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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유럽 우파 포퓰리즘 이해하기
트럼프와 유럽 우파 포퓰리즘 이해하기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11.08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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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 자리한 글로벌화가 낳은 경제사회적 불안정
버려짐, 배신, 방기, 평가절하의 감정 이해해야

미국 중간선거가 끝이 났다. 흔히들 우파 포퓰리즘으로 부르곤 하는 ‘트럼프 현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왔다. 유럽에서 우파 포퓰리즘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 스웨덴에서도 발흥하고 있다. 우파 포퓰리즘에는 ‘반이민’과 외국인 혐오로 드러나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과도한 민족주의라는 꼬리표가 단골로 따라다닌다. 그렇기에 반민주적이고 반공화적인 성향이 짙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존하는 성향도 특징이다. 하지만 좌파 포퓰리즘도 있다. 19세기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인민당 운동이 그것이다. 이 운동은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미국 상원에 대한 직접투표, 여성 참정권 운동, 지역농민을 위한 신용기관 설립 등을 추진했다. 극심한 불평등과 대은행과 철도회사들의 착취적인 관행에 맞섰다. 굳이 따지자면 민주당 출신으로 무소속으로 남아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런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좌파 성향이든 우파 성향이든 포퓰리즘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강력한 엘리트 계층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분노가 그것이다. 일상에 대한 구조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반기성 운동의 형태를 띠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이 분노를 자극하는 원천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한 권의 책과 두 개의 연구보고서는 이를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우파 포퓰리즘의 발흥에는 글로벌화가 낳은 경제적 불안정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파 포퓰리즘의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외국인 혐오주의자도, 성차별주의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 겪는 버려짐과 방기의 경험이 ‘비교 평가절하’를 통해 외국인에게 투영되는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자기 땅의 이방인들(Strangers in Their Own Land)>

미국 루이지애나 공화당 지지자들의 방문 경험을 담은 책 '자기땅의 이방인들' 의 한국어 번역본 표지.
루이지애나 주 공화당 지지자들의 방문 경험을 담은
'자기땅의 이방인들' 의 한국어 번역본 표지.

2016년 출간된 이 책은 국내에 번역돼 있는데, 부제가 ‘미국의 우파는 무엇에 분노하고 어째서 혐오하는가’이다. 저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버클리대학의 유명한 여류 사회학자였다. 평생의 민주당 지지자인 그는 궁금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방의 해법을 왜 거부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우파의 심장부인 미국 남서부 멕시코만에 인접한 루이지애나 주를 찾았다. 2011~2016년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40대 이상의 백인이자 기독교인인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주민들이었다. 그 중 40명은 티파티운동의 지지자였다.

그들은 호기심 속에서 친절하고 때로는 즐겁게 그를 맞이했다. 편협하지 않았고, 좋은 일자리, 깨끗한 물, 어려운 사람에 대한 부조 등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공동체, 공정, 역동성, 힘든 일의 가치 등 미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그들에게 공동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생각하는 광장이라기보다는 집과 교회였다. 좋은 교회에 다니는 게 좋은 학교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소중했다. 민간 부문에서 벌어지는 남용보다는 공공 부문의 실패를 더 중하게 여기는 특징을 보였다. 소득계층의 사다리에서 최상층과 그 이하의 차이보다는 중간층과 그 이하의 차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정직한 노동에 대한 정직한 보상을 요구하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경험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감정에 기반한 깊은 내면의 화법이다. 치욕, 배신, 버려짐을 동반한 감정의 이야기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성경을 읽는 남부 사람들이 무지하고 후진적이며 촌뜨기에다 실패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를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그리고 아마 뚱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한 여성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상처받은 감정을 위로하는 “각성제”였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미국 노동자와 약속’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개 이상의 기업과 사용자협회를 통해 향후 5년 간 380만명 이상의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 기회를 창출하겠다는 이 계획을 발표하며 트럼프가 향한 시선은 바로 루이지애나 주와 같은 남부 공화당 지지자들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트럼프는 미국 남부 촌뜨기들에게 여전히 “각성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청정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석유회사 시추작업으로 오염되는 자신들의 땅을 보면서도 이 회사가 후원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저자가 품었던 “거대한 역설”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해안도시 뺨치는 새로운 시설과 고임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석유회사를 통해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번영감을 느낀다는 얘기다. 이런 감정의 자기이해는 발전이 낳은 문제를 경감하기 위해 연방정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될 때 치욕감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막혀 있는 공감의 벽을 기어오르자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여사는 해안도시들은 가장 많은 석유를 소비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낙후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공감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공감의 벽을 기어오르는’ 도전은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남남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지는 국내 상황에서 더 절실해 보인다.

<포퓰리즘 반란의 경제사회적 뿌리 : 2016년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지>

2016년 대선 도널드 트럼프 승리의 경제사회적 뿌리를 파헤친 연구보고서 표지.
도널드 트럼프 승리의
경제사회적 뿌리를 파헤친 연구보고서 표지.

