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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끌어가는 일방적인 ‘최후통첩 게임’
트럼프가 끌어가는 일방적인 ‘최후통첩 게임’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20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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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 많은 트럼프, 중국이 꿈꾸는 치킨 게임 통하지 않을 가능성 높아
재선을 향한 트럼프의 일관된 의제들로 꾸며진 5월20일 백악관 홈페이지.
재선 향한 트럼프의 일관된 의제들로 꾸며진 5월20일 백악관 홈페이지.

지금 백악관 홈페이지 대문에 들어가면 “트럼프 대통령, 미국 이민 현대화 계획 발표”라거나 “당신은 온라인상에서 정치적 편향에 직면한 적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의 경험을 트럼프 대통령과 공유하세요”라거나 “미국 실업률 거의 50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이라는 제목의 정보와 뉴스를 볼 수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 40% 중반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트럼프는 재선을 향해 2016년 자신이 내세웠던 의제들을 이렇게 꾸준히 밀고 나가고 있다. 첫 번째 사례는 가족 단위에서 개인 중심으로 이민 정책의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고학력․고숙련 이민자를 우대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1월 연방정부 최장 셧다운 사태를 상징하던 무지막지한 멕시코 국경 이민장벽 설치가 세련되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모습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주류언론은 물론 온라인 언론 역시 ‘리버럴’(진보적) 편향에 물들어 있다는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 ‘편견’을 재생산하며 자신의 지지기반 넓히기에 몰두하고 있는 트럼프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마지막 사례는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3% 성장, 49년만에 가장 낮은 지난 4월 실업률 3.6% 등 여전히 잘 굴러가는 미국 경제가 2017년 말 부자에 치우진 감세 정책 등 자신의 덕분임을 내세우는 장면이다.

기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같이 트럼프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인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남이 아닌 트럼프 자신이 ‘거래의 달인’으로 스스로를 추어올리는 자신감이 그저 허풍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평가도 그만큼 강해진다. “(합의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끌고 가는 모습은 트럼프가 주변의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는 외골수가 아님을 증명한다. 그동안 민주당은 트럼프가 과연 중국으로부터 정말로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왔다. 여기에는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 몰아세워도 시원찮을 판에 동맹국들을 상대로 관세 부과를 위협하는 모습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의 근거를 당분간 확실히 제거했다. 유럽연합과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25% 부과 결정 180일 연기, 지난해 6월 캐나다와 멕시코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 전격 철회 등을 통해서다.

동맹국 다독이고 으르며 중국 향한 공동의 압박

이와 동시에 트럼프가 5월15일 서명한 행정명령 ‘정보통신기술과 서비스 공급사실의 안전 지키기’는 화웨이와 그 70개 계열사가 미국 민간부문과 거래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칼끝은 화웨이만을 겨냥한 게 아니다. 화웨이 5G 통신장비의 채택 여부를 회원국들에 맡기고 회원국들이 6월 말까지 이들 장비의 안보 위험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하도록 한 유럽연합 등을 겨냥한 성격도 함께 지닌다. 화웨이 5G 장비 채택을 결정하는 유럽연합 회원국들 국적의 이동통신․장비 기업들이 행정명령에서 언급한 “해외 적대세력”이 소유하고 통제하고 관할하고 있는 실체(entity)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 이외의 이 실체 명단을 150일 뒤 발표하게 돼 있다. 날짜로 치면 오는 10월12일이다. 화웨이 5G 장비에 대한 유럽연합 차원의 평가가 10월 말까지 이뤄지는 것과 겹치는 셈이다.

이렇게 미‐중 무역전쟁을 끌어가는 트럼프의 모습은 중국을 향한 일종의 ‘최후통첩(ultimatum) 게임’이나 ‘독재자(dictator)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첫 번째 사람에게 일정한 돈을 주고 두 번째 사람과 나누도록 하는데,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제안을 수락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게 게 최후통첩 게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게 독재자 게임이다. 단 최후통첩 게임에서 두 번째 사람이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얼핏 보기에 최후통첩 게임에서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얼마를 제시하든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첫 번째 사람은 매우 적은 금액을 나눠주는 제안을 할 듯하다. 하지만 실험을 해봤더니 그렇지 않고 몫의 40~50%를 나눠주는 제안을 하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독재자 게임에서도 첫 번째 사람은 몫의 28% 남짓을 나눠 주겠다고 제안한다. 두 실험 모두 사람이 거래에서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공정성도 감안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건 보통 사람들의 얘기다. 그동안 진행돼온 미‐중 무역협상은 미국이 요구하고 중국이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게임의 성격을 지녔다. 언론보도에서 파악할 수 있는 미국이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양보는 기존에 부과했던 관세의 폐지, 그것도 합의 이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 철폐한다는 것 정도다. 최후통첩이나 독재자 게임에 빗대면, 중국에 몫의 0~10% 정도를 나눠주겠다는 식이었다.

