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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소송제(ISDS), 사실상 무력화시켜야 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S), 사실상 무력화시켜야 했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0.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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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프타 예비 개정안처럼 국내 사법시스템이나 행정적 구제 절차를 거치도록 했어야
지난 9월24일 정상회담에서 한미FTA 개정안에서 서명하는 모습 -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 9월24일 정상회담에서 한미FTA 개정안에서 서명하는 모습 - 청와대

지난 8월27일 미국과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예비 개정안에 합의했다. 개정 협상을 벌인지 거의 1년만이다. 이 개정안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로 불리는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이 사실상 폐지 내지 무력화한 것이다.

기존 나프타 제11장은 투자유치국 정부의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에 대해 투자자는 투자유치국 법원이 아니라 변호사 3명으로 이뤄지는 중재위원회(tribunal)에 소송을 걸 수 있게 해놨다. 소송 절차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등의 규정에 따르게 돼 있다. 변호사 2명은 당사국이 각각 1명을, 나미지 1명은 당사국 간 합의를 통해 선임하고, 중재는 한 번의 결정으로 끝이 난다. 취지는 투자유치국 정부의 사법 시스템의 중립성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투자자의 본국이 외교 마찰을 우려해 투자자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중립적 기구를 둔다는 것이다.

현실은 이런 제도의 취지와 사뭇 달랐다. 나프타 발효 이후 25년 동안 총 56건의 소송이 있었다. 이 중 54건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환경․건강 등과 관련된 법을 공격하는 소송이었다. 소송을 건 주체는 멕시코가 아닌 미국이나 캐나다 투자자들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사법 시스템이 가장 선진적인 축에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현실은 ISDS가 두 나라의 사법 시스템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음을 시사한다. 56건의 소송을 통해 투자자들은 3억9200만달러(약 4400억원)를 챙겼다. 39건의 소송을 당한 캐나다 정부는 2억1500만달러를 보상했고, 소송 비용으로 8천만달러를 썼다.

트럼프, 나프타 개정안에서 ISDS 사실상 폐지

이런 문제 때문에 지난해 10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겸 유엔 선임자문관,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대 교수 겸 전 노동부장관 등 200명이 넘는 경제학․법학 교수들이 나프타에서 ISDS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트럼프도 다른 이유에서 ISDS를 좋아하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미국 예외주의’의 잦은 걸림돌이 된 것처럼, ISDS는 미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지난해 10월 'ISDS가 미국 밖에서 운영되는 기업들에 일종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데, 왜 미국 밖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 제공해야 하느냐?’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기업의 해외 아웃소싱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는 것이다,

알려진 조약에 근거한 1987~2016년 투자자-국가 소송 추이 - UNCTAD
알려진 조약에 근거한 1987~2016년 투자자-국가 소송 추이 - UNCTAD

지금까지 흘러나온 정보들을 종합하면, 나프타 예비 개정안에서 ISDS는 사실상 무력화했다. '공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트럼프가 발휘한 '역설'인 셈이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은 직접수용(direct expropriation),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 위반으로 명확히 한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에서 ISDS 소송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서로를 향한 두 나라 투자자의 ISD가 빈번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진전이다. 멕시코의 경우, 국내 법원과 행정적 구제 절차를 최소 30개월 거치도록 했다. 이 절차를 거쳐야 ISDS에 따른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했다. 멕시코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옥의 티’도 있다. 부분적으로 민영화한 멕시코 석유와 가스 분야를 포함해 통신, 에너지 생산, 인프라 부문에 대해서는 직접수용만이 아닌 간접수용 등을 포함해 이전과 같은 폭넓은 투자자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멕시코가 다른 나라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면 미국 투자자에게도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댜. 그렇다고 해도 나프타에서 ISDS가 사실상 폐지되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미국 재계는 '투자자 권리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남아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나프타 개정 협상의 성패는 이 문제보다는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 부과 등 무역구제 조치의 적법성을 검토하는 양자 패널(양국 무역 전문가들로 구성) 구성 등을 담은 나프타 제19장을 어떻게 바꿀지와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미국과 멕시코는 제19장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가장 빈번한 소송 제기자의 모국 - UNCTAD
가장 빈번한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의 모국 - UNCTAD

