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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인생기행 3. 아 폴란드③
빛바랜 인생기행 3. 아 폴란드③
  • 신성은 선임기자
  • 승인 2018.05.25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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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민주화의 상징 바웬사의 그단스크

폴란드 파트너에게 물었다.

폴란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그단스크”.

그 역시 그단스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왜 좋냐고 물었다.

발틱해 휴양지가 그단스크 주변에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또 참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고도 했다.

의외였다. 그단스크는 조선소로 유명한 곳이다. 산업도시인 줄 알았다.

폴란드의 포즈난에 출장중이었다. 파트너들이 주말에 가족 여행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그단스크행을 권했다. 폴란드의 평온한 분위기가 워낙 좋았던 탓인지 오히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럽역사에서 굵직한 해전의 명소인 발틱해를 보는구나 라는 기대 정도였다.

 

폴란드 최고의 관광도시 그단스크의 아름다운 운하
폴란드 최고의 관광도시 그단스크의 아름다운 운하

포즈난에서 유로기차를 타고 4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였다.

자그마한 기차역을 나오는 순간 앞에 펼쳐진 풍경은 포즈난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포즈난과 비슷한 인구 50만 정도(그단스크가 주도인 그단스크주의 인구는 약 150) 의 전형적인 유럽도시 였다.

그렇지만 걸어서 그단스크의 올드타운으로 들어오는 순간, 조금씩 가슴이 요동쳐 왔다. 약간 가슴이 시렸다. 어느 순간부터 어렸을 적 나의 가슴을 뛰게 했던 그런 풍광이 눈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시리다. 약간 가슴이 가렵게 뛴다.

난 엉뚱하게도 후쿠오카 인근 시골의 너무 깨끗한 길에서, 오키나와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가슴 시림을 느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애틋한 추억의 느낌이 우리 시골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그 시골에서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

아무튼 유럽의 도시 풍경은 우리네와 전혀 다른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단스크 올드타운 초입의 정겨운 옛 성당과 교회 건물들, 그리고 자그마한 시장과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걸으며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는데 어느덧 그단스크의 유명한 운하거리에 오자 엄청난 인파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이제 그단스크의 올드타운은 엄청난 인파로 마치 축제에 온 듯 했다.

루카스(폴란드 파트너)에 따르면 주말엔 유럽의 관광객들과 폴란드 내국인들이 그단스크를 많이 찾는다고 했다.

그단스크 올드타운 근처 한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역시 폴란드의 호텔들은 가성비 갑이다. 빨간색 벽돌로 만들어진 아담한 호텔이었는데 포근한 스파와 맛있는 조식까지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호텔이었다.

폴란드 맥주는 체코 맥주 못지않게 유명하다고 한다. 그단스크 올드타운 랜드마크인 세인트 마리 성당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맥주를 들이키는데 그 편안함이 잊혀지질 않는다. 올드타운 거리와 운하 인근엔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이쁘고 옛 향기 가득한 이 거리에서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은 큰 즐거움 이었다.

이튿날엔 소포트, 그드니아 지역으로 향했다. 폴란드 최고의 휴양도시중 하나다.

해변가로는 유명호텔들이 가득하다. 바닷물이 깨끗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흠이다. 그렇지만 해변의 길이가 무척 길고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스팟들이 꽤 있다.

바다를 거닐다 다시 그단스크로 돌아오는 길은 정기 여객선을 이용했다. 어느덧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시간은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인근 바닷길로 다시 운하를 통해 그단스크 시내로 들어오는 그 뱃길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크고 작은 조선소들이 운하로 들어오는 길목에 가득했다.

폴란드 그단스크는 바로 20세기말 고르바초프가 열어 젖힌 페레스트로이카의 엄청난 파고를 폴란드의 실질적인 독립으로 이끌고 동유럽 자유화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바로 그 폴란드 자유연대노조의 출발지이다.

레흐 바웬사(Lech Walesa).

그는 1983년 자유연대노조를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대통령까지 역임한 성공적인 노조운동가이자 정치가다.

루카스는 그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바웬사의 정치적 역향력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다만 그의 과거 행정과 관련, 적지 않은 부정적 루머들이 많다고 한다.

바웬사는 바로 이곳 그단스크-레인조선소의 노동자였다.

1943년 수도 바라샤바와 그단스크 사이, 포포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기계공훈련을 마친뒤 기계공으로 조선소에 취업했다. 이어 군복무를 마친뒤 그단스크에 정착, 무려 8명의 자녀를 낳으며 노동운동가로 성장한다.

