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07 16:54 (금)
빛 바랜 인생기행 2. 아 폴란드②
빛 바랜 인생기행 2. 아 폴란드②
  • 신성은 선임기자
  • 승인 2018.05.25 0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원의 지난한 역사, 바르샤바

윤영관전외무부장관.

나의 대학시절,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를 뒤로한 채 학과 교수님으로 부임하셨다. 신년 인사를 갔던 후배, 제자들에게 캡틴큐와 나폴레온(추억의 저가 양주)을 내놓으셨다. 다른 교수님들의 고가 양주와 무척 대비되었다. 내 기억엔 아주 자그마한 집이었다.

그러면서 교수님은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어르신들에게 인사드릴 시간이 없다”고 하셨다. 공부할 게 너무 많다고 하셨다. 그게 본인의 소임이라고 하셨다. 언뜻 들으면 과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진지해서 우리들도 무척 숙연해졌던 것 같다. 지식인의 소명, 사회적 의무, 교수로서의 연구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렬했다.

선비! 우리 역사에 긍정적인 의미의 선비가 있다면 바로 윤교수님 같은 분일 것이다.

그래선지 윤교수님이 외무부 장관이 되셨을 때 무척 놀랐다. 연구 외길만 가실 분이라고 생각해서다.

긴 사족이다.

이 글은 폴란드 이야기다. 그리고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분이 윤교수님이기 때문이다. 선비로써 불행했던 역사를 떨쳐내고 보다 현명한 강국 한국으로의 길을 찾아내려는 그의 눈에 비친 폴란드는 동병상련의 연민이 가득하다.

한국의 국제정치학은 갈 길이 여전히 멀다. 강대국의 학문인 국제정치학에서 한국의 국제정치학을 이루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교수 퇴임 길목에서 ‘외교의 시대’(2015.미지북스)를 출간했다. 부제가 ‘한반도의 길을 묻다’.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한국의 국제정치학자”가 우리의 길에 대한 묻고 답하기다.

그는 이 책 앞부분에서 폴란드의 불행한 근대 역사를 길게 설명한다.

근대이후 근대국가와 국제정치를 주도한 서구의 한복판에 위치하며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지도에서 사라지길 반복했던 폴란드의 역사가 우리나라와 너무나 비슷해서다.

폴란드는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적절한 외교로 무려 120여년간이나 지도에서 사라졌다.

폴란드는 러시아, 독일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위치했다. 약소국의 비애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16세기 중앙유럽 강국이었던 폴란드는 18세기 후반부터 무려 3차례나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대 강국에 의한 분할이 진행된다. 급기야 이런저런 이유로 야금야금 분할되더니 1795년, 지도에서 사라졌다, 무려 123년.

폴란드가 다시 독립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폴란드는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전국토가 다시 쑥대밭이 된다.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에도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고 무려 6백만명에 가까운 폴란드인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폴란드는 연합국의 승리로 독립을 맞게 되나 이번엔 승전국간 냉전속에서 소련의 간접적 지배에 놓인다.   

폴란드가 소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다시 진정한 독립국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지난 1990년. 이제 나름 약진하고 있다. 폴란드인들의 가슴속에 자리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다. 최근엔 항구도시 그단스크에서 출발, 동유럽 자유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자유노조운동 지도자 바웬사마저 정치 음모론에 휩싸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의 역사는 중국이라는 아시아 절대강국 중국과 후발 산업국가 일본, 러시아, 그리고 현대 세계 최강 미국이 가세한 동북아 국제정치구조에 치여온 약소국 한국의 역사와 많이 닮았다. 폴란드의 분할과 합병은 36년 일본속국으로 향한 구한말 우리네 길과 유사하다.

 

아름다운 현대식 빌딩과 오래된 문화유적이 어우러진 숲과 정원의 도시 바르샤바
아름다운 현대식 빌딩과 오래된 문화유적이 어우러진 숲과 정원의 도시 바르샤바

그 오랜 치욕의 역사는 폴란드인들에게 어떤 것일까?

폴란드 여행은 폴란드의 역사 복원에 대한 지난한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

폴란드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다. 과거의 흔적을 품은 많은 건축물과 거리들, 흥망성쇠를 거듭한 폴란드의 문화유산들은 고즈넉하게 여행객들을 맞는다. 여행객들은 “역시 유럽”이라며 화려하진 않지만 유럽의 문화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폴란드 대부분의 문화유산들은 제2차대전의 전화속에 폭파되거나 전소됐다. 살아남은 흔적들을 토대로 오랜 고증과 노력으로 복원시켜낸 것이다.

자세히 보면 복원의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지만 우리가 받는 인상은 다른 유럽처럼 현대와 잘 아우러져 과거를 담아낸 고풍스러운 거리들이다.