‘새로운 경제사상을 위한 재단’에서 지난 10월 발표한 이 보고서는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명예교수 토머스 퍼거슨 등이 공동 연구한 결과다. 보고서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외국인 혐오와 같은 ‘개탄스러운 것들'들의 쇄도만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보는 통념은 틀렸으며 적어도 심각하게 불완전하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초기 공화당 예비경선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국인 혐오의 선동에 설득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오히려 공화당 전당대회, 총선, 대선 모든 단계의 투표 결과를 분석하면서, 이 보고서는 트럼프의 경제적 호소, 특히 무역과 이민에 대한 그의 독특한 포퓰리즘적 호소를 성공의 중심에 놓는다. 공화당 기성정치권을 제치고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택된 핵심 이유도, 2012년 버락 오바마에게 투표했거나 기권한 사람들 중에서 많은 수가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핵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 부유층에 대한 비판과 사회보장, 메디케어, 인프라 투자, 일자리와 직업훈련에 대한 강조는 민주당이 누려온 이점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했다고 말한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미국 민주당에 매우 시사적이다. 보고서는 2016년 대선주자로서 힐러리 클린턴이 적극 주창했던 정체성(indentity)의 정치를 되풀이해선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없음을 내비친다. “민주당은 인종과 성의 다양성을 포괄하면서 우호적인 인구 변화에 기대야 하는가? 아니면 일자리, 임금, 건강보호 등에 대한 좌파 성향의 경제정책을 통해 백인 노동계층 유권자들을 다시 획득해야 하는가? 이민과 국제무역을 주의깊게 다루면서 후자의 전략을 취하는 것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발견한 사실이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의 부흥을 관찰하면서 말한 것처럼, 우파 포퓰리즘의 발흥에는 ‘군중(mob)과 자본의 동맹’이 자리한다. 세금 신고도 하지 않는 트럼프가 제약업계의 반발에도 해외 17개국의 의약품 가격 인덱스를 적용해 미국의 비싼 약값을 내리려는 시도를 하거나, 해외에 나간 미국계 다국적 기업들의 반대에도 미‐중 무역전쟁을 치르는 모습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부유층에 포획되지 않은’ 트럼프를 발견한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당은 ‘월스트리트에 포획돼 있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의 충고를 따를 경우 시작은 아마 여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으로 방기된 이들에 대한 방문(Return to the politically abandoned)>

독일과 프랑스 우파 포퓰리즘 근거지들을 방문한 결과를 담은 연구보고서의 표지.
독일과 프랑스 우파 포퓰리즘 근거지들을 방문한 
연구보고서의 표지.

지난 9월 발표된 이 연구보고서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우파 포퓰리즘 근거지들에서의 대화’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우파 포퓰리즘을 주도하며 약진하고 있는 ‘독일의 대안’(AfD)와 ‘국민전선’(FN)의 근거지의 500가구를 방문해 나눈 인터뷰를 묶어 정리한 연구보고서다. 지난 2007년 설립된 독일의 비영리 독립 싱크탱크인 ‘진보하는 중심(Das Progressive Zentrum)’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치운동인 ‘앙마르슈’에 관여한 프랑스 캠페인 광고회사 리에지 뮬러폰(Liegey Muller Pons)과 제휴해 발간됐다.

보고서는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들(이민과 경제)과 일상에서 직면하는 도전들(불안정한 노동조건, 돈 걱정, 악화하는 사회 인프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사이에 상당히 큰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뷰한 사람들은 언론과 정치가 일상에서 부닥치는 도전들을 ‘시민적 의제’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깊은 불만을 갖고 있으며, 이는 불공정하고 불이익한 대우를 받는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렇게 스스로가 겪은 평가절하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른 사람들, 특히 이민자들을 폄하하는 행위를 낳는다고 설명한다. 이런 ‘비교 평가절하의 논리’는 내재적인 외국인 혐오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파 포퓰리즘이 즐겨 제기하는 의제들, 이를테면 유럽의 이슬람화, 유럽연합 회의론, 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강조과 같은 의제들은 인터한 이들 속에서 뚜렷하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문제가 아닌 해결의 일부로 유럽연합을 간주하는 경향이 자주 나타났다. 이를 통해 ‘독일 최우선!’과 같은 접근을 포함하는 민족주의 구호들은 역설적으로 지지자들이 겪는 일상생활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난민 위기 해결과 외교정책 성공을 위한 조치들이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지역 차원에서 일상의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정책과 투자를 소홀하게 취급한다고 믿는다는 인터뷰 내용도 눈길을 끈다. 난민이나 외교정책 문제가 저임금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경제적 압박과 공공서비스 격차 확대에 소홀하게 대처하도록 만든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자신들이 방기됐다는 강한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보고서가 내놓는 결론은 이렇다. ‘정치적 방기’가 존재하는 영역들에 대해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역 주민과 연대의 강화 △동등한 기회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인프라 구축 △정당의 존재성을 지역 차원에 이르게 하는 구조의 구축 등을 제안한다. 혹실드가 <자기 땅의 이방인들>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 남부 공화당 지지자들의 내면에 간직된 ‘치욕’, ‘배신’, ‘버려짐’과 같은 감정은 독일과 프랑스의 우파 포퓰리즘 지지자들에게서도 ‘평가절하’와 ‘방기’같은 인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유럽 전역으로 확대해 본다면, 경기 침체의 상황에서도 충분한 재정적자를 편성할 수 없을 정도로 옥죔을 당하는 이탈리아나 그리스 등에서 느끼는 광범위한 박탈감, 버려짐은 그 규모나 범위에서 훨씬 더 클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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