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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혁신 전략보다 사회 혁신 전략 필요
기술 혁신 전략보다 사회 혁신 전략 필요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연구교수
  • 승인 2018.05.17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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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혁명과 네트워크 경제는 현재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만개할 수 있는 기술 아냐

<4차 산업혁명-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역사적 조망>

필자와 같이 경제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매우 친숙하지만, 여전히 잘 알 수 없는 블랙박스이다. 산업혁명의 태동부터 그 귀결까지 많은 것이 알려진 과거의 산업혁명들도 그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당대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어야 하는지 등을 묻는다면 답하기 난감하다. 하물며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제 태동단계에 있다고들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샀다. 필자와 같은 경제사가들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제목이 붙은 책을 사면, 당연히 책 속에 제4차 산업혁명은 과거에 일어난 제1, 2, 3차 산업혁명과 어떻게 다르고, 과거의 산업혁명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내가 그의 책에서 발견한 과거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는 다음 한 문장뿐이었다.

“1760~1840년경에 걸쳐 발생한 제1차 산업혁명은 철도 건설과 증기기관의 발명을 바탕으로 기계에 의한 생산을 이끌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제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생산 조립 라인의 출현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제3차 산업혁명은 반도체와 메인프레임 컴퓨팅(1960년대), PC(1970년대와 1980년대), 인터넷(1990년대)이 발달을 주도했다. ....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은 21세기의 시작과 동시에 출현했다.” (클라우스 슈밥 저 송경진 역(2016),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새로운 현재, 25면)

슈밥에게 있어 제1, 2, 3차 산업혁명은 자신이 논의할 대상이 제4차임을 헤아리기 위해 거명된 것 이상이 아니었다. 비록 산업혁명이 이해하기 어려운 블랙박스이지만, 과거의 산업혁명들에는 현재의 산업혁명의 차수를 헤아리는 것 이상의 교훈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도 경제사가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혁명은 혁명이었는가?

슈밥은 1760~1840년경에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의 변화를 제1차 산업혁명이라 거명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지만, 경제사학계에서는 오랫동안 그것을 혁명이라 명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경제사가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영국의 산업혁명과 동일한 시대에 발생한 대표적인 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 혁명은 같은 혁명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달랐다. 프랑스 혁명기에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혁명의 와중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영국 산업혁명기에 영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혁명의 와중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사람뿐만 아니라 리카아도나 맬서스와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암울한 미래를 예견할 뿐이어서, 경제학은 암울한 과학(dismal science)으로 평가받았다. 영국의 산업 변화는 그것이 근대적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서막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만약 당시 산업의 변화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면, 그것은 급격한 변화라는 의미에서의 혁명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라는 의미에서의 혁명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산업혁명기에 발생한 기술혁신과 산업의 변화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근대와 전근대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인구변천이다. 현재 우리는 전근대 사람보다 더 적은 자식을 낳으며, 더 많은 교육투자를 한다. 이와 같은 인적자본 투자로 인해 우리는 1인당 소득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에서 인구변천은 언제 일어났을까? 인구변천에 대한 정보는 예상수명과 합계출산율에 집약되는데, [그림 1]은 그 정보를 보여준다. 예상수명은 16세기에 40세 정도였으며, 예상수명이 이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시기는 1860년대부터였다. 한 명의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평균 낳는 자식 수인 합계출산율은 1870년대에 들어와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슈밥이 영국의 산업혁명이라 제시한 시점에서 20~30년 후에 인구변천은 발생한 것이다.

[그림1] 영국의 예상수명과 합계출산율의 장기 변천

출처: Baines and Woods(2004), “Population and regional development,” The Cambridge Economic History of Modern Britain, Cambridge Univ. Press. p.28

기술혁신과 인구변천의 이와 같은 괴리는 기술혁신과 복지증진의 관계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기술혁신과 복지증진의 괴리는 슈밥이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거명한 것에서도 관찰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제2차 산업혁명이 인간들의 삶의 수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보기 위해 서유럽의 1인당 GDP의 장기 추이를 살펴보자.

