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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써 정치를 제어한다
경제로써 정치를 제어한다
  • 윤종인 본지 편집기획위원, 백석대 교수
  • 승인 2018.03.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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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조어도 갈등, 중·일 모두에게 손실…차이나리스크에 대한 국가적 전략 수립해야

<커버스토리 5 China Stress - 경제제재를 수단으로 이용했던 최근의 사례>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 중국 발 마늘파동을 겪은 바 있다. 중국의 조치가 국제무역규범에 어긋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당시 중국은 WTO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분쟁해결을 위해 국제기구에 제소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중국과 1대1로 협상해야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0년 마늘파동과 2017년 사드배치에 따른 경제보복은 성격이 꽤 다르다. 최근의 사태는 정치군사적인 문제에 대해 경제적 보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경제로써 정치를 제어한다’는 이경제정(以經制政)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이런 행동을 취한 바 있었다. 달라이라마와 류 샤오보를 둘러싸고 유럽 각국에게 경제제재를 취한 바 있으며, 일본 및 필리핀과 겪고 있는 영토분쟁을 다루기 위해 경제적 보복을 주요 수단으로 동원한 바 있다. 그러므로 사드배치에 따른 경제보복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중국이 정치군사문제를 제어하기 위해 경제제재를 수단으로 이용했던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과 상대국 사이에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떤 식으로 경제보복을 단행했는가? 그리고 상대국은 중국의 경제제재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가? 다른 나라의 사례는 현재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정보이므로 우리는 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행동이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보복도 전략적인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상대국의 대응도 전략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허둥지둥 다룰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국가전략’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달라이 라마와 류 샤오보를 둘러싼 갈등

유럽 국가들에 대해 중국이 경제제재를 취한 사건의 배경에는 달라이 라마와 류 사오보가 있었다. 약소민족문제 또는 인권문제에 대해 중국이 경제적 수단을 동원했던 것이다.

2009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티벳의 달라이 라마와 면담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에어버스 도입협상을 연기하는 등 프랑스에 대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치문제의 해결수단으로 경제제재를 동원한 것이다. 이외에도 티벳 문제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한 나라는 많은데, 159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티벳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었던 관련국의 대중국 수출이 8.5~16.9%나 감소했다고 한다.

티벳 문제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자 프랑스는 하나의 중국정책을 지지하고 티벳이 중국의 일부임을 선언하였다. 이른 바 유화(appeasement)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만족할 만한 사과로 받아들였고 제재조치를 해제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덴마크 라스무센 총리도 달라이 라마를 면담한 이후 중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했으며 프랑스와 비슷한 유화정책을 취함으로써 경제제재를 피할 수 있었다. 달리아 라마로 인한 보복은 주로 북유럽국가들에서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중국의 조치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는데, 2001년에는 11개국 정상이 달라이 라마를 만났으나 2013년에는 불과 2개국 정상만이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고 한다.

또 하나의 사례는 얼마 전 고인이 된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 사오보를 둘러싼 사건이었다. 2010년 노벨위원회는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인 류 사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이에 중국은 노르웨이를 상대로 경제제재를 단행했는데, 주로 노르웨이산 연어수입을 규제하는 것이었다. 제재 이전 중국의 연어수입에서 노르웨이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나 되었는데 그 비중이 2014년에는 무려 26%까지 급감하였다. 노르웨이 외무장관이었던 요나스 갈 스토레는 노벨위원회의 결정이 노르웨이 외교정책과 무관함을 주장하였지만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은 2년 후 노르웨이를 비자면제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중국의 노르웨이 제재는 중단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굳이 평가하자면, 달라이 라마와 관련된 제재는 성공적이었던 반면에 노르웨이에 대한 제재는 성공적이지 못하였던 셈이다. 프랑스와 덴마크 등은 중국이 원하는 유화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노르웨이는 그럴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노르웨이 정부가 노벨위원회의 결정에 간섭할 수도 없었으므로 중국의 경제재재는 애초부터 지나친 것이었다. 사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몇 차례 달라이 라마와 면담한 바 있는데, 중국이 이에 대해 반발하기는 했어도 경제제재를 단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노르웨이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중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긴장이 고조되기 직전 2008년 프랑스의 교역액 중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은 2.23%,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6.5%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2009년 노르웨이의 교역액 중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은 7.7%,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11%를 차지하였다.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 다루게 될 일본이나 필리핀의 경우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다. 2009년 일본의 교역액 중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은 19%,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2.2%를 차지하였으며, 2011년 필리핀의 교역액 중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은 12.7%,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10.2%나 차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국가들이 유화적 조치를 취한 이유는 그에 따른 비용이 매우 적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중국정책을 지지하고 달라이 라마와 면담하지 않는다고 해서 프랑스에게 큰 타격이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본과 필리핀이 직면한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두 나라는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피해가 아무리 크더라도 유화정책을 쓸 수는 없었다. 정치적 대가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2010년 제1차 조어도 갈등

