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펀딩받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방크그룹 회장으로부터 20억달러(약 2조2500억원)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했다고 지난 11월20일 밝히면서 관련업계가 떠들썩하다. 해당 투자금은 국내 인터넷 기업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다. 2015년 6월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투자인 10억달러(약 1조1천억원)의 두 배에 이른다. SK그룹의 11번가, 신세계그룹의 ‘쓱’(SSG) 등이 최근 각각 5천억원, 1조원의 신규 자본조달을 하면서 전자상거래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소프트방크 쪽은 쿠팡의 기업가치를 90억달러(약 10조원)로 평가했다고 한다. 2015년 6월 10억달러 투자 당시 평가한 쿠팡 가치는 50억달러였다. 3년 만에 거의 두 배가 오른 셈이다. 시가총액 6조4천억원 안팎의 국내 최대 유통기업 롯데쇼핑보다 무려 60%나 높다. 연간 거래액 8조원 수준인 11번가의 2조7천억원보다 4배나 높다.
쿠팡의 현실, 누적 영업손실 1조7458억원으로 자본 잠식
쿠팡의 올해 연간 거래액은 5조원 안팎으로 11번가보다 훨씬 적다.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손실은 1조7458억원이나 되고, 2015년 5470억원, 2016년 5600억원, 2017년 6388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해 왔다. 그런데도 미래의 기업가치가 90억달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평가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여러 근거가 제시된다. 하나는 매출액 급증세다. 2014년 3485억원에서 2015년 1조1338억원, 2016년 1조9159억원, 2017년 2조6814억원, 2018년 5조원으로 급상승하고 있다.
사업방식의 차별성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쿠팡은 상품 정보를 네이버에 제공하지 않는다. 방문객 대부분은 쿠팡 앱과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온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팔 물건을 직접 사들여 창고에 보관하면서 소비자에게 직접 ‘로켓배송’을 통해 전달한다. 영업손실의 상당액도 여기서 비롯한다.
향후 발생하게 될 규모의 경제도 감안될 수 있다. 매출액이 늘어도 물류네트워크 구축에 드는 투자는 초기에 비해 줄어들 수 있다. 매출액 증가세와 영업손실 증가세가 비례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미 엿보인다. 비용 측면에서 물류네트워크 운용의 효율성도 개선될 것이다. 이전에는 차량 당 밤 11시 이전에 주문하면 아침 7시까지 배달하는 로켓배송 주문이 10개였는데, 15개나 20개로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적당한 때에 매출액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배송료를 올릴 수도 있다. 쿠팡의 하루 평균 배송상자 100만개를 기준으로 배송료를 500원 올리면 연간 1825억원의 수입이 추가로 발생한다.
기존 영업손실을 줄여나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다. 창고 보관과 로켓배송은 경쟁업체와는 다른 쿠팡만의 추가비용 발생 요인이라는 점은 변화하지 않는다. 오롯이 매출 증가와 이에 따른 규모의 경제에 기대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사업자들을 경쟁에서 패배시키면서 시장점유율을 왕창 끌어올려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아이폰 매니아’층처럼 쿠팡 매니아층을 확보해 고객 1인당 평균수입을 늘려가는 전략을 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저렴․편리․신속․정확’한 전자상거래와 배송서비스만이 아니라 또 다른 서비스의 제공이 따라야 할 것이다. 쿠팡 직원의 40%가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얘기도 들리지만, 새로운 많은 추가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쿠팡의 기업가치 평가, 주당 프리미엄 44만원에서 830만원으로 18.7배↑
한 마디로 장밋빛 전망을 하기가 어렵다. 90억달러라는 미래 기업가치가 ‘뜬구름 잡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쿠팡의 재무제표를 보면서 확인해 보자. 지나친 낙관이 도사리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쿠팡은 이번 20억달러 투자 이전까지 세 차례의 자금조달(펀딩) 라운드를 거쳤다. 1라운드는 2014년 5월 세계 굴지의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1억달러(2014년 말 종가기준 약 1173억원)를 받았다. 2라운드는 2014년 12월 글로벌자산운용사 블랙록으로부터 받은 3억달러(2014년 말 종가기준 3621억원)이다. 3라운드는 2015년 6월 소프트방크의 10억달러(2015년 말 종가기준 1조705억원)이다.