매디슨 프로젝트의 추계에 의하면, 서유럽의 1인당 GDP는 187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1.7%로 성장했다. 서유럽 1인당 GDP에서 1.7%의 성장추세를 제거하고 1870년을 100으로 하여 제시한 것이 [그림 2]이다. 제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성장률은 1.7%에 미치지 못하여 1945년까지 우하향의 그래프를 보여주지만, 슈밥이 제시한 산업혁명들의 기간과 대체로 무관한 제2차 대전후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평균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여서 가파른 우상향의 그래프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자본주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Capitalism)라는 표현보다는 사회민주주의 시대(Social Democratic Age)라고 표현하는데, Maglin의 책 제목이 필자에게 남긴 강한 인상을 버릴 수 없어 여기에서는 자본주의 황금기라는 고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Boushey, DeLong and Steinbaum eds(2017), After Piketty – The Agenda for Economics and Inequality, Harvard Univ. Press)

[그림 2] 1.7% 성장추세를 뺀 서유럽의 1인당 GDP의 장기 변동: 1870~2010 (1870=100)

출처: http://www.ggdc.net/maddison/maddison-project/data.htm

기술혁신과 생활수준의 개선은 왜 괴리되는가?

기술혁신이 경제 성장의 원천임을 부정하는 경제사가도 거의 없지만, 기술혁신이 생활수준의 개선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경제사가도 거의 없다. 기술혁신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술보다 더 효율적인 기술 즉 보다 적은 투입물로 보다 많은 생산물을 산출하는 기술로 대체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혁신이 일어난다면 동일한 후생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투입물은 줄어들 것이다. 즉 후생수준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기술혁신의 효과는 자원의 절약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이유는 후생수준의 변화 없는 기술혁신도 있을 수 있으며, 후생수준의 증대는 기술혁신 이상의 플러스 알파가 필요함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면 기존의 기술은 낡은 것이 된다.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새로운 기술에 의해 대체되어 쓸모없게 된 기술들을 가진 사람들의 처지는 더 나빠진다는 의미에서, 기술혁신은 패자가 있는 개선이다. 이것이 제1차 산업혁명과 제2차 산업혁명에서 기술혁신이 바로 생활수준의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이다. 이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영국에서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의 총아는 바로 면직물업이었다. 원래 면화는 열대산 나무여서 최상의 면화는 인도 산이거나 이집트 산이거나 미국 남부 산이었다. 전근대 시대에는 그 지역의 일차 자원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생산체계가 일반적이었으므로, 전근대 수공업적 면직물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 인도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서양 시대가 열리고 난 이후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면화를 구입하여, 그것을 가공해서 면직물을 만들게 되었으므로, 영국에서 면직물업은 신생 산업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면직물업 분야에서의 기술혁신 즉 기계제 면직물업의 발전은 영국에 국한해서 본다면 패자 없는 개선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인도의 수공업적 면직물업이 패자였다는 점에서 패자 없는 개선은 아니었다. 반면, 기타 수공업적으로 생산되었던 다양한 산업에 기계가 도입되면, 그 부문에서의 기술혁신은 패자 있는 개선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기계제 공장에서는 전통적 숙련공 대신 아동이나 부녀와 같은 미숙련공을 사용하여 임금을 절감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노동시장을 압박하여 임금이 오르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지기도 하였다. 영국의 산업혁명의 총아인 면직물업이 패자 없는 개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개선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사가들은 생활수준 논쟁이라고 하여 산업혁명기에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올랐는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실질임금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양식의 근본적인 변화인데, 그 지표인 인구변천은 적어도 산업혁명기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술혁신 이외에 또 다른 무엇 즉 생산성 증대의 효과를 노동자들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사회의 구조변화를 요구했다.