조어도(釣魚島)는 일본열도에서 대만까지 이어지는 곳에 있는 섬이다. 일본에서는 Senkaku Islands, 중국에서는 Diaoyu Islands라고 부른다. 일본은 실효적 지배를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과 대만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한 갈등은 오래 된 것인데, 2004년에도 중국인이 조어도에 상륙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이들을 신속하게 석방한 바 있다.

하지만 2010년에는 달랐다. 9월 7일 일본의 해안경비대 소속 순시선이 중국 트롤어선을 발견하였는데 이들은 조어도 근방에서 조업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서해에서 그렇듯이, 중국어선은 일본순시선과 출동하는 등 단속에 저항하였다. 결국 중국어선은 예인되었고, 9월 13일 일본은 선원을 석방하였으나 선장은 억류하였다. 이에 중국에서 반일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9월 19일 일본이 선장 억류를 10일 연장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중국정부도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군사시설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일본기업가들을 체포했고 이른 바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수출금지(embargo)를 단행하는 등 초강수를 두었던 것이다. 희토류 엠바고가 선언된 지 3일 만에 그리고 일본기업인이 체포되자마자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석방하였다. 석방 직후 중국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였고 중국어선이 일본 순시선에 입힌 피해의 보상을 요구했다. 9월 30일 중국은 일본기업인 4명 중 3명을 석방했다. 나머지 1명은 10월 9일에 가서야 석방되었다.

2010년 갈등에서 중국이 동원한 경제제재의 핵심에는 희토류 엠바고가 있었다. 일찍이 덩샤오핑이 “중동은 석유를 가졌고 중국은 희토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희토류생산에서 중국은 가히 독점적이다. 2005~2010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97%를 중국이 차지한다고 한다. 문제는 일본이 최대수입국으로 2010년 그 중 33%를 수입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희토류 엠바고는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동원할 수 있는 경제제재수단 중 대단히 강력한 것이었다. 엠바고는 9월 21일에 시작되었고 11월 19일까지 2개월간 지속되었다. 물론 중국은 이를 부인했다. 중국은 희토류의 고갈을 막고 채굴로 인한 환경오염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갈등 전후 통계를 살펴보면, 희토류 중 스칸듐(scandium)과 이트륨(yttrium)의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였으므로 중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단독으로 이 문제를 WTO에 제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3월 EU와 미국이 중국의 엠바고에 문제를 제기하자 일본도 이 문제를 WTO로 가져갔다. 일본은 제소사유로 정치적인 이유를 들지 않았다. 일본은 중국의 엠바고가 WTO규범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 제소한 것이다. 즉 중국정부가 희토류 접근에서 국내기업에 대한 특혜조치를 취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중국은 반박했지만, 2014년 WTO는 중국의 입장이 환경보호가 아니라 산업정책에 따른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희토류의 수출규제 및 쿼터제를 폐기한다.