한‐미 FTA 개정안은 ISDS 남용 제한에 그쳐

이런 내용과 견줘보면, 지난 9월24일 한미 양국 대통령이 서명한 한‐미 FTA 개정안은 매우 미흡하기만 하다. 정부는 “ISDS 소송 남발을 제한하고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을 확보”한 것을 협상의 핵심 성과로 내세운다. '자동차 분야에서 내주고 ISDS에서 양보를 얻었다’는 식의 분석도 따른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대한 평가에 해당한다. 미국과 멕시코 간 나프타 개정 합의가 이뤄지기 훨씬 전인 지난 3월26일 한‐미 FTA 개정안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는 점을 감안해도 평가는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는 지난해 3월부터 ISDS를 나프타 개정 협상에서 사실상 폐지 내지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사를 내비쳐 왔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 뭘 양보하고 얻어낼 필요가 없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내세우는 기존 ISDS를 개선하는 성과는 다음과 같다. △다른 협정을 통한 ISDS 절차가 진행된 사안에 대해 중복 소송 제기 금지 △모든 청구내용에 대한 투자자 입증 책임의 명확화 △‘설립 전 투자' 개념을 허가나 면허 신청 등 투자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를 한 경우로 한정 △투자자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최소기준 대우(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충분한 보호와 안전) 위반이 아님을 명확화 △내국민 대우에 대한 해석에서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에 기초한 구별을 포함 등이다. 공공복지 목적을 위한 정책권한을 확보하면서 ‘투자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전보다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부적이고 복잡하다. 이보다는 나프타처럼 소송의 대상을 직접수용, 내국민 대우와 최햬국 대우 부여 위반으로 명확히 한정하는 게 훨씬 더 간단했다. 하지만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옛 에버랜드) 합병 과정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이것이 어려웠을 수가 있다. 이로 인한 손해는 직접수용이 아니라 이에 버금가는 간접수용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았다.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2018년 합병 과정에 대한 개입을 문제로 삼아 이미 두 건의 ISDS가 발동됐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엘리엇이 한‐미 FTA를 위반했다며 7억7000만달러(약 8650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한‐미 FTA가 근거로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두 달 뒤인 지난 7월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털 매니지먼트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조치로 최소 1억7500만달러(약 1880억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직접수용으로 대상을 제한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면, 협상 전략은 멕시코의 경우처럼 ISDS 소송을 제기하기 전 국내 사법시스템과 행정적 구제 절차를 일정한 기간 동안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게 필요했다. 하지만 협상의 결과는 ISDS의 뼈대를 흔들기보다는 남용을 막는 수세적인 모습이 전부였다.

국내 사법 시스템을 먼저 거치도록 하는 절차 뒀어야

지금까지 정부는 앞의 두 건을 포함해 모두 5건의 ISD 소송을 당했다. 첫 번째는 한‐벨기에 FTA를 근거로 2012년 11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며 제기한 5조3500억원대 소송이다. 당시 외한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론스타가 되레 적반하장으로 나선 것이다. 소송은 지난 2016년 최종 변론을 끝으로 마무리됐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2015년 5월 아랍에미리트(UAE) 국영석유투자회사(IPIC)의 네덜란드 자회사인 하노칼이 냈다. IPIC는 하노칼 등 2개 회사를 통해 1999년 현대오일뱅크 주식 50%를 사들인 뒤 2010년 현대중공업에 1조8381억원을 받고 팔았다. 세무당국은 하노칼에 매매대금의 10%인 1838억원을 원천 징수했고, IPIC에도 법인세·증권거래세 등 603억원을 과세했다. 이에 하노칼 등은 한국이 네덜란드와 맺은 이중과세방지협정을 근거로 투자 이익에 대한 과세는 부당하다며 제소했고, 한국 법원에도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5년 8월 하노칼의 패소를 확정했고 하노칼은 이듬해 7월 ISD를 취하했다.

