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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손님영화평론-손님
임정환 영화작가  |  medi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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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1  16: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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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많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딱 그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손님이 경우에 따라 반가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불편하고 싫은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손님이라는 어휘가 가진 더 많은 중의적 의미를 사용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손님은 손이라는 어휘의 높임말이다. 그리고 이 손은 사람이 아닌 귀신(우리가 이사할 때 흔히 말하는 손 없는 날의 그 손이다) 혹은 천연두 같은 역병의 의미까지도 가지고 있다. 감독은 이러한 손의 다양한 의미를 영화 속에서 풍부하게 사용한다. 심지어 더 나아가 신체의 일부인 손을 상징하는 듯한 장면들도 보인다.(영화의 주인공인 우룡(류승룡)의 손가락이 잘리는 장면) 물론 의미를 풍부하게 사용한다고 다 효과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 더해 영화가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 원작인 하멜른(독일도시 지명)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언급 역시 필요할 것 같다. 왜냐하면 영화가 이야기의 구조라든지 소재, 캐릭터 등 여러면에서 이 동화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동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교훈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데 피리 부는 사나이 역시 그러한 부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동화의 교훈은 다들 알다시피 약속을 지키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인데 영화 역시 홍보문구에 “약속을 지키지 않은 너희들 손님이 찾아올 것이다”라는 약간은 자극적이고 더 나아가 무섭기까지한 표현을 사용하며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1950년대, 전쟁이 끝나고 휴전이 막 시작된 시기. 떠돌이 악사인 우룡(류승룡)이 폐병에 걸린 아들 영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서울로 가는 길은 당연히 멀고 험해서 부자는 휴식을 위해 중간에 우연히 발견한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이 마을이 생각보다 심상치 않다. 마을사람들은 정도에 벗어나는 수준으로 외부인인 부자를 경계한다. 그들의 눈빛, 행동 등을 보자면 그것이 마치 전쟁을 겪고 나서의 후유증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외부인인 부자와 그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이것이 후유증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외부인인 부자는 나름의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마을사람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마을이 시골이라서가 아닌 그 마을 자체가 시공간적으로 정체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 예로 보였다. 감독은 이것을 극단적으로 마을아이의 시선으로 표현하는데 아이는 자신의 고무신과 영남의 운동화를 의아한 눈으로 번갈아 바라본다.

역시나 마을은 촌장(이성민)의 보호 아닌 보호아래서 그들만의 집단적 비밀을 유지한 체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였는데 지금까지는 그 비밀을 잘 유지하며 각자의 역할을 꾸역꾸역 연기하면서 살아왔지만 부자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한 여기에 마을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이자 그들의 비밀과도 연관이 있는 쥐떼가 있다. 사실 촌장은 이 쥐떼를 교묘히 이용하며 마을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기도 한데 촌장이나 마을사람들에게 쥐떼는 당연히 없어져야 마땅하나 역설적이게도 이 쥐떼가 마을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외부의 적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쟁이나 빨갱이 역시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사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봤을 때도 이러한 패러다임은 크게 바뀌지 못하고 있지 않나?) 아무튼 그런 쥐떼를 손님인 우룡이 자신의 특기인 피리로 마을에서 쫓아버린다. 쥐떼가 없어지자 자연스럽게도 마을사람들은 우룡을 믿고 따르게 되고, 거기에 더해 촌장이 막아버린 그들의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까지도 자극하게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우룡은 마을사람들이 신성시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무당인 미숙(천우희)과의 로맨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숙은 진짜 무당도 아니고 선무당이며 마을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 촌장이 시킨 역할을 수행하는 잘 짜여진 집단의 한명일 뿐이다. 그러니 지도자 아니 지배자의 역할을 하던 촌장이 이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리 만무하고, 더 이상 우룡을 사람으로서의 손이 아닌 귀신 혹은 역병으로서의 손으로 만들어버릴 계획을 짠다. 그 계획이란 것은 바로 쥐떼 대신에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외부의 적인 빨갱이 즉 간첩으로 우룡을 모는 것이었다. 