예상치 못한 엠바고에 굴복한 이후 일본의 대응조치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희토류수입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몽골과 미얀마 등에서 희토류 탐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반적인 일본과 중국의 경제관계는 정상적이었다. 즉 무역과 투자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문제는 일본의 여론이 민주당 정부의 유화정책에 비판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에 일본은 조어도를 방위하기 위한 군사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잠수함을 16대에서 22대로 늘리기로 했으며, 2010년 12월에는 방위지침에서 중국의 위협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간 나오토 행정부는 150명의 육상자위대를 조어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섬인 요나구니(Yonaguni)에 배치하고 해상감시를 위한 레이더기지를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미국과의 접근도 강화했다. 당시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조어도가 미국과 일본의 안보조약에 의해 보호되는 지역이라고 선언했다. 2011년 미일 안보협의회의는 미일동맹의 심화와 확대에 합의했으며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로 미국의 F-35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어떤 나라의 국력이 강해지면 이웃 나라와의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열세에 놓이게 된 나라가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균형을 회복하는 것(rebalancing)이고 다른 하나는 무너진 균형, 즉 불균형을 받아들이는 것(underbalancing)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경제사회의 의존성, 지리적 인접성, 제3국과의 동맹관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앞에서 살펴본 프랑스와 덴마크 등 유럽나라들은 티벳 문제라는 국지적 문제에 대하여 언더밸런싱을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들의 조치가 대중국 외교관계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유럽 국가들이 대중국 언더밸런싱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여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의 움직임은 언더밸런싱이 아니라 리밸런싱이었음이 명확하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의 남사군도. 두 지역은 영토와 영해를 둘러싼 갈등으로 해당국 모두 주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군사적 출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은 중국 국방부 청사. 사진=위키미디어

2012년 제2차 조어도 갈등

극우파로 알려진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민주당정부를 비판하면서 개인소유였던 조어도 3개 섬을 사들이겠다고 주장했다. 이를 막기 위해 2012년 7월 노다 정부는 중앙정부에 의한 국유화를 선언하였고 이로 인해 제2차 조어도 갈등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노다 총리에게 국유화가 선을 넘은 것임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중국 상무부 부부장 지앙 젱웨이는 중일 경제 및 무역에 부정적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들은 중국소비자의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이어서 벌어진 반일시위도 중국정부에 의해 조장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위대는 과격해졌고 일장기를 불태우거나 일본 식당, 차량 그리고 공장을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2012년 8월 12일의 BBC보도에 따르면 시위대 중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고 한다. 9월 21일 중국 관광당국은 안전을 이유로 일본여행 자제를 권고했으며 여행사들도 일본여행상품을 취소, 환불하기에 이른다.

조어도를 둘러싼 2010년 갈등이 단기적인 영향을 끼쳤다면 2012년 갈등은 보다 광범위하고 큰 영향을 끼쳤다. 2010년 중국의 제재수단은 희토류 엠바고이었지만 그 사이에 일본이 수입처를 다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WTO에 제소되어 중국에게 불리한 판정이 내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2012년에는 중국정부도 이를 동원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9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수출시장이 되어 있었다. 일본의 대중국수출은 1,090억 달러로 일본 수출총액의 18.9%, 일본 GDP의 2.3%나 되었다. 이에 중국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으로 대응하였다.

2010년에도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났으나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에는 달랐다. 우선 일본의 수출총액을 보면 2011년에는 증가했으나 2012년에는 감소했다. 물론 이것이 중국의 제재조치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엔화 강세 탓이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2012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도 전년 대비 7% 감소했으며 이것이 일본수출감소의 19%를 차지한다.

하지만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훨씬 더 가파르게 감소했다. 2012년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11%, 240억 달러 감소했는데 이는 일본수출감소의 70%를 차지한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보다 대중국 수출이 훨씬 더 급격히 감소하였으므로 여기에는 엔화 강세 이외의 요인, 즉 중국의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8~11월에 집중되었는데 전년 동기간 대비 110억 달러나 감소하였다.

반면에 중국의 대일본수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일본과 중국의 교역액은 2011년 3,450억 달러에서 2012년 3,330억 달러, 2013년 3,100억 달러, 2014년 3,070달러까지 계속 줄어들었는데, 교역액 감소의 대부분은 일본의 대중국 수출 감소로 인한 것이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012년 0.6%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2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1.5%이었으므로 실로 엄청난 타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일본 브랜드 자동차의 타격이 컸다. 닛산자동차는 2011년 123만대에서 2013년 100만대로 감소했으며, 도요타자동차도 2011년 86만대에서 2013년 71만대로 감소했다. 그 대신 중국소비자들은 다른 나라 브랜드의 자동차를 구매했다.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은 포드자동차는 2011년 50만대가량에서 2013년 75만대로 판매가 급증했다. 물론 일본 브랜드 자동차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생산되므로 중국 근로자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산업의 주력은 주요 부품이다. 따라서 완성차 판매 감소는 일본부품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소비자 불매운동과 관련하여 많이 거론되는 분야는 관광산업이다.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중 2위가 중국인이다. 2010년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은 860만 명이었는데 그 중 17%인 140만명이 중국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인의 씀씀이가 크다는 점이다. 2011년 관광객 수로는 중국인이 16%를 차지하였지만 씀씀이는 240억 달러를 지출하여 25%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중 2위도 일본인이다. 2010년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 2,600만 명 중 12%인 310만 명이 일본인이었고 이들로 인한 관광수입은 중국의 전체 관광수입에서 12%를 차지하였다. 일본과 중국은 서로 관광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들이다.

