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0-21 14:07 (월)
[김종배 교수 칼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김종배 교수 칼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 김종배 연세대 교수
  • 승인 2019.05.22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기계와 활동보조인에게만 의존하도록 한다면 자기의사결정권의 박탈에 해당돼

'중증장애인 M씨가 먹는 것뿐 아니라 기침하는 것까지 기계와 활동보조인에게 의존하였다' 라고 적은 것이 M씨가 자기결정권을 박탈 당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인정할 수 없나요?

지난해 말 2018년 2학기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학사 과정인 성적 정정 기간 중에 ‘장애의 개인적 사회적 이해’ 라는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 몇 명으로부터 성적에 대하여 문의하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 중 한 학생이 한 질문이다.

약 30년 전, 1986년 미국의 유명한 공대인 조지아텍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청년으로 이제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서 엔지니어로서 약혼녀와 함께 장미빛 인생을 그리며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M씨는 모터사이클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다치고 처음에는 직장에서 가입한 좋은 사적 의료보험으로 최고의 재활센터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으며 중증장애인이지만 다시 직업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1년 6개월만에 15억원이라는 엄청난 의료비가 지출되면서 사적보험은 종료되고 공적보험인 노인/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어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캐이드에 의존하게 된다.

그 당시 미국의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장애인에게 요양원에 입원하는 비용만 지불할 뿐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나 활동보조인을 지원하지 않았으며, 그 지원금도 무조건 환자 1인당 100불 정도로 일률적으로 지불하였다. 그러니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전신마비장애인을 받으려는 요양원이 없었다. 결국 메디케어는 환자가 아닌 건강한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M씨를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전신마비란 이유로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M씨는 이렇게 자기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의사와 간호사들이 24시간 긴박하게 일을 하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가 장착된 침대에 방치되어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M씨는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 차라리 죽을 수 있도록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국가에 호소하게 된다. 그러자 의욕 넘치는 한 젊은 변호사가 달려와 M씨를 만나고, 그 변호사는 M시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 비참한 환경에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안락사를 허락하는 것이 도리어 윤리적이다 라는 논리를 편다. 그는 M씨의 자살 선택을 오히려 용기 있는 결정이라며 치켜세웠고 판사도 같은 취지로 안락사 집행을 허락하게 된다.

이에 장애인인권 운동가들은 이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게 된다. 비장애인이 이렇게 안락사를 신청했다면 법원은 심리상담 전문가를 보내어 자살예방상담을 받게 하였을텐데, 장애인이란 이유로 정부의 조력자살 금지원칙의 예외로 하고 도리어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치켜 세우는 것은 장애인의 생명은 유지할 가치가 없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며 강하게 비판하게 된다.

M씨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의 조력자살 문제가 미국사회에서 존엄사 허용문제와 낙태 찬반 논란으로 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는 동안 M씨는 다행히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설득하여 편의시설을 갖춘 욕실과 주방이 있는 아파트형 요양원에서 24시간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음성리모콘, 음성인식 컴퓨터, 초음파 마우스 등 장애인보조기구의 도움으로 CAD 작업을 하게 되면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쇼핑 갈 때 사용할 밴까지 구입하면서 “희망이 있는 즐거운 삶을 살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말하게 되었다.

M씨를 자살하고 싶게 만든 것은, 이와 같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도 있는데도 자기는 전혀 원하지 않는 중환자실에 방치된 삶을 강제하며 자기결장권을 박탈했던 미국의 관료주의적 공적 의료급여체계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학기말고사 시험문제는 ‘무엇이 장애인 M씨가 자살을 하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게 만들었느냐?’ 이었다. 그래서 나는 질문한 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자기의사결정권 박탈이라는 의미는 내가 아침에 국과 밥을 먹고 싶고, 주방에서 그렇게 준비해 줄 상황이 되는데도, 무조건 햄버거만 내놓고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박탈된 경우를 말합니다. 먹는 것과 기침을 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기계와 활동보조인에게만 의존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이라면 자기의사결정권의 박탈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의술과 과학기술 사회정책 여러가지 면에서 이렇게 밖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기계와 활동보조인을 이용하게 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사결정권 박탈에는 해당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장애인에게 ‘자기의사결정권박탈’의 대표적으로 예는 M씨의 예에서 보았듯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 갈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는데도,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자립할 능력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판단해서 시설에 수용하는 시설수용 정책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이 자기결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탈시설화’를 외치며 광화문에서 4년간, 그리고 청와대 옆에서 다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이란 대한민국 헌법상의 권리로 국가권력으로부터 간섭 없이 일정한 사적 사항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의미한다. 자기결정권의 근거로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전제된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다.(헌재결 1990.9.10. 89헌마82).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2018년 4월 20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제 38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정책브리핑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2018년 4월 20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제 38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정책브리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