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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가볼 만한 곳
베이징에서 가볼 만한 곳
  •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 승인 2017.12.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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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 중국의 수도가 된 것은 원나라 시대에 와서다. 그 이전에는 주로 시안(西安)과 뤄양(洛陽)을 오갔고 남쪽 장강 연안이 개발된 후에는 난징과 항저우 등지가 도읍으로 정해졌다. 원나라는 몽골이 금나라와 남송을 멸한 뒤 중국을 차지하고 세운 나라인데 왜 하필 베이징을 수도의 입지로 선택했을까.

베이징의 북쪽에는 옌산(燕山) 산맥이 가로막아 만주(동북)와 구분짓고 있고, 서쪽에는 몽골 등 유목민족의 초원과 경계인 타이항(太行) 산맥의 한 줄기인 시산(西山) 산맥이 버티고 있다. 도시가 들어선 곳은 완전한 평지지만 얼마 안 가서 곧 산이 시작되기 때문에 베이징은 드넓은 북중국 평원이 북쪽과 서쪽의 장벽인 산지를 만나는 자락에 터를 잡고 있다고 해도 좋다.

베이징은 산을 등에 업고 평원을 제압하고 있기 때문에 북방 유목 민족이 만리장성 안으로 진출해서 한족을 지배하기에 적합한 곳이고, 뒤집어 보면 한족이 유목민의 침공을 저지하는 전진기지 노릇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원나라가 망한 뒤에도 명나라의 영락제가 옌징(燕京)으로 천도해서 몽골족의 권토중래를 견제하고 장강 이북의 지배를 굳혔던 것이다. 청나라는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를 멸망시킨 이자성의 농민반군을 무찔렀기 때문에 수도를 만주의 선양(瀋陽)에서 베이징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했다. 중화민국은 남중국에 기반을 두고 있어 난징을 수도로 정했지만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한 이래 베이징을 수도로 삼아왔다.

베이징은 중국에서 아마 한국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보는 행선지가 아닌가 싶다. 베이징에 일단 도착하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천안문 광장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대뜸 천안문 광장으로 직행하기 보다 먼저 전문대가(前門大街)를 들러보고 전문대가에서부터 천안문, 그리고 자금성(紫禁城)의 정문인 오문(午門)을 지나 태화문(太和門)과 건청문(乾淸門)을 들어서면 어화원에 이르고 신무문(神武門)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전문대가는 저녁에 가는 편이 볼 것이 많고, 천안문 광장에서는 마오쩌둥 기념당에 들러서 방부 처리된 미이라를 구경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장시간 줄을 서야하고 안에서도 멈춰서지 못하게 하지만 중국의 일반 사람들과 더불어 마오 주석의 시신을 관람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베이징 고궁(자금성) 안에서는 청나라 황제들의 편전인 양심전(養心殿)을 들러보면 좋다. 궁중 의례를 거행하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등 3대 전각과 황후의 처소인 교태전, 곤녕궁도 중요하지만 양심전은 황제가 일상적 정사를 돌보는 곳이라 더욱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양심전에 가려면 태화전 뒤이어 서편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처음 가봤을 때 실제 집무실이 매우 비좁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자금성 북쪽의 어화원은 생각보다 작고 정원도 볼품이 없어 다소 실망스럽다. 중국의 궁궐은 자객이 숨을 곳을 주지 않기 위해 원래 나무를 심지 않는다. 어화원이 그나마 꽃나무 등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자금성이 이처럼 삭막한 곳이기 때문에 청나라 강희제 이후 황제들은 여름이면 장춘원과 이화원 등의 이궁에 즐겨 머물렀고, 여름에는 아예 청더(承德)에 있는 피서산장에서 줄곧 지내고는 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열하가 바로 청더의 피서산장을 말한다.

자금성 관광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은 북쪽 신무문 밖의 징산(景山)이다. 징산은 자금성을 지을 때 황궁을 둘러싼 해자와 중남해, 북해 등 인공 호수를 파낸 흙으로 쌓은 것이다. 전시에 대비해 연료인 석탄을 쟁여놓았다는 속설 때문에 매산(煤山)이라고도 불린다. 꼭대기인 만춘정에서 자금성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데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징산 동쪽 얕은 비탈에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이자성 반군에 쫓겨 달아나다 목을 맸다는 회나무가 있다. 물론 현재의 나무는 그 때 그 나무는 아니지만 장소만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 숭정제는 조상에 부끄럽다며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을 가리고 옷에는 선대 황제들의 능만은 파헤치지 말라는 당부의 글을 적어 붙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3대 건축물은 베이징 고궁과 타이안의 대묘(岱廟), 취푸의 공묘(孔廟)를 일컫는데 자금성은 세계 최대의 궁궐이기도 하다.