물론 2010년 갈등 때에도 관광객 감소는 있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다. 갈등 직후 3개월 동안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7% 감소하였으나 다음 해인 2011년 1월에는 다시 7%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중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도 6% 감소했다가 2011년 2월에는 9% 증가하였다. 물론 2010년에는 중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2년에는 중국 관광당국이 안전을 이유로 일본관광 억제를 유도하였다.

그렇지만 중국에게 유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인의 일본 관광은 일시적으로 감소하고 시간이 지나 회복되었지만, 일본인의 중국 관광은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일본관광은 국유화선언 직후 4개월간 40% 감소하였고 11개월간 28% 감소하였다. 하지만 2013년이 되면 중국인의 일본관광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2014년에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에도 중국인이 관광지로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중국관광은 2012년 위기 직후 11개월간 26% 감소한 이후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의 중국관광 기피 경향은 최근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로 중국인의 반일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피해가 일본의 피해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단기적으로도 중국의 피해가 더 컸다. 국유화선언 직후 4개월 동안 일본인의 중국관광은 28만 5천명 감소하였고 중국인의 일본관광은 16만 8천명 감소하였으므로 단기적으로도 중국의 타격이 컸던 셈이다.

투자를 보더라도 중국에게 유리했는지는 미지수이다. 2010년 위기 때에는 일본의 대중국 투자에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2011년에는 54억 달러나 증가하여 증가율이 42%에 이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2년부터 증가율이 6%로 둔화되더니 2013년과 2014년에는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9월에는 중국내 일본공장이 공격받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파나소닉공장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물론 중국내 반일시위만이 일본의 대중국 투자 감소의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중국공장의 인건비 부담 증가, 부패, 환경오염 등 여러 문제가 작용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 시기부터 일본은 중국에서 아세안으로 투자처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일본의 대중국 순투자는 (+)이지만 감소세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012년 중국의 경제제재는 다음과 같이 귀결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무역측면에서 보면, 중국의 대일수출에는 변화가 없고 일본의 대중수출은 크게 감소하였으므로 일본에게는 큰 타격이 되었다. 관광측면에서 보면, 중국인의 일본관광은 감소 이후 회복된 반면 일본인의 중국관광은 감소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중국에게 오히려 불리했다고 볼 수 있다. 투자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대중국투자가 감소하고 이것이 아세안으로 이동하였으므로 중국에게 유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2012년 일본에 대한 중국 경제제재의 손익계산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양국 모두에게 손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2010년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규제, 희토류 엠바고, 이하에서 설명하게 될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규제는 정부가 규제를 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2012년 조어도 갈등 당시 중국이 취한 방식은 소비자 불매운동이었다. 중국정부는 전략적으로 이 방법을 선택하였고, WTO 제소 등을 피하면서 더 강한 압박을 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가진 최대의 무기는 압도적인 인구이다. 중국에서 소비자 불매운동이 벌어진다면 그 영향은 엄청날 수밖에 없으니 중국정부로서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물론 중국경제에도 타격이 될 수 있는 중간재의 수입을 규제하지는 않는다. 중국정부는 소비재를 겨냥한다.

2010년 희토류 엠바고에 굴복했던 일본은 2012년 이후 중국을 상대로 유화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한층 더 해상방위력을 증강시키고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지역 내 균형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본인들의 대중국 경계심이 크게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일본인의 중국관광 감소를 초래한 요인이 되었다. 이제 일본은 조어도 영유권을 지키기 위하여 국제사회를 상대로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4년과 2015년 전략적 대화(strategic communication)에 5억 9천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는데, 이는 최초 예산보다 4억 2천만 달러나 증액된 것이라고 한다.