제1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것이 증기기관이라면 제2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것은 전기와 전기로 작동되는 전기모터였다. 증기기관은 화석연료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 주는데, 증기기관이 만들어내는 운동에너지는 다양한 전달기를 통하여 작업기를 작동시킨다. 그런데, 이 전달기의 에너지 전달 효율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에너지 필요량이 많은 작업기는 증기기관에 가까운 곳에 배치하였다. 즉 작업기의 배치는 증기기관의 위치와 작업기의 에너지 필요량에 의해 결정되었다. 반면에 전기는 증기기관과는 달리 각 작업기에 달린 전동기에 전기선이 연결되기만 하면 작동하고, 전기선의 길이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작업기의 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전기모터의 도입으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게 된 작업기를 과학적 관리법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여 노무 통제의 효율성을 구현한 것이 포디즘이었다. 그런 점에서 포디즘도 제2차 산업혁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포디즘으로 인해 값싸게 생산된 자동차는 육상운송의 틀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값싸게 보급된 자동차는 제1차 산업혁명의 총아였던 철도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고속철도가 개발되어 철도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철도는 역사의 유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철도기관사 정비사 등을 비롯한 철도관련 종사자들이 직업을 잃어갔던 것이다. 철도관련 종사자들을 실직자로 내몰았던 자동차 운전관련 종사자들도 이제 바야흐로 자율주행차의 시대에는 실직자가 될 것이다.

기술혁신은 언제나 창조적 파괴였다. 그것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낡은 기술의 소유자들을 실직자로 내몰았다. 뿐만 아니라 기술혁신은 보다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후생수준의 전반적인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직업에 소요되는 사람들보다 실직자로 내몰리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된다. 기술혁신에 의해 파괴된 노동자들이 삶의 일터를 잃고 소비력을 상실해 갈 때,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를 제1차 산업혁명과 제2차 산업혁명은 여실히 보여준다. 다만 제1차 산업혁명기 영국의 기계제 면직물업의 발전으로 실직한 사람은 주로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의 수공업적 면직물업에 종사한 노동자였기 때문에, 영국 내에 나타난 기술혁신의 파괴적 효과는 적었다. 그런 점에서 수요를 창출하려는 적절한 노력 없이 이루어진 기술혁신의 파괴적 효과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제2차 산업혁명이었다.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과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대불황과 대공황 등이 수요 창출 노력 없는 기술혁신의 귀결들이었다. 기술혁신은 경제성장의 엔진이지만, 적절한 수요 창출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것이 가져오는 귀결은 번영이 아니라 파멸이다.

사회 혁신으로 과소소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과소소비의 문제는 반드시 일어나는가? 과소소비가 발생하지 않는 성장 체계를 이론적으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답은 아니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과소소비의 문제는 일어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예이다. 그리고 과소소비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붕괴로 이어지는가? 과소소비의 문제는 사회 혁신으로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물론 이 답들은 제1차 산업혁명과 제2차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잠정적인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빈부의 격차는 매우 컸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최상류층의 절반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면, 문제는 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공급의 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법칙은 하층민들의 상대 소득을 더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산업혁명기의 기술혁신은 인간의 근육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산업혁명의 초기에는 기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지만, 공급에는 제한이 있어서 자본에 대한 보수는 증가한다. 반면, 후생증가를 위해 사회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계화는 노동수요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숙련이 없는 사람들인 아동이나 부인들도 노동시장에 신규로 참가할 수 있게 하여 임금에 하락압력을 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빅토리아 중기에 들어 인구변천의 지표가 보여주는바 대 변환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자본축적이 진전되고 기계제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자본에 대한 보수가 감소하게 된다. 이러한 효과도 작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노동자들의 삶의 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 출현하여, 노동자들의 보다 나은 삶의 양식을 형성해 간 것도 중요했다.