▲ 자금성

 지난 1990년대, 내가 베이징에 처음 갔을 때 조선족 관광가이드가 말하기를 자금성은 9,999칸인데 옥황상제가 사는 자미궁보다 1칸을 적게 한 것이라며 한국의 경복궁은 99칸 쯤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사대부의 집을 99칸 이상 짓지 못하도록 하는 금령이 있었지만 더 큰 집도 있었고 경복궁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고 답했다.

그러나 경복궁이 대략 몇 칸이 되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돌아온 다음 자료를 뒤져봤지만 다른 전문 서적에도 정확한 수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경복궁이 약 6천 몇백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지만 참 아쉬운 일이었다. 중국의 고궁은 8,886칸의 건물이 있고, 72만m²의 땅에 동서 760m 남북 960m의 성곽에 둘러싸인 약 800채의 전각이 들어서 있다. 경복궁은 43만m²의 땅에 동서 500m 남북 700m의 담장이 쳐져 있다. 고종 때 중건된 것을 기준으로 500여채의 전각이 지어졌으나 일제시대 약 4,000여칸의 건물을 헐어냈다. 참고로 일본의 전통 궁궐인 교토 고쇼의 넓이는 20만 2천m²다. 중국의 고궁이 가장 넓은 것은 맞지만 조선의 경복궁도 꽤 넓고 큰 궁궐이었고, 일본의 궁궐은 그 절반 정도 크기였던 셈이다.

베이징에서 가볼만 한 곳은 자금성 외에 만리장성과 이화원(頤和園)이 있다. 베이징 교외에 있는 거용관과 팔달령 등은 모두 명나라 때 척계광이 완성한 벽돌로 쌓은 성곽과 문루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위치가 좀 더 북쪽이고 이른바 판축 기법으로 흙을 다져 쌓는 토성이었고, 지금은 그 형체를 거의 찾기 힘들다. 만리장성의 진정한 관문은 베이징에서 약간 떨어진 산해관이었고 베이징 근교의 거용관과 팔달령 등은 북방 유목민족에게 한족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전시용 건축물이었던 곳이라 봐도 무방하다. 만리장성이 어느 정도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는 방벽 노릇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방비책이 될 수는 없었다.

이화원은 청 강희제가 만든 장춘원을 서태후가 크게 넓혀 건축한 이궁이다. 당시 해군 군함을 지을 돈을 빼돌려 궁궐을 건축했다고 해서 국가 지도층의 방탕과 낭비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 20여년 전 80대였던 선친을 모시고 중국 일주 패키지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이화원이 워낙 넓어서 잘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이화원의 곤명호를 건너는 배 시간에 맞추느라 한참을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있으면 2차 아편전쟁 때 영・불연합군의 약탈에 폐허로 변한 원명원은 한 번 가볼만 하다. 건륭제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을 흉내내어 예수회 신부들의 도움을 얻어 서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괴괴한 분위기 속에 남아있다. 최근에 복원 공사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실제 상태가 어떤 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베이징에는 취엔취더(全聚德)라는 유명한 오리구이 카오야 집이 있는데 본점은 전문대가에 있고 왕푸징에도 분점이 있다. 중국의 궁중 요리는 서태후의 ‘만한전석’이 대표적인데 북해공원 안의 방선반장이 전문점 가운데 하나다. 실제 먹어보니 별로 대단한 맛이 아닌 듯 했지만 체험 삼아 한 번 가볼 수는 있겠다 싶었다. 베이징은 중국 각지의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쓰촨 요리가 맵다면 상하이 음식은 달짝지근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후난 요리가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맵싸하고 감칠맛이 있어서 입에 맞았다.

이 밖에 천단공원은 우리나라로 치면 사직단 같은 곳인데 기년전이란 누각이 아름답다. 명나라 신종(만력제)이 사랑하는 후궁 정비가 아들을 낳았을 때 먼저 태묘에 고하고, 천단에 알린 다음 조선에 사신을 보내 기쁜 소식을 알렸다는 고사에서 나타나듯 천단은 중요한 곳이었다. 용경협은 패키지 여행 때 자주 들르는 곳이지만 중국의 다른 명승지에 비해 자연미에서 특히 뛰어난 것이 없는 곳이 아닌가 싶다.

명 13릉 가운데 대부분 지하궁전으로 알려진 만력제의 정릉을 들르게 된다. 또 한 군데 개방된 영락제의 장릉은 지하에 내려가지 않더라도 나름 아취가 있는 곳이다. 아울러 인민대회당은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TV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곳을 직접 가볼 기회가 된다. 베이징 서남쪽 20km 떨어진 노구교는 13세기에 지은 아치형 돌다리인데 다리 난간에 조각된 석사자 485마리가 참으로 아름답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계 최고의 다리”라고 상찬한 바로 그 다리인데다 1937년 중일 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 사건(7.7사변)’의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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