필리핀과 중국의 황암도 대치

남중국해의 광대한 영역에 걸쳐 있는 남사군도(Spratlys Islands)는 주변 6개국의 분쟁지역이다. 50여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필리핀에서는 Kalayaan islands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Nansha islands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황암도(黃巖島: Scarborough Shoal)를 둘러싼 대치가 2012년 필리핀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를 필리핀에서는 Panatag shoal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Huangyan Island이라 부르는데, shoal은 모래섬이라는 뜻이다.

2012년 4월 10일 필리핀해군의 프리깃함이 황암도에서 조업하던 8척의 중국어선에 승선하여 조사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중국이 비무장 해양순시선을 출동시킴으로써 2012년 위기가 발생하였다. 필리핀은 중국어선이 불법조업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중국은 기상조건이 나빠 산호섬에 피항하려던 중국어선을 필리핀해군이 막았기 때문에 중국의 해양순시선이 출동했다고 주장하였다. 4월 12일 중국이 중무장한 어업지도선을 보내자 필리핀은 해군 프리깃함을 철수시키고 그 대신 2척의 연안경비정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필리핀은 연안경비정을 철수시키지 않았다. 그러자 드디어 중국이 경제제재를 개시하였다. 검역강화를 이유로 필리핀 과일의 수입이 규제되었고 중국 관광당국은 안전을 이유로 필리핀 여행자제를 권고했다. 양국의 경제규모로 볼 때 필리핀에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2개월이 지난 6월 15일 필리핀은 태풍을 이유로 2척의 연안경비정을 철수시켰다.

바나나는 필리핀의 농산물 수출품목 중 3번째로 많으며, 중국은 필리핀 바나나 수출의 1/4을 차지하는 제2시장이었다. 2012년 주산지인 다바오(Davao) 주민 50만 명이 바나나로 먹고 살았으며, 당시 중국의 규제가 지속되었다면 이 중 20만 명의 생계가 위협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위기 직전 중국 바나나수입에서 필리핀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90% 가까이 되었는데 2012년 68%까지 추락하였다. 물론 중국의 설명은 다르다. 필리핀 바나나의 품질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필리핀 대신 에쿠아도르를 선택했고, 10만 톤 가량이던 에쿠아도르의 대중국 바나나 수출은 4배로 증가했다.

더 중요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필리핀을 찾는 관광객 중 중국인은 3번째로 많았는데, 중국정부는 필리핀 여행을 금지하는 수준의 경고조치를 발동하였다. 중국인 관광객은 2012년 25만명으로 줄었는데, 2011년과 비교하면 3.2% 증가했으므로 타격이 적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위기가 진행 중이던 6월에서 8월까지만 보면, 월별 관광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35%나 감소했다. 2012년 필리핀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는 2012년 조어도 국유화 때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중국인의 일본 관광 기피는 일본인의 중국 관광 기피와 상쇄되기 때문에 중국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2011년 중국을 방문한 필리핀 관광객 수는 단지 0.33%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별로 잃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필리핀에서 반중국시위가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므로 필리핀 관광 억제를 위해 중국 당국이 강하게 개입할 필요도 적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필리핀의 경우 바나나 수입억제보다는 관광자제라는 개입이 더 효과적인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일본의 경우와는 달랐던 것이다.

사실 2011년 필리핀의 대중국 수출에서 바나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1.23%에 불과했다. 바나나 수출이 적은 규모였으므로 필리핀과 중국의 전체적인 수출과 수입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필리핀의 대중국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자부품으로 50%를 차지하였다. 따라서 필리핀 경제에 타격을 입히려면 전자부품 수입을 규제하는 편이 더 강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국으로서도 필리핀산 전자부품의 수입규제는 손해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 중국정부는 바나나와 관광을 선택한 셈이다.

중국정부는 개입을 부인했지만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필리핀이 연안경비정을 철수시킨 이후 모든 것이 급격히 정상화되었다. 바나나 수출이 급격히 회복되어 필리핀산이 중국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90%까지 높아졌고 2014년에도 86%에 이른다. 이는 검역강화를 이유로 수입을 억제했던 노르웨이산 연어와 대조를 보인다. 중국의 연어수입에서 노르웨이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서 2011년 28%까지 감소하여 회복되지 않았다. 관광객도 마찬가지였다. 필리핀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2013년에 42만 명으로 급증했다.