세 번째 ISD는 이란의 가전회사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가 2015년 9월 한·이란 투자보장협정의 공정 및 공평한 대우 원칙 등을 위반해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것이다. 엔텍합은 2010년 4월 자산관리공사(KAMCO)가 진행한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같은 해 11월 보증금 578억원을 내고 본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엔텍합이 인수대금을 깎아달라고 주장하며 대금지급 기일을 넘기면서 계약은 이듬해 5월 해지됐다. 한국 법원은 2011년 10월 엔텍합이 대우일렉에 미지급한 외상금 3000만 달러를 갚되 계약 보증금은 돌려받으라는 조정안을 냈지만 자산관리공사가 거부하며 ISD로 이어졌다.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중재판정부가 내린 패소 판정에 따라 한국 정부는 다야니가 청구한 935억원 가운데 약 73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중재 판정에 불복해 영국 고등법원에 중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초라한 한‐미 FTA 개정의 성적표 냉정한 평가 필요

애초 한‐미 FTA에 ISDS를 포함하는 것에 찬성한 사람들은 이 제도가 오히려 한국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사드 배치를 이유로 중국이 가한 부당한 경제보복을 받는 과정에서 한‐중 FTA에 포함된 ISDS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단심의 중재절차를 활용하는 ISDS 절차는 국내 사법 시스템을 제쳐놓는다. 나프타 아래에서 미국이나 캐나다의 사법 시스템이 무력화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이 핵심이다. 앞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네덜란드, 영국, 독일, 캐나다 등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한미FTA 발효 전후 대미상품수지 추이(꺽쇠 안은 전년 대비 증가율) - 한국무역협회
한미FTA 발효 전후 대미상품수지 추이(괄호는 전년 대비 증감액) - 한국무역협회

한‐미 FTA 발효 이후 자동차, 전기기기, 플라스틱, 고무, 철강 등 대미 수출 상위 8대 품목은 한‐미FTA의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들 품목 중 2016년까지 한미 FTA 5년차 실적 평가에 따르면 자동차를 제외한 전기전자 철강(관세율 4~6%, 10년 유예) 등의 상위 품목은 이미 무관세 또는 저관세 또는 장기(10년) 관세 유예이기 때문에 FTA와 무관한 자연시장증가율에 해당했다. 발효 전 5년과 발효 후 5년(2011~16년)을 비교한 결과를 봐도, 전체 대미 수출증가분의 17.2~36%만이 FTA로 인한 것이었다는 분석을 정부 스스로 내놓을 정도다. 반면 수입 증가분에서 FTA가 설명하는 비중은 36.5~47.4%에 이른다. 한‐미 FTA로 인한 수출 증가 효과는 조금이고, 수입 증가 효과는 컸다는 얘기다. 한국 수입시장 내 미국의 시장점유율이 2011년 8.5%에서 2016년 10.7%로 2.2%포인트 높아진 반면, 미국 수입시장 내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2.6%애서 3.2%로 0.6%포인트 증가에 그친 것도 그 결과다.

한‐미 FTA가 있든 없든 미국은 일방적인 무역구제를 추구한다. 민주당 정부나 공화당 정부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프타 제19장과 달리 한-미 FTA 제10장의 반덤핑과 상계관세 조의 제3항은 "(부과 관련 절차 정도만을 규정한 제1항과 제2항을 빼곤)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반덤핑 또는 상계관세 조치에 대하여 당사국에게 어떠한 권리나 의무도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무역구제위원회'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나프타처럼 부과 조치의 적법성을 따지는 양자 패널 기구가 아니라 단지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기구다. 이번 개정 협상에서도 그리 나아진 건 없다. 미국이 무역구제 조치를 실시할 경우, 현지실사 절차를 규정하고 덤핑과 상계관세율 계산방식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는 정도다. 기존 제1항과 제2항을 약간 보완했을 뿐이다.

게다가, 트럼프의 막가파 식 무역보복 위협을 감안한도 해도, 애초 저관세 부과 대상으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의 대상도 아닌 철강 부문에서 이전 수출물량의 70% 쿼터를 확보한 것이 성과일 수는 없다. 성과라면 농산물 분야의 추가 개방을 방어한 것 정도다. 나프타 개정안에서 보이듯, ISDS는 트럼프 자체가 사실상 폐지하려는 방향을 잡고 있었다. 이에 비춰보면 한‐미 FTA 개정안의 ISDS 성적표는 몹시 초라하다. 정부 스스로 지나친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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