기계제 공업의 발전으로 기계공의 규모는 커졌을 뿐만 아니라, 기계공은 기계제 경제에 필요한 인적 자본의 보유자로서 자본가와의 교섭력이 상당했으며, 또 숙련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기계공이 중심이 된 신형 노동조합이 출현했다. 정부와 기업가들도 유럽에서 번지고 있었던 사회주의 운동을 차단할 목적으로 신형 노동조합을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였다. 신형 노동조합들이 벌인 노동자 지위 개선을 위한 투쟁은 노동조합법의 제정, 의무교육 실시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의 개선에 기여했다. 인적 자본의 축적을 기반으로 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개선이 사회의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철저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인구변천이 보여주는바 생활양식의 혁명적인 변화가 진전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제2차 산업혁명은 기계공의 시대에서 경영자의 시대로의 전환을 동반했다. 미국에서 출현한 포디즘에서 경제의 사령관은 경영자였다. 경영자들은 표준적인 부품과 표준적인 노동자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과학적 관리자로 기능했다. 이렇게 운영되는 포드 자동차 공장에는 영국의 전통적인 자동차 공장이라면 있었을 법한 최고의 숙련공인 마무리공은 사라졌다. 하루 5달러로 표현되는 포디즘의 효율적 임금체계의 출현은 제2차 산업혁명의 필연적 귀결이라기보다는 1920년대 미국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1917년 현실 사회주의국가로 소련이 등장하자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미국으로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복지 자본주의(Welfare Capitalism)적 이념이 득세하였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자본축적의 본고장이었던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혼돈과 전후 배상금 문제로 경제사정이 꼬여버렸기 때문에 유럽의 자본이 물밀 듯이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1920년대 미국에서는 대중소비사회라는 새로운 경제문명을 만들어냈지만, 그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음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드러났다.

잘 알려진 바 제2차 세계전쟁 후 출현한 자본주의 황금기는 제2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성취와 복지국가가 만들어준 시장적 기반이 결합하여 만개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사회 혁신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지면은 없다. 다만 그것은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게 된 것이라는 점만을 언급하여 둔다.

우리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스마트시티의 기술과 시설을 각종 VR 체험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더 스마티움’ 홍보관 모습. 사진출처=‘더 스마티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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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만개할 것인가?

슈밥이 지적한 제3차 산업혁명은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진행된 디지털 혁명이다. 1960년대까지 디지털 혁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 디지털 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1990년대 초에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붕괴했는데,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디지털 혁명을 급진전시키는데 기여했다. 첫째는 냉전 시대에 군사기술의 영역에 머물렀던 기술들과 자원들이 민간에 제공되었다. 군사통신으로 발전된 인터넷이 민간에서 광범하게 활용되게 되었으며, 최고의 엘리트들로서 NASA에 근무했던 물리학자들이 실직자가 되어 금융시장에 파생상품 개발자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둘째는 기존에 존재했던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로 칸막이된 세계가 아니라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표현되는 바 단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고, 그 구성원인 국가들은 우군과 적군이 없이 서로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태로 돌입한 것이다. 하나의 세계로 표현되는 장벽의 붕괴와 국가간 무한 경쟁을 자양분으로 디지털 혁명은 급속하게 진전되었다.

그 이래 현재까지 디지털 혁명은 후생수준을 개선할 적절한 조치 없는 기술혁신으로 전개되었다. 아니 복지국가의 퇴조 및 탈규제의 시대로 표현되는바 후생수준의 개악을 동반하는 기술혁신의 시대였으며, 양극화 문제는 그 귀결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이 양극화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증폭되어 정치적 급변의 자양분이 되고 있으며, 다보스포럼을 비롯한 다양한 친기업적 싱크탱크 그룹에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아젠다로 논의되게 되었으며,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출현하기를 바라는 열망이 피케티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21세기 자본>>이라는 그 두꺼운 책이 220만부나 팔렸겠는가?

제4차 산업혁명론은 이러한 상황 위에 다시 후생수준의 개선에 대한 적절한 조치 없는 새로운 기술혁신의 시대가 만개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현재 4차 산업혁명 전도사들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열 새로운 기술들을 열거하기에 바쁘지만, 누가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경제학적 밑바탕이 충실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현재 논의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혁명을 새로운 동력으로 한 네트워크 경제의 강화이다. 그런데, 데이터 혁명과 네트워크 경제는 현재 상태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만개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네트워크 경제는 잘 알려져 있듯이 네트워크 외부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네트워크 외부성도 외부성이다. 후생경제학이 가장 중요시 하는 제1 정리는 외부성이 없다고 한다면 시장경쟁균형은 파레토 최적이 된다는 명제이다. 물론 외부성이 있다면 시장경쟁균형은 파레토 최적이 되지 않는다. 외부성이란 시장의 실패를 낳는 원천인 셈이다.

