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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까?
  • 블라디보스토크/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6.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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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바라는 남․북․러 경제협력 돌파구에 대한 기대
송영길, “러시아 주도 ‘블라디보스톡~원산~동해~’ 관광크루즈 항로 열자” 제안

강대국들 간의 힘 대결이 한창이다. 두 강대국이 직접 부닥친 미‐중 무역전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6월1일부터 예고한 대로 두 나라는 기존 부과한 관세를 최대 25%까지 올려 적용하기 시작했다. 무역을 넘어 기술, 자원, 언론 분야까지 대결의 장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신냉전’이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다가온다.

지역갈등에도 강대국 간 이해와 세력 관계가 투영된 지정학은 예외 없이 작동한다. 북한과 이란을 상대로 한 핵미사일 관련 트럼프의 ‘이중전선’도, 미국의 뒷마당 격인 베네수엘라 사태도 지정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란 핵합의에서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어긋난다는 점을 빼곤, 두 경우 모두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대척점에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트럼프가 ‘도가 지나친’ 행정부 안의 강경파가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과 전쟁 불사를 주도하고 북한과 대화 창구를 봉쇄하는 한편, 미수로 그친 베네수엘라 정부 전복 쿠데타를 사주한 배후의 인물로 꼽히는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계하는 모습이 그렇다. 트럼프는 ‘최대한의 압박’을 하면서 대화의 문을 닫지 않고, 언제든 신속하게 협상에 임하겠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다.

돌파구 모색의 장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포럼’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포럼에 참석한 한국과 러시아 주요 참석자들이 6월4일 블라디보스톡 롯데호텔 회의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미21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포럼에 참석한 한국과 러시아 주요 관계자들이
6월4일 블라디보스톡 롯데호텔 회의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미21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협력․교류의 시계는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제2차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체계적인 일정표를 짜기는커녕 속절없이 ‘킬링 타임’이 돼 왔다. 고민과 모색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6월3~5일 극동 러시아의 중심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KEB하나은행과 (사)유라시아21이 주최하는 ‘동북아 초국경 경제협력포럼’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포럼 첫날 상당한 고민이 스며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도전적인 제안이 나왔다. 그는 축사에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동북아 크루즈항로’를 제안했다. 기존에 이미 이뤄지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동해’ 항로의 외연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동해’를 ‘블라디보스토크~원산(북한)~동해~부산~인천’, ‘블라디보스토크~원산~동해~부산~일본(또는 중국)’으로 확대해 보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식의 그림은 한 번 이상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의 영역 안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제안이 ‘참신하고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송영길 의원이 제자리걸음 상태의 현실 돌파를 위한 나름의 지정학과 실용주의를 제시하고 있어서다. 최대 난관은 원산을 거칠 경우 유엔 제재와 별개로 미국이 북한에 부과하고 있는 독자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송 의원은 이 부분을 에두르는 방식으로 러시아가 주도하고 크루즈 여행에 대한 각국 정부의 보조와 후원을 최소화시키면서 평화와 교류․협력을 사랑하는 동북아 시민들의 여행요금을 기초로 할 것을 제시한다. 러시아 주도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국과 협상에서 맞상대할 수 있는 러시아가 이 사업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을 제공할 수 있음을 감안한 것이다. 이런 방어막과 함께, 민간 기초의 크루즈 여행은 단지 원산을 들른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의 독자 제재 적용요건에 해당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6월5~7일 러‐중 정상회담,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러시아 시각 드러날 듯

이런 제안은 러시아가 동북아 평화․협력․교류의 물꼬를 트는 돌파구 구실을 해주기를 바라는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송 의원이 “격화하는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서 러시아는 중국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역할을 하기보다 좀 더 유연하고 중재자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된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친밀하다는 사정을 감안하면서도, 동북아 평화와 교류․협력을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역할은 러시아가 중국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에 있음을 감안하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바람이 주관적인 욕망으로 그칠지, 아니면 일정한 현실화의 가능성을 보여줄지는 러시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가 미‐중 무역전쟁의 배경과 향후 추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와 분리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는 단기적으로 ‘누가 이길 거냐?’라는 저잣거리의 관심을 넘어, 정치․경제․군사를 아우르는 강대국의 정당성에서 누가 우위에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중요한 배경에서 가뜩이나 중국공산당 1당체제에서 2018년 2월 임기 5년의 주석 임기제를 폐지하며 ‘중국판 유신’인 1인 종신집권체제 구축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 대한 서방의 우려가 급격히 높아진 근저에 이런 종신집권체제 구축이 깔려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내용을 떠나 형식적 측면에서 상하 양원의 다당제 의회민주주의,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러시아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시진핑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6월5~7일 모스크바를 국빈 방문한다. 러시아가 동북아 교류․협력의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을지, 아니면 중국과 함께 미‐중 대립구도에서 한 편에 서는 태도를 보일 것인지가 여기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운신 측면에서 최근 참고할 만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좌파 포퓰리즘 정당으로 불리는 ‘오성운동’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 ‘동맹’은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오성운동의 부진과 달리 상당한 승리를 거뒀다. 선거 이전부터 동맹과 그 지도자 마테오 살비니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상당한 관심을 받는 일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이 극우 가톨릭 싱크탱크인 ‘인간존엄연구소’과 손잡고 극우 민족주의 정치인을 키우는 정치학교를 운영하겠다며 로마 인근에 있는 트리술티 수도원을 연 11만 달러에 임대하는 계약의 승인을 요청한 사건이다. 우파 포퓰리즘의 발흥이라는 유럽의 분위기로만 보면 승인하고도 남았을 법하다. 하지만 지난 5월31일 마테오 살비니의 동맹이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이 계획을 불허했다. 수도원에 대한 보수․수선 작업의 지체와 문화유적 운영 경험 부족 등이 거부된 이유지만, 유럽 정치에 대한 미국의 입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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