어쨌든 대치 이후 필리핀과 중국의 교역은 감소했다. 중국 수입에서 필리핀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18%, 2012년 16%, 2014년 12%로 감소하였다. 위기 이후 필리핀의 대중국 의존도가 많이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경제규모에 비추어 볼 때 필리핀은 중국의 경제제재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 따라서 필리핀은 다른 영역에서 대응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인 미국 및 일본과의 협력 강화이다. 독립 직후인 1951년 미국과 필리핀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으나 1992년에는 수빅만과 클라크공군기지에서 미군이 철수했다. 하지만 1995년 중국이 산호초(Mischief Reef)섬을 점령하자 1998년 미국과 필리핀은 미군의 단기주둔을 허용하도록 협정을 개정했다. “우리는 미국이 떠났을 때 행복했고 이제는 미국의 귀환을 환영한다”는 식이었다. 양국은 2013년 새로운 방위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미군이 필리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2014년 필리핀의 대통령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Aquino)는 미국과 일본이 진정한 우호관계를 보인 전략적 파트너라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데, 필리핀에게 일본은 최대교역국이자(일본은 필리핀 바나나의 최대수입국이다) 투자 및 관광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이에 더해 필리핀은 군사적 협력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일본의 노다 수상과 아키노 행정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합의했으며, 2012년에는 일본이 필리핀에게 2대의 1천 톤 급 순시선과 10대의 180톤 급 순시선을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2015년에는 아키노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여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심화시키기로 합의하고, 일본은 항공기와 레이더장비를 필리핀에 제공하며 일본과 필리핀의 연합군사훈련 및 일본자위대의 필리핀 내 급유에 대해서 논의한 바 있다.

물론 중국도 필리핀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4년 APEC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개최했는데, 이후 필리핀과 중국의 관계는 서서히 개선되었다. 당시 이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AIIB)에 필리핀이 참여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6년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그는 한층 더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리스크에 대한 국가전략을 세워야 한다

중국은 대단히 넓은 영토와 압도적인 인구를 지닌 나라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중국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차이나스트레스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접해 있다. 베트남도 중국과 접해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정치적 심장부인 북경과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직면한 지정학은 독보적이다. 남북통일이란 역사적 과업을 가진 우리나라에게 차이나스트레스는 언제든 터질 가능성이 높았던 문제였을 것이다.

사드를 둘러싼 보복을 겪으면서 중국이 커다란 기회인 동시에 커다란 위협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경제가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중국의 고도성장에 따른 이익을 크게 누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은 우리나라에게 기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경제의 경착륙과 그에 따른 타격을 우려하면서 차이나리스크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게다가 최근의 사태는 중국이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경제적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차이나리스크의 리스트에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문제까지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이 있을 때,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을 파악하여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을 SWOT분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게 중국은 어떤 식으로 기회가 되고 어떤 식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끝으로 이에 근거하여 차이나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국가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언제든지 차이나스트레스로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남게 될 것이다. 차이나리스크 관리를 위한 국가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정파적 편향을 벗어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단결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의 경제제재는 전략적인 수단이며 최근 몇 년 간 진화해 왔다.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에서 소비자 불매운동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WTO 등 국제기구 제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비관세장벽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왔다. 따라서 상대국의 소비재산업은 주요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한국관광 억제와 롯데마트 규제 등은 이런 맥락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이 중간재와 부품 수입을 규제하지 않았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한 것이다. 즉 공급사슬(supply chain)에서 상위에 있는 중간재와 부품산업의 경우 차이나리스크는 적고, 하위에 있는 소비재산업의 경우 차이나리스크가 큰 편이다. 따라서 공급사슬의 상위로 도약하려는 노력은 차이나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또한 중국인의 일본관광이 여전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12년 위기 이후 일본의 대중국수출은 감소했지만 중국인의 일본관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니 일본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경쟁력 제고가 절실하다. 끝으로 주변국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일본 및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경제협력을 다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44호(2017년 11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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