네트워크 경제 시대에 들어서면서 장기침체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그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네트워크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투자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네트워크 플랫폼 사업들이 많은 혁신적인 서비스 상품들을 만들어 내고 또 광범한 호응을 얻고 있지만, 수익으로 잘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네트워크 외부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플랫폼 혁신자들은 기술혁신의 성과를 수익으로 제대로 환수하지는 못하면서, 많은 기술들을 낡은 기술로 만들어 시장에서 퇴장시키고 있다. 데이터 혁명을 새로운 동력으로 한 네트워크 경제의 강화는 실현될 미래이지만, 그것은 현재 상태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패자 많은 개선 즉 고용없는 성장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의 심화는 현재 상태의 지속으로서의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이 가져올 파국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사회 혁신 전략이 필요한가?

제1차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후 250여 년 동안 경제생활의 기본적 조직인 가족이나 기업의 존립기반은 급변했다. 현재 우리가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제도는 인구변천이 있기 전에 큰 틀이 형성된 제도여서, 인구변천 이후 새롭게 발생하고 있는 라이프 사이클 상의 문제에 대응하는데 취약하다. 이 때문에, 가족제도의 흠결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복지국가체계가 발전하였다. 물론 복지국가체계는 가족과 국가 양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50년 동안 기업은 새로운 경제주체로 크게 성장했으며, 각 개인들의 생계자원의 상당부분은 기업경제와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체계도 기업경제의 변천에 영향을 받고 있다.

현재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제2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급성장한 대기업 체제라 할 수 있다. 근대적인 대기업은 대중소비시장과 대량생산체제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19세기 후반에 태동하여 20세기에 만개한 제도이다.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기업의 규모는 커졌으며, 규모의 증대에 따라 발생하는 규모의 불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사업부제를 핵심으로 하는 관리 체계를 갖추었으며,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며 장기 존속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영자원과 기술경쟁력과 시장개발을 도모하는 장기적인 투자를 수행했다. 자본주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중산층은 대기업 체제의 발전과 더불어 두터워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기업 체제는 1990년대 디지털 혁명으로 존립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기업의 인지적 구조(cognitive structure)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투자의 외부성을 내부화하면서 기업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자물쇠 효과를 해소하기 위해 수직적 통합과 사업다변화를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기업의 경쟁력 유지 전략은 네트워크에 종속적이면서도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변화의 시대에는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기업이 비핵심 사업부문을 외주화나 비전형적 고용관계로 전환하고, 기업의 유연한 사업조정을 위해 고용의 유연화를 추구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은 기업의 존립기반의 변화를 반영한 기업의 대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흐름은 2010년대에 들어서도 더욱 심화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논의되었던 ‘기업가에게는 고용의 유연성을, 노동자에게는 고용의 안정성을 제공한다는’ 유연안정성 자본주의(Flexicurity Capitalism) 모형을 우리의 현실 경제에 맞는 모형으로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노사정 체제를 논의할 때보다 훨씬 절박한 문제가 되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디지털 경제가 가지는 네트워크 외부성의 문제는 시장경제시스템만으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투자와 고용에 있어 국가의 책무성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요 선진 국가들이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전략은 산업정책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이 Society 5.0을 구상하고, 독일이 Arbeiten 4.0을 구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장기 전략을 수립할 때는 사회적 공통자본의 형성, 사회적 임팩트 투자의 활성화, 사회적 경제의 지원 등 기업과 더불어 국가가 경제의 한 축을 운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적 자본주의(Social Capitalism)론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사회 혁신 전략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후생수준을 개선할 적절한 조치 없는 기술 혁신으로 진행된 디지털 혁명으로 양극화는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회 혁신 전략은 무엇일까? 슈밥의 책에는 모범답안이 들어 있지 않으며, 아직 어느 나라도 제대로 된 모범답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이 모범답안을 만들어 내는 선도국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42호(2017년 8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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