세 차례 펀딩 라운드를 하기 전인 2013년 말 쿠팡의 자본금은 64억1050만원(12만8290주), 주식발행초과금(할증 프리미엄, 이하 주발초) 567억3957만원이다. 1주당 액면가는 5만원, 프리미엄 44만2230원이 붙은 셈이다. 그런데 펀딩 1라운드를 거친 뒤인 2014년 말 한 차례 유상증자를 거쳐 자본금 85억4450만원(17만890주), 주발초 2045억7890만원으로 바뀐다. 1주당 프리미엄이 119만7138원으로 2.7배로 치솟는다.
펀딩 2, 3라운드를 거친 뒤인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한 차례 유상증자를 거쳐 2015년 말 자본금 94억6575만원(18만9315주), 주발초 1조1249억원으로, 2016년 말 자본금 99억1600만원(19만8315주), 주발초 1조5744억원이 된다. 1주당 프리미엄은 2015년 말과 2016년 말 각각 594만1950원, 793만8890원으로 급등한다. 2014년 말과 견주면 각각 5.0배, 6.6배이고, 2013년 말 대비 각각 13.4배, 18.0배로 치솟은 셈이다. 2017년 말에는 한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 100억200만원(20만35주), 주발초 1조6606억원이 된다.
흥미롭게도, 세 차례 펀딩 라운드를 거치면서 쿠팡에 흘러든 투자금 합계와 주발초 증가액 합계는 거의 같다. 투자금 합계는 13억달러(약 1조5500억원), 주발초 증가액 합계는 1조6039억원이다. 세 차례 투자금이 프리미엄 성격의 주발초에 거의 모두 반영돼 있는 셈이다. 2017년 말 누적 영업손실이 1조7458억원으로 자본금과 주발초를 더한 총자본금 1조6706억원을 이미 잠식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데도, 주발초는 계속 증가하는 ‘비이성적 낙관’으로 일관해온 것이다.
세 차례 투자금 13억달러(1조6천억원)가 주식발행초과금(프리미엄)에 모두 반영
이런 식의 기업가치 평가 행태는 벤처캐피탈을 포함해 사모펀드업계에 전반에 만연돼 있는 이른바 ‘투자 후 기업가치 평가’(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 post‐money valuation) 관행과 분리하기 어렵다. 이 관행은 가장 최근의 펀딩 라운드에서 실현된 1주당 가격으로 앞서 발행한 종류의 주식을 재평가하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 펀딩 라운드에 발행되는 우선주에는 앞선 투자자들에게 발행한 주식들보다 해당 회사의 현금흐름에 대해 더 나은 권리를 보장받는 게 일반적이다. 가장 최근의 투자자가 해당 회사의 주식에 대해 높은 가격을 지급하는 만큼,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현금흐름에 대한 권리를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당 회사의 설립자나 앞선 투자자들이 가장 최근의 투자자가 지급한 1주당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경우 손실을 볼 수 있는데, 이로부터 입는 손실을 보호하는 조항을 넣어두는 것이다. ‘다운사이드 프로텍션’(하방 보호)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것이다.