그는 지난 1980년, 폴란드 정부의 노동자 단체해고 사건에 반발하면서 지금은 최고의 휴양지로 성장한 그단스크-소포트-그드니아 지역의 총파업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미 노조활동으로 해직된 상태였는데 철제 울타리를 넘어 조선소에서 자유연대노조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바웬사는 이후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던 자율 노동조합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유명한 자유노조(연대노조가 더 정확한 표현. 솔리다르노시치).

더욱이 이때 폴란드가 동유럽 노조운동의 핵으로 부상한데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힘이 컸다. 그는 옛 수도 클라코우의 주교로 활동했던 대표적 반체제인사였는데 1978년 교황으로 선출됐다. 교황선출 이듬해 폴란드를 방문, 고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특히 바웬사가 자유연대노조를 주도하던 1981년, 바웬사가 바티칸으로 교황을 방문, 무려 30분간이나 독대하면서 폴란드 자유연대노조의 대표성은 힘을 더했고 폴란드의 자유화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초기엔 이 자유노조가 워낙 막강해 폴란드 정부는 바웬사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타협을 희망했다.

바웬사는 매우 실용적인 지도자였다. 그러나 강경파와의 노선다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결국 폴란드 정부는 강경파의 공산당체제와 반소련노선은 정부의 반격을 일으켰다. 198112.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웬사를 체포했다. 이때 공산당 서기장이 명한 보이치에프 야루젤스키다. 그는 강경 탄압으로 일관했으며 그는 추후 소련의 직접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와 브레즈네프 서기장과의 설전은 큰 화제였다.

바웬사는 가택연금됐다. 당시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희망의 길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사회주의체제에서 노동문제를 잘 분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1989년 소련의 몰락과 함께 동유럽 자유화 시절, 폴란드가 가장 빠르게 자유정부를 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그해 야류젤스키는 간선으로 초대대통령에 올랐으나 자유노조의 반발과 지방선거 실패로 1990년 단 1년만에 사실상 권력을 내놓게 된다.

바웬사는 이후 헌법개정으로 임기 5년 직선제 개헌을 일궈내고 2대 대통령에 선출된다.

그는 3대 대통령선거에서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결국 낙선하고 만다.

더욱이 그는 대통령재임시절 자유연대노조의 노선과 달리 오히려 복지정책 축소와 노동권을 축소하는 정책을 실시해 큰 저항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당초 실용주의 노선이었던 그의 정책 일관성 탓인지 평가는 엇갈리나 어쨌든 그의 이력에 비해 대통령으로선 실패했다. 그는 최근에도 그단스크에 재단을 설립하고 정치적 영향역을 행사하지만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많은 관광객들이 늦은밤까지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그단스크의 아름다운 야경.
많은 관광객들이 늦은밤까지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그단스크의 아름다운 야경.

루카스의 말대로 “그는 폴란드인의 기대를 저버렸다”.

폴란드의 조선사업은 매우 강력했다. 그 덕분에 조선소 노조는 막강한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바웬사의 이 자유연대노조는 동유럽 자유화 물결의 상징으로, 그리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위대한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폴란드 조선사업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의 엄청난 성장에 자리를 내주고 몰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배를 타고 바라보는 그단스크 조선소의 야경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불경기에도 나름 꽤 많은 선박들이 야근작업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최근 한국의 조선사업도 불경기를 맞고 있다.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다. 우리의 상황과 맞물려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바다길에서 운하쪽으로 향하는 조선소 옆길은 생각보다 무척 길었다.

이어서 아름다운 불빛이 가득한 올드타운 옆 운하에서 내렸다.

그리고 가슴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올드타운 운하길 옆 카페거리는 우리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여행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인파가 가득해 걷기조차 불편했지만 이 아름다운 카페거리는 평생 잊지 못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연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왔다. 물론 내 파트너 역시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그래선지 우리의 카페 힐링을 짧았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단스크 올드타운, 특히 아름다운 불빛과 너무 이쁜 카페, 레스트뢍, 풍차가 여유롭게 돌아가는 이 거리에 꼭 한번 가보길 권하고 싶다.

정말 평온하고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했던 그단스크의 낮, 너무나 아름다운 카페와 레스토랑이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한 단연 최고로 평가받을 만한 거리 야경.

그단스크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큰 즐거움이었다.  

그단스크! 시간이 된다면 연인 혹은 가족과 가길 희망한다.

그리고 바웬사의 자유노조가 함께한 그단스크-소포트-그드니아 지역의 해변가를 즐기는 건 정말 매력적인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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