그들에겐 얼마나 큰 고통일까? 희열일까?

지금의 폴란드인들에겐 자그마한 자랑스러움이다.

독일 히틀러와 나찌에 의한 홀러코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복원해나간 그들의 손길엔 치유되기 힘든 고통이 함께 했을 것이다. 그들의 옛 영광을 재현했던 옛 수도 클라코우와 바르샤바의 복원현장에선 환희와 참담함이 교차했을 것이다.

동유럽 최초의 비공산당 연립정권을 창출해낸 폴란드인들의 현대 독립의 역사는 나름 깊이가 느껴진다. 여전히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하지만 차분하게 약진하는 노력과 발전의 열기가 감지된다.

바르샤바의 첫 인상은 “여기도 유럽이구나”라는 안도감이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자주 폴란드를 방문하게 될 나에겐, 그리고 유럽의 문화를 좋아하게 된 나에겐 무척 중요한 느낌이었다. 여느 선진 유럽처럼 잘 관리된 중세와 근대가 어우러진 건축물, 돌길이 함께한 거리들, 꽤나 익숙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원”을 가리킨다는 국가명 폴란드가 상징하듯 좁지 않게 펼쳐진 유럽, 특히 도시 가득한 나무와 정원, 공원이 인상적이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처럼 그리 크지 않다. 다른 곳처럼 옛거리가 잘 복원된 구도심(Old Town)이 있고 현대의 빠른 변화를 흡수한 거리들이 존재한다.

바르샤바 중앙역 주변은 바르샤바의 중심이다. 역앞 광장엔 소련지배시절 소련이 지은 문화과학궁전이 있다. 답답하게 치솟은 궁전엔 바르샤바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폴란드인들에겐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좋아할 리 없다. 그렇지만 여기가 바르샤바의 중심이다. 이 궁전과 광장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호텔 체인들이 둘레를 치고 있다. 최고급 백화점들도 집중되어 있고 폴란드 대기업와 다국적기업들의 오피스빌딩들이 즐비하다.

바르샤바 다운타운은 그리 넓지 않다. 다리에 힘이 있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면 바르샤바의 주요 문화유적은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다.

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 것은 의외로 좋은 기억이었다. 딱히 굉장한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원과 현대, 과거가 어우러진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폴란드가 사랑하는 인물들은 꽤나 많다.

피아노의 마술사 프리드리히 쇼팽,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 노벨상의 마리 퀴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등

평생 피아노곡만 쓴 것으로 유명한 쇼팽. 바르샤바엔 쇼팽박물관이 있다. 조국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쇼팽의 곡을 다 만나볼 수 있다. 크진 않지만 쇼팽의 과거를 현대문물의 편리함으로 조화시켰다. 그의 파리시절 세계적인 여류작가 죠르즈 상드와의 인연도 만나볼 수 있다.

바르샤바인들이 사랑하는 와지엔키공원엔 그의 동상이 있다. 그의 친구였던 헝가리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가 함께하고 있는 정말 고즈넉한 공원이다.

퀴리부인도 있다. 구시가지엔 퀴리부인 생가가 아주 자그마한 박물관으로 있다. 위대한 과학자인 그녀의 연구는 주로 파리에서 이뤄졌다. 그래선지 여기는 찾기도 힘들고 너무 작다. 다소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곳 주변은 올드타운이다.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폴란드 복원 문화유적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시장도 있다. 천천히 걷다 보면 바르샤바 올드타운 광장 주변이 왜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가 되었는지 느낄 수 있다.

넓은 정원을 자랑하는 빌라노프 궁전, 잠코비 광장, 바르샤바 대학, 바르샤바대학과 올드타운을 잇는 산책로 등을 걷는 것도 좋다.

삼성전자의 유럽 해드쿼터가 바르샤바에 있다. 옛 대우가 폴란드 자동차회사를 인수하고 포부를 밝혔을 때 폴란드인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그만큼 폴란드인들은 우리와 꽤 가깝고 다정한 느낌이다.

폴란드는 여전히 물가가 우리보다 낮다. 바르샤바 중심의 4성급 이상의 호텔도 10만원 정도부터 이용할 수 있다. 비수기엔 더 싸다. 우리네 역사와 가장 비슷한 슬픔을 간직한 유럽의 아름다운 약소국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그들의 문화를, 복원의 지난한 역사를 음미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따뜻한 추억을 선사한다. 참 좋다.

 

바르샤바 올드타운 광장. 전화로 소실됐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정교하게 복원된 바라샤바의 중심. 폴란드인들의 오랜 눈물과 땀이 베어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바르샤바 올드타운 광장. 전화로 소실됐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정도로 정교하게 복원된 바라샤바의 중심. 폴란드인들의 오랜 눈물과 땀이 베어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