중국이 물러서든 안 물러서든 구애받지 않는 트럼프의 선택지

최근 중국의 반발은 미‐중 무역전쟁이 일종의 치킨 게임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은 이보다는 앞서 말한 일방적인 최후통첩 게임이나 독재자 게임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중국이 물러선다면 트럼프에게 완벽한 승리 효과를 안겨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물러서지 않는다고 해서 트럼프가 손해를 본다고 얘기하기도 어렵다. 미국이 3%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실업률이 최저 수준에 계속 있다면, 트럼프는 관세 부과의 힘이라고 분명히 홍보할 것이라는 데 미국 내 많은 분석가들이 일치한다. 여기에 관세 부과를 통해 확보한 재정수입으로 중국의 보복관세 부과로 타격을 받은 유권자층을 보상하는 방안이 보태질 수 있다. 트럼프가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중국이 양보하지 않고 버티면서 미국경제가 둔화해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는 경우다. 이는 트럼프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사소한 양보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5월10일 고위급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류허 부총리가 공개한 미국과 3대 이견을 보인 사안은 △기본 부과 관세의 전부 취소 여부 △미국산 제품의 구매 확대를 둘러싼 이견 △지식재산권 절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절대 혐의 불인정이다. 역으로 말하면, 트럼프가 △기본 부과 관세를 전부 취소한다거나 △중국이 제안한 구매 확대 목록에 새로 추가하지 않는다거나 △중국 정부가 지식재산권 절도를 지휘한 건 아니라고 물러서는 ‘사소한 양보’를 한다면 미‐중 무역전쟁의 ‘미봉’은 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봐왔듯이 주식시장은 상당히 반등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역시 트럼프로서는 나쁜 게 아닌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이래저래 트럼프가 갖고 있는 운신의 폭은 생각보다 매우 넓다. 미국 경제가 잘 굴러가면 굴러가는 대로, 잘 굴러가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대로 선택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선택지를 갖고 있는 트럼프에게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미국 관세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당사자는 당신이 여러 차례 말한 중국 수출업자들이 아니라, 바로 미국 수입업자이거나 미국 소비자’라고 말하는 것은 ‘소귀에 경 읽는’ 격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말하는 강제기술이전이나 중국 진출 시 합작투자 강제, 미국 기업에 대한 산업스파이 행위 단속 등을 중국이 받아들이고 집행하면 미국 기업들의 중국 엑서더스가 가속화하고 미국내 일자리를 더 줄어들지 않느냐?’(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781)고 입바른 소리를 해봤자 소용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트럼프, ‘중국 수출업자가 관세 부담’ 정말로 믿을까?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아!

트럼프가 관세를 오롯이 부담하는 건 중국 수출업자(물론 이들도 제조원가와 이윤폭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관세 부과의 일부를 부담하는 건 사실이다)라고 정말로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는 정말로 ‘또라이’다. ‘또라이’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또라이와는 치킨 게임을 벌이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건 왠만한 상식이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트럼프 전․현직 관리들의 입에선 그가 정말로 관세를 부담하는 건 중국 수출업자들이라고 정말로 믿는다는 의견과 그런 척하는 것처럼 행세한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어느 쪽이든 또라이가 협상에서는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트럼프가 정말로 중국 수출업자들이 부담한다고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관리들이 믿는 척하는 게 필요하다는 전략적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거래의 기술’이란 책에서 트럼프가 말한 ‘모호성’의 장점이 자신이 ‘또라이’인지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되풀이 말하지만 트럼프는 정말로 그리 간단한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라이가 흔들리는 계기는,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비빌 언덕, 곧 여전히 잘 굴러가는 미국 경제가 흔들리는 때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년 11월 대선 때까지 미국 경제가 흔들리는 모습을 막기 위해 그는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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