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에서 암호화폐 가치를 두고 치열한 설전이 펼쳐졌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로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반대편엔 '닥터 둠' 누비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각각 나섰다.
먼저 루비니 교수가 암호화폐는 '거품'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암호화폐는 금융시스템이 아니고 물물교환 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며 "비효율적이고 안전하지 않으며 가치 저장 기능이 없고 가치 변동성도 심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비용이 많이 들고 사기적인 시스템"이라고까지 비난에 가까운 발언을 하며 "거품이 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테린은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다양한 사람들이 분산화된 시스템에 접근하게 되며 비(非) 금융적 응용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둘은 암호화폐의 익명성 부분에서 크게 충돌했다.
루비니 교수는 "범죄자나 탈세자만 익명을 선호한다"며 "암호화폐가 다음 세대의 '스위스 은행'이 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나라에서도 범죄 활동을 소탕해야 하기에 익명성을 가진 암호화폐를 허용할 수 없다"며 "사회질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부테린은 "정부가 은행 지불 시스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기업 경영에도 개입한다"며 익명성의 문제를 "검열 저항의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프라인에서는 당국에 저항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프라이버시도 없어지고 있다"며 이는 "사회의 자율성이 훼손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는 "기존 금융시스템에서는 모든 게 등록돼야 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모든 금융거래 익명화에 반대하고 있다"며 "실명이 검열로 연결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익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재반박했다.
둘 사이의 설전은 확장성, 분산화, 안정성 등 암호화폐판 '트릴레마'로 이어졌다.
루비니 교수는 "암호화폐 거래가 확장성이 불가능하다. 확장성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중앙화가 도입돼야 한다"며 이 세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테린은 "과학을 통해 진전시키고 있다"라며 "분산화, 확장성, 보안성을 모두 갖추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암호화폐와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루비니 교수는 "지난 한 해 암호화폐의 가치가 95% 떨어졌다. 100년이 걸린 게 아니라 단 1년 만의 일"이라며 "암호화폐가 인플레의 대안이 될 수 없고 법정화폐의 대안도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부테린은 "가치에 거품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서도 "이는 초기의 현상일 뿐으로 주식이나 금융시장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암호화폐도 안정화될 것"이라며 "법정화폐의 대체가 암호화폐의 가치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루비니 교수는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수 있나 논의되고 있으나 이는 암호화폐와는 다른 방식"이라며 "중앙은행이 암호화폐를 보유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도 말했다.
부테린은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멋진 생각이고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젊은 세대들은 금에 관심이 없고 디지털화폐에 열광하고 있다"며 다른 견해를 밝혔다.
루비니 교수는 암호화폐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할 때 청중에서 야유의 목소리가, 부테린이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환호성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