촌장의 주도아래 우룡에게 동화되고 따르기까지 하던 마을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를 모함하기 시작한다. 물론 경계심이 많기는 했지만 순박하고 지극히 평범했던 그들은 일순간 우룡이란 손을 향해 잔인한 집단주의를 보여준다. 마을의 안전, 집단의 유지를 위해서 진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가차 없는 행동 혹은 더 나아가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특히나 마을사람 중 우룡과의 유대가 가장 깊었던 철수부(정경호)의 우룡에 대한 폭력이나, 같이 사랑을 나누던 미숙의 냉정한 돌아섬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흔히 말하는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딱 그 느낌이 아닐까? 집단에서 낙오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적이 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을 보자니 그 맛이 굉장히 쓰디썼다. 물론 미숙은 그 후 바로 돌아와 자신의 죄를 뉘우치듯이 마을사람들을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태까지의 선무당이 아닌 제대로 된 무당으로서의 행동을 보여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성적인 판단으로서의 행동이라기보다는 한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컸다고 생각하면 미숙의 행동 역시 집단주의의 악행을 깨는 행위는 아니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룡과 미숙의 로맨스는 영화 전체상에서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곁가지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환대받지 못한 손인 우룡은 앞서 말했듯이 진짜 손(손가락)이 잘린 체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우룡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촌장이 독을 탄 주먹밥을 먹은 아들 영남의 죽음까지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우룡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은 약속(맞지 않은 셈)에 대해 참지 못한다. 셈을 맞추기 위해 우룡은 다시 한번 피리를 불고 동굴에 가두어 두었던 쥐떼를 마을사람들에게 돌려준다. 예상되듯이 촌장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지독한 파멸을 맛보게 된다. 이 파국의 메시지가 그들이 우룡에게 했던 악행 그 외에도 그들만의 비밀이었던 또 다른 악행(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문둥이(영화상의 표현)들과 예전의 마을무당을 죽인 사건)들의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뻔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쥐떼에게 공격받지 않고 살아남았던 마을 아이들을 우룡이 피리소리로 유혹하며 예전에 쥐를 가두어두었던 동굴에 이번에는 아이들을 가두어버린다. 사실 원작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야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화에서까지 그럴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특히나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던 심지어 마을사람들도 죽일 만큼 부성애가 강했던 우룡이 자신의 자식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할 때에는 약간의 소름이 끼쳐질 정도였다. 이래야 셈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 영화에서 아이라고 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가 우룡의 아들 영남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의 아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묘하게도 무언가 계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닮아있다. 그 계기라는 것이 손님인 우룡이 마을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또한 손님으로서의 마을사람들이 과거에 문둥이마을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인데 둘 다 아이들이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손님이던 그들이 결국에는 주인을 죽이고 마는 똑같은 비극을 맞이하게 되지만...

사족을 조금 더 덧붙여보자면 약속을 하고 지키는 것은 아마도 그냥 짐승이 아닌 사람이란 짐승들이 하는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약속을 쉬이 깨고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짐승과 별 차이가 있을까? 물론 짐승이 약속을 안 지킨다고도 할 수 없고, 오히려 더 잘 지키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람이면 사람이고 짐승이면 짐승이지 굳이 사람이란 짐승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너무나 쉽게 알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상에서 사람과 짐승이란 단어를 제법 인상적으로 표현한 장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우룡이 마을사람들 앞에서 피리를 불자 그들이 피리소리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우룡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귀떼기 달린 짐승들은 자기 피리 소리에 움직인다고 그러자 그 말에 반응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로운데 짐승이라고 읊조리며 자기들끼리 바라보는 그 모습이 이미 그들이 사람과 짐승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물론 약속을 지키고 안 지키냐가 사람과 짐승을 가르는 큰 차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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