쿠팡의 경우에도, 세 차례에 걸친 펀딩 라운드 때마다 종류가 다른 우선주와 스톡옵션을 발행했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감별사’로 불리는 세콰이어캐피탈은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방식으로 유니콘을 평가해 온 것으로 유명한데, 첫 번째 펀딩 라운드에서 쿠팡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가장 최근인 3번째 펀딩 라운드인 2015년 6월 소프트방크로부터 10억달러를 투자받을 때 산정한 1주당 가격은 세콰이어캐피탈이나 블랙록의 펀딩 라운드 당시 산정된 1주당 가격보다 높았을 것이고, 이를 기준으로 이전에 발행된 우선주와 스톡옵션들을 재평가하는 기준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당시 소프트방크가 평가한 쿠팡 기업가치 50억달러는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각각의 펀딩 라운드에서 발행한 전환 우선주와 보통주의 교환비율, 보통주로 환산되는 스톡옵션의 교환비율 등을 재무제표 상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재무제표 상으로는 세 차례 펀딩 이전과 이후 주식수는 12만8290주에서 20만35주로 늘어났다는 것만이 확인된다. 여기서 늘어난 71745주는 전환 우선주, 전환상환 우선주일 것이다. 소프트방크로부터 20억달러를 투자받는다고 해도 김범석 쿠팡 대표가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이 없다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차등의결권주는 1주당 보통주 10주의 의결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적용해 12만8290주를 모두 김 대표의 차등의결권 주식이라고 보면. 김 대표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128만2900주가 된다. 그리고 20억달러 투자 이후 소프트방크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120만주라고 가정해 보자. 20억달러를 투자하며 소프트방크가 밝힌 쿠팡의 기업가치는 90억달러이다. 90억달러를 248만2900주로 나눠보자. 1주당 362달러(약 41만원) 정도가 나온다. 애초 펀딩 라운드를 거치기 전 쿠팡의 1주당 프리미엄 44만원과 엇비슷하게 나온다.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기업가치 부풀리는 벤처캐피탈의 포스트머니 평가 관행
앞서 말했듯이, 벤처캐피탈업계의 기업가치 평가 관행은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이다. 서류상으로 가장 나중에 들어온 투자금을 기준으로 주식가치를 이전 펀딩 라운드 때보다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벤처캐피탈은 모든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거두게끔 돼 있다. 기업가치를 부풀리는 이런 평가 관행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3월 미국 학계에서는 주목할 만한, 그러나 관련업계와 언론은 외면한 논문이 발표됐다. 윌 고널과 일리야 A. 스트레불라예프(각각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소더경영대학원 교수,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공동 작성한 ‘벤처캐피탈의 기업가치 평가와 현실’(Squaring Venture Capital Valuations With Reality)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벤처캐피탈의 자금지원을 받으며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넘은 미국 내 비상장 유니콘 기업 135개가 법원에 제출한 펀딩 관련 계약서류의 현금흐름을 추적하며 공정가치를 산출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벤처캐피털업계의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 방식을 통한 유니콘 기업가치 평가는 공정가치보다 평균 48% 높다는 것이다. 135개 중 절반에 가까운 65개가 ‘뿔이 없는 유니콘’, 유니콘이 아니라는 얘기다. 13개는 무려 공정가치보다 100% 과대평가된 걸로 나왔다. 각 유니콘들은 1~2년을 주기로 평균 8차례의 펀딩 라운드를 거쳤다. 각 펀딩 라운드마다 발행되는 주식의 종류는 달랐는데 8가지나 됐고, 최근 펀딩 라운드일수록 현금흐름에 대한 권리는 강화했다. 가장 최근의 투자자들에게 기업공개 시 최저수익률 보장(15%), 약정 이하의 가격에 이뤄지는 기업공개에 대한 거부권 부여(24%), 다른 모든 투자자에 앞서는 현금흐름에 대한 우선권(최우선주) 부여(30%) 등과 같은 보호장치가 제공돼 있었다. 창업자와 종업원들이 보유한 보통주에는 이런 보호장치가 전혀 없었다. 각종 우선주들이 갖는 혜택을 제외하고 계산한 보통주의 가치는 최근 펀딩 라운드에서 산정한 1주당 가격보다 56%나 낮았다.
이 논문은 벤처캐피탈의 자금지원을 받는 유니콘 기업들에서 차등의결권주가 왜 도입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평균 8차례의 펀딩 라운드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행되는 각종 전환 우선주나 전환상환 우선주 등과 보통주의 교환비율을 감안하면, 창업자는 자연스레 소수주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창립자는 1주당 보통주 10주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의결권주를 보유할 수밖에 없다. 국내 재벌체제는 총수독재체제와 주주자본주의의 단점이 한 데 버무려진 경우가 많다. 이 재벌체제에서 창업자일가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차등의결권주 도입이 필요하다며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의 차등의결권주를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고른 것이라는 얘기다.
쿠팡의 첫 번째 펀딩 라운드에서 1억달러를 투자한 세콰이어캐피털은 이 논문에서 기업가치가 과대평가 된 유니콘 7개에 투자했다. 2018년 3월 현재 쿠팡은 엘로모바일, L&P코스메틱과 함께 한국의 유니콘 기업으로 꼽힌다. 최근 발표까지 네 차례의 펀딩 라운드를 거치고 있다. 해당 논문의 제목을 바꿔봄직하다. ‘벤처캐피탈의 기업가치 평가와 쿠팡의 현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