘21세기 자본’이라고 붙임으로써 칼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려는 것 같다.

‘21세기 자본’에는 독자적인 이론적 분석이 전개되어 있다. 즉 사에즈, 엣킨슨과의 공동연구에는 없던 것들이다. 피케티는 이를 거창하게 자본주의의 제1근본법칙(First Fundamental Law of Capitalism)과 제2근본법칙(Second Fundamental Law of Capitalism)이라고 불렀다. 내용이 조금 딱딱하기는 하지만 ‘21세기 자본’의 핵심적인 내용이므로 간략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는 없다. 핵심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1법칙은 α=r×β이라는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α는 자본소득분배율이며 r은 자본수익률, β는 자본/국민소득이다.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과 자본수익률을 곱하면 자본소득분배율이 된다는 뜻이므로 제1법칙은 단순한 정의(definition)에 불과하다. 한편 제2법칙은 β=s/g이라는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s는 저축률이고 g는 경제성장률이다. 자본/국민소득인 β가 저축률/경제성장률이 된다는 뜻인데, 이것이 피케티 주장에서 독창적인 내용이다.

제1법칙과 제2법칙에 근거하여 피케티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경제성장률 g가 0에 가까워지면 제2법칙에 따라 자본/국민소득인 β가 무한대가 될 것이므로 제1법칙에서 자본소득분배율 α도 무한대가 될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률 g가 0에 가까워지는 이유로는 고령화의 영향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상위 1%가 많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국민소득의 10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21세기 자본’의 핵심 결론이다.

사실 피케티의 두 가지 법칙은 주류경제학자인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의 모형을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경제학자들의 비판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피케티의 이론에 많은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 그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은 너무 방대한 작업일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것이어서 독자들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게다가 주류경제학자들이니까 그렇게 비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비판을 인용한다면, 진보적인 경제학자의 것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위키피디아에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고 소개되는 로버트 로우쏜(Robert Rowthorn)교수가 최근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고 하더라도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비판을 한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피케티는 대체탄력성(elasticity of substitution)이 1보다 크다는 가정 하에 분석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로우쏜은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다고 말한다(물론 많은 주류경제학문헌들도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다는 견해가 정설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문제는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으면 피케티의 결론은 뒤바뀐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로우쏜은 지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위 1%에게 소득이 집중되는 현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이유가 피케티가 주장한 것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로우쏜의 견해이다.

피케티논쟁의 현주소

‘21세기 자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 사실에 대해 동의했다. 첫째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소득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둘째 소득불균형 심화의 이유는 상위 1%의 임금소득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자본’의 출간으로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책에서 피케티는 둘째 사실을 수정한 듯하다. 소득불균형이 심해진 이유는 자본소득의 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것이므로 앞으로도 소득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으니, 과연 피케티의 제1근본법칙과 제2근본법칙이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케티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다. 소득불균형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까지 고조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에즈와 피케티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는 소득불균형이 심화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과 유럽에서는 소득불균형이 심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이 보더라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피케티가 방한했을 때, 피케티의 설명이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반박하는 국내 경제학자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일본이나 유럽과도 달랐던 것이다. 이처럼 국가별 차이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하여 소득불균형의 완화를 위한 정책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정책은 조세와 소득재분배일 것이다. 피케티는 소득불균형의 완화를 위해 누진적인 조세정책을 강화하자고 말한다. 주류경제학들 중에도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다. 사에즈는 한 연구에서 최고세율을 45~70%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였던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도 비슷한 수준의 최고세율인상을 제시한 바 있다.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학자들은 이 정도의 누진세정책을 주장한다.

피케티의 주장에서 특이한 것이 있다면, 국제적인 차원에서 누진적인 부유세(wealth tax)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어느 한 나라에서만 누진적인 조세정책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최고세율을 인상하자 부유층들이 해외로 재산을 이전하였던 사례가 나타났음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이렇듯이 어느 한 나라에서만 시행된 정책은 무력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소득불균형완화를 위한 노력에도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정책을 실행에 옮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몇 년 간 유로존에서 벌어진 현상을 보더라도 국가간 재정정책의 통합은